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우삼 (문단 편집) === 1970년대 === 1971년 곧이어 [[홍콩]] 영화 황금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쇼 브라더스로 옮기게 되었다. 쇼 브라더스에서 당시 최고의 무협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장철(1923)|장철]]의 조감독으로 연출을 배우게 되었다. [[1975년]] <철한유정>이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다. 이 영화는 칼을 쓰는 무협이 아닌 권격의 무술영화였고, 특기할만한 점은 당시 무명배우였던 [[성룡]]이 스턴트 배우로 참여했다. 무술영화를 주로 만들던 [[골든하베스트]]는 이런 오우삼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해 영입했고, 이어 <제왕화>, <호협> 등의 여러 무술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홍콩은 허씨형제([[허관영]], [[허관걸]], 허관문)들이 개척한 코미디 영화도 흥행하기 시작했고, 오우삼도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서 1977년 허관영이 주연한 <발전한(發錢寒)>이라는 코미디 영화로 성공을 거두었다. 오우삼이 폭력적인 액션 영화뿐만 아니라 코미디 영화의 연출에도 의외의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코미디과 무협 장르 양쪽을 모두 연출하여 개봉한다. 이 시기의 오우삼의 대표적인 코미디 작품은 석천[* <취권>에서 사범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한국에서는 영웅본색 2의 용사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을 기용해 만든 <활계시대>로, 이 작품은 석천에게 아시아 채플린이라는 캐릭터를 주고, 채플린 영화들을 짬뽕한 반패러디 반오마주 영화였다. 이 당시 오우삼은 거의 매년 코미디 및 무협 작품을 내다가 1982년을 끝으로 메가폰을 내려놓고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이때 오우삼은 극심한 무기력증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영웅본색]] 팬들을 중심으로 이 시기[*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오우삼이 감독한 액션물의 흥행실패로 코미디를 찍으며 연명했다는 잘못된 설이 있는데, 오히려 오우삼의 코미디물은 성공작이 많았고 그와 함께 계속 액션물도 찍고 있었다. 오우삼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홍콩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한 다작[* 오우삼도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까지 매년 2편씩 감독했다.] 및 1970년대 [[이소룡]] 영화를 시작으로 크게 번성했던 홍콩 영화가 197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시절 만든 영화들의 필름은 1990년대 중반 화재로 소실되어 영원히 못 보게 된 작품들도 여럿 있다. 화재 원인은 필름 보관 스튜디오 측 잘못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첩혈가두]] 원판을 비롯한 여러 영화는 이 세상에 안타깝게도 유실되어 없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화재를 용케 피했는데 그 가운데에선 철한유정 등 오우삼이 한국에서 홍콩느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덜 알려졌을때 비디오로 출시된 것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