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타와 (문단 편집) == 역사 == 원래 이 지역은 [[모피]]와 [[목재]] 교역소로 세워졌다. 지명의 기원이 된 오타와는 원래 교역자라는 의미였다. [[영국]], [[프랑스]] 목재업자들이 자주 찾았고, [[오대호]], [[세인트로렌스 강]]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교역 장소로 주목받았다. 1826년 온타리오 호와 오타와 강을 연결하는 리도 운하가 건설되면서, 이 지역은 건설 기지가 되어 발전하였고, 영국 공병대에서 건설을 맡아, 공병대 대장인 존 바이의 이름을 따 바이타운이라는 이름의 읍이 형성되었다. 바이타운은 온타리오 호~리도 운하~오타와 강~세인트로렌스 강 수로의 요충지의 지역 중심지로 성장하여 1855년 시로 승격되었고, 이 때 강 이름을 따 오타와로 개명했다. 한편 당시 영국 식민지로 자치령인 캐나다는 수도를 [[온타리오]][* 당시에는 어퍼캐나다였다가 캐나다 웨스트가 되었다.]의 [[토론토]], [[킹스턴(캐나다)|킹스턴]]과 [[퀘벡]][* 당시에는 로어캐나다였다가 캐나다 이스트가 되었다.]의 [[몬트리올]], [[퀘벡 시티]]로 옮겨다니고 있어서 어느 한 곳을 수도로 정하기 위한 작업을 했으나, 이들 4개 도시가 수도 후보로 격렬히 대립을 했다. 이들 도시들은 캐나다 수도로 지정받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빅토리아]] [[캐나다 국왕|캐나다 자치령 국왕]]에게 정치적 로비를 하는 등 엄청난 경쟁을 벌였으나, [[빅토리아 여왕]]은 이들 4개 도시 중에서 하나를 선정하지 않고, 퀘벡과 온타리오의 경계에 있는 오타와를 수도로 지정했다. 4개 도시 중 어느 하나를 지정한 후 생길 후유증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있고,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대립을 중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또, 캐나다 이스트의 퀘벡과 캐나다 웨스트의 토론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점도 선정의 한 이유가 되었다. 1857년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전격적으로 수도로 지정된 오타와는 곧 의사당과 정부청사 건설에 착수하여 1866년 정식으로 수도가 되었고, 그 다음해인 1867년, 캐나다 자치령으로 실질적인 독립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지리적인 위치로 인하여 캐나다의 양대 공용어인 영·불어 모두 폭넓게 사용되는 도시가 되고 있다. 실제로 길거리를 다니면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불어]]를 쓰고, 영어를 쓰더라도 [[캐나다 불어]]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 옆 퀘벡 동네 [[가티노]][* 오타와 강을 건너면 바로 퀘벡 주 가티노시인데, 오타와와 더불어 National Capital Region(국가수도권)이라 한다.]에서 많이들 와서 일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