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영종 (문단 편집) === 르까프 시절 === 개인리그에서의 활약이 2005 ~ 2006 정도로 매우 짧기에 내세울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꾸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삼대토스]]나 [[육룡(스타크래프트)|육룡]]에 빗대어 약간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냉정히 말해 육룡 중에 오영종보다 개인리그에서 더 잘 나갔다고 말할수 있는 선수는 [[김택용]], [[송병구]], [[허영무]] 뿐이다. 오영종은 개인리그 우승도 해봤을 뿐더러 결승전에서도 두 번이나 진출하였다. 프로리그까지 포함하면 말할 것도 없다. 정규시즌 MVP와 개인전 다승왕 수상도 해보는 등 상당히 잘 나갔다. 프로리그 한정해서 육룡 중에 오영종에 비빌만한 선수는 택뱅 제외하고는 단언컨대 없다. 나머지 3명은 우승은 커녕 준우승 1회가 커리어하이이거나 ([[김구현]], [[도재욱]]) 아예 결승전도 못 가본 경우이니 ([[윤용태]]) 엄연히 급 차이가 난다.], [[임팩트]]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개인리그 커리어가 꾸준하지 못했을 뿐 [[김동수(프로게이머)|김동수]], 삼대토스 이후 최초로 양대 개인리그에서 2회 결승 진출에 성공한 프로토스 게이머이며, 양대리그 1회 우승, 1회 준우승을 넘어선 프로토스도 결코 많지 않다.[* [[김동수]] 2회 우승, [[박정석]] 1회 우승 3회 준우승, [[강민]] 2회 우승 2회 준우승, [[박용욱]] 1회 우승 1회 준우승, [[김택용]] 3회 우승 1회 준우승, [[송병구]] 1회 우승 4회 준우승, [[허영무]] 2회 우승 2회 준우승. 저 목록에 있는 선수들은 오영종을 포함 전원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다.] 거기에 프로리그 정규리그 MVP, 다승왕, 결승전 MVP, 그랜드파이널 MVP를 합하면 절대 저들에 대해서도 뒤쳐진다고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3대토스]]로 대표되는 올드 프로토스(2000년대 초반)와 [[육룡(스타크래프트)|육룡]]으로 대표되는 뉴 프로토스(2000년대 후반)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 신개념 다크 템플러와 같은 초반 다크 템플러의 활용 같은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오히려 이런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위치해 있었던 부분이 오영종의 저평가에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개인 팬이 아닌 특정 종족의 팬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올드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본선에도 올라오지 못하는 수준까지 노쇠화가 되지 않는 한 신인급 선수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올드 선수를 응원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당장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박성준(1986)|박성준]]이 우승했을 때 저그빠들의 반응과 김택용이 4강에서 강민을 꺾고 성전 결승을 이루지 못하게 했을 때의 반응을 생각해 보자. 오영종의 전성기 시절은 하필 옆동네인 [[MSL]]에서 강민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기인데다 [[마재윤|마서스]]와의 [[성전(스타크래프트)|성전]]이라는 확실한 흥행 카드가 있다 보니 [[프로토스빠]]들의 주목도는 강민에게 쏠려 있던 시기였다. 그 다음해에는 당연히 [[3.3 혁명]]을 달성한 [[김택용]]과 그에 맞선 [[송병구]]에게 옮겨갔고.] 첫 개인리그 우승부터 준우승, [[프로리그]] MVP를 싹쓸이하던 시기까지를 전성기라고 본다면 오영종의 전성기는 3년으로서 3년은 결코 짧은 시기가 아니였고,[* 다만 그 전성기에도 활약이 들쭉날쭉했다. 2005년에는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다승왕과 [[So1 스타리그 2005]] 우승을 달성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나 2006년 들어서 프로리그에서는 자기 몫을 다했지만 개인리그에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 광탈,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도 진출 실패하며 뽀록 우승, 거품이라며 까이다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준우승을 기록하며 가을에만 잘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2007년에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다승5위를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다승왕, 정규 시즌 MVP, 결승전 MVP를 수상, 이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에서 전기리그 결승전 0:4 셧아웃 패배를 안겨줬던 삼성전자 칸의 에이스 [[송병구]]마저 꺾으며 MVP 수상과 팀 우승을 달성하며 엄청난 활약을 했지만 개인리그에서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24강 3패 광탈한 이후로는 [[곰TV MSL 시즌4]]에 진출하기 전까지 1년 넘게 개인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 또한 그 3년간의 커리어 만으로 충분히 명전 헌액이 과분하지 않은 프로토스라고 불릴 만하다. [[테프전/스타크래프트|테프전]]에서의 [[패스트 다크 템플러]] 흔들기 이후 물량전으로 유명해진 [[프로게이머]]. 데뷔 당시에는 별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나, 2004년 6월에 있었던 투싼배 [[MBC GAME]] 팀리그에서 당시 최강의 [[테란]]으로 불리우던 [[이윤열]]을 물량전으로 이겨 그 이름을 크게 알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hmZjuQ4bbYA|#1]], [[https://www.youtube.com/watch?v=I5nWxbVxViw|#2]] 이후 2004년 12월 [[온게임넷]] 챌린지 리그의 예선을 통과하면서 팀리그에서도 그 당시 약체였던 소속팀 Plus의 투톱(박지호 - 오영종)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박지호의 이적에 팀 [[프로리그]] 승률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자 [[화승 OZ]](당시 Plus)의 감독 [[조정웅]]은 오영종의 우승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아마도 [[MBC GAME HERO|POS]]를 벤치 마킹했던 것으로 보인다. POS도 박성준을 우승시킨 후 [[박지호(프로게이머)|박지호]]를 영입, 이어 [[김택용]]과 [[이재호(프로게이머)|이재호]], [[염보성]]을 육성해내며 2006년 즈음해서는 나름 강팀으로 거듭난 바가 있다.] 해를 넘겨 2005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듀얼 토너먼트]]에서 [[나도현]]과 [[이재훈(1981)|이재훈]]을 물리치고 듀얼 토너먼드 2라운드에 진출하였고 이어 듀얼 토너먼트 시드 결정전(각 조 1위를 모아 토너먼트전, 우승 시 온게임넷 스타리그 4번 시드 배정)에서 [[안기효]]를 3:2로 꺾고 본선에 직행하여 본격적으로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So1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는 [[김준영]], [[홍진호]]를 꺾고 [[최연성]]에게 져 2승 1패로 8강 진출했다. 특히 홍진호와의 경기에서는 오로지 [[암흑 기사(스타크래프트 시리즈)|다크 템플러]]만으로 [[레어]]에 [[스포닝 풀]]까지 깨며 경기를 끝냈다. [[https://youtu.be/0XX2SmAgWvA|해당 경기 영상]]. 이 경기를 통해 오영종은 자신의 프로게이머 인생을 내내 따라다닐 '''사신'''[* 다만 처음에는 사신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이라는 --칭호-- 별명을 얻었다. --[[엄재경|엄옹]]: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이번 가을의 신화의 주역은 오영종 선수가 되는 거 아닌가요 혹시]]?!--[* 2011년 1월 기준으로 이 두 선수의 공식전은 이 때가 유일하다. 고로 공식전 전적에서 1:0 오영종 우위.][* 아쉽게도 이후로는 같은 전략을 선보인 적이 없다. 다만, 방송경기에서 배틀넷 유저를 상대로 이 전략을 내놓아 똑같이 썰어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유저는 [[빡]]쳐서 [[디스(비판)|디스]]를 걸고 쨌지.--] 8강에서는 [[서지훈]]을 2:1로 이겨 4강까지 진출하였다. 4강전은 당시 질 것 같지 않은 포스를 뿜고 있던 괴물 [[최연성]]과의 승부였다. 오영종 역시 '질럿 공장장'이라 불릴 정도로 물량의 대가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규모 물량전을 예상했지만, 오영종은 최연성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1경기는 [[전진 게이트]]에 이은 [[패스트 다크 템플러]]. 말 그대로 드라군 1기 없는 다크 템플러 러쉬!, ~~테란 전에 No드라군!?~~ 2경기는 전진 팩토리로 복수하려던 최연성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고 차단하여 압승, 3경기는 패했으나 4경기 [[815(스타크래프트)|815]]에서는 2 로보틱스에 이은 4개의 셔틀에 3리버와 드라군을 태워 경기를 단 한 방에 끝내버렸다. 오영종의 다전제 판짜기 능력이 가장 빛나는 경기 중 하나였다. 결국 오영종은 이렇게 3:1로 최연성을 스무스하게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여담으로 박지호와 3/4위전을 하던 [[최연성]]은 4강 패배의 충격으로 그 날 경기 내내 기분이 나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며 박지호를 꺾고 스타리그 시드권을 받아도 분이 가시질 않았는지 열이 바짝 오른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최연성의 병력은 4강전 경기 내내 오영종 진영의 본진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으니... 그래도 차기리그 우승을 했으니 위안?] 이후 박지호를 이기고 결승에 올라온 [[임요환]]을 상대로 3:2까지 가는 접전을 펼쳐 임요환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첫 두 경기를 내리 승리하며 우승을 앞둔 것 같았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황제는 침착했다. 3, 4경기를 다시 내리 [[임요환]]이 따내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맞붙은 운명의 5세트, 임요환은 특유의 고질적인 [[임즈모드]]와 저축 테란[* 한타 싸움에서 병력 괴멸 당시 개인 화면이 나왔는데 잔여 미네랄이 '''3000'''.]을 선보이며 GG를 선언했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가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고 챌린지 리그 우승으로 4번 시드를 획득, [[가을의 전설(스타리그)|가을의 전설]]과 [[로얄로더]]의 꿈을 동시에 이룬 예는 지금까지도 실로 유일하며,[* 김택용이 [[로열로더]]긴 하지만, 그는 [[봄]]인 [[3.3 혁명|3월 3일]]에 우승했다.] 동시에 아직까지도 최고의 리그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스폰서인 So1은 망했다. 몇몇 사람들은 [[에스오일]]이 스폰한 줄 알고 있다. 이후에는 우승자 징크스에 빠진 듯 급격한 기량 하락을 보여 팬들을 우려케 했으나, 곧 부활하여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도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역시 [[가을]] 시즌이었기에 이번에도 가을의 전설이 이루어질 것인가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다.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프로토스는 듀얼에서 [[임요환]]을 꺾고 올라온 [[김택용]]. 오영종은 상대적으로 당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김택용은 16강에서 탈락했고, 본격적인 전성기는 이듬해 [[3.3 혁명|대사건]]부터다. 그래도 해설들은 이 시기에도 그를 밀었던 것으로 보아 잠재력은 충만했을 확률이 높다.] 24강에서 전 대회 우승자인 ~~[[토막#s-3]]~~ [[한동욱]], '투신' [[박성준(1986)|박성준]]을 잡고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에게 패하는 2승 1패의 호성적으로 16강 진출. 16강에서는 대인 [[김준영]]을 만나 2:1로 승리, 8강에서는 마술사 [[박태민]]을 만나 또 2:1로 승리했다. 스코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오영종은 정말 매 경기마다 간신히 상대를 제압했다. 또 상대한 선수들이 ~~한동욱만 빼면~~ 전부 [[저프전/스타크래프트|저프전]] 스폐셜리스트 급의 선수들에다 전상욱 빼고 전부 그 당시에도 날고 기던 우승자 출신이었다.[* 단, 김준영은 그 당시는 아니고 [[Daum 스타리그 2007|1년 후]]에 [[우승]]. 물론 그 당시에도 프로리그에서는 70%대의 승률에 다승 2위를 찍는 등 맹활약했다.] 김준영의 경우는 [[저그]]를 질럿 물량으로 때려잡는 기이한 경기를 선보였고, 박태민과의 3경기 in [[백두대간(스타크래프트)|신 백두대간]] 경기는 그 긴박함, 긴장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둘 다 명경기 급이다. 4강 상대는 당시 테란들 중 최강의 토스전을 자랑했던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 당시 전상욱의 대 [[테프전/스타크래프트|테프전]] 승률은 70%를 상회할 정도로 프로토스전이 상당히 강력하였다. 1경기 [[아카디아(스타크래프트)|아카디아 2]]에서는 특유의 다크 템플러-물량 폭발 스타일로 전상욱을 잡아내지만, 2경기 토스 압살맵 이었던 [[알카노이드(스타크래프트)|알카노이드]]에서 무난히 패배 3경기 [[타우 크로스]]에서는 전상욱의 토스전 스타일에 그대로 말려버리며 지상군 전투에서 대패하며 [[GG]]를 선언. 4경기 [[백두대간(스타크래프트)|신 백두대간]]에서는 오영종의 긴박함이 그대로 엿보였다. 초반 다크 템플러도 통하지 않고, 플릿 비콘을 2개를 짓는 실수를 하다 하나를 취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역시나 가을은 그의 계절. 전상욱은 캐리어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오영종에게 시간을 내줬고[* 당시는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리버 캐리어]] 전략이었고, 정말 힘겹게 약간의 시간을 벌며 캐리어로 넘어가는데 성공했다.], 캐리어가 4기를 넘겨버린 오영종은 지상군과 함께 전상욱을 제압. 5경기는 다시 [[아카디아(스타크래프트)|아카디아 2]]. 전상욱은 가장 자신다운 빌드인 [[원팩 더블]]을 하는데... 오영종은 3게이트 [[옵드라]], 소위 [[FD테란]] 잡는 불독토스를 시전하며 전상욱의 본진을 그대로 밀어버린다. 매 경기마다 스토리가 뚜렷하고 엄청난 명경기들이 나와서, 당시 [[김캐리]]는 흥분하여 "역대 최고 수준의 준결승전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의 결승전도 그랬지만, 여러가지로 경기 내,외적으로 드라마틱한 면이 많았던 4강전이었다. 5경기 막판 [[https://youtu.be/6oaF9owemsA?t=464|오영종의 드라군에 뚫리자 패배를 직감한 듯 분함의 탄성을 내뱉는]] 전상욱의 모습, 경기가 끝나고 부스를 나온 오영종과 조정웅 감독의 (So1 결승 때를 생각나게 하는) 진한 포옹, 특히 5경기가 끝나고 오영종의 승리에 흥분한 남성 토스빠 스덕들의 굵직찬 목소리로 외쳐진 '오영종! 오영종!' 콜...[* 실제 이때 오영종과 전상욱의 매 세트 시작전 팬들의 화이팅 콜에서 오영종의 경우 전상욱에 비해 남성 팬들의 굵은 목소리가...] [[이윤열]]과의 결승전은 소위 '[[천사록]]'이라 불리며, 온게임넷은 '천재 테란와 사신 토스의 대결'이라는 콘셉트으로 [[데스노트]]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광고를 했다. 당시 결승전은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개최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대 흥행. 1경기 [[타우 크로스]]에서, 오영종은 전상욱과의 대결에서 자신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효율적인 아비터 사용과 경기 중후반까지 계속되던 리버 견제 등, 이윤열도 엄청나게 잘 싸웠으나 결국 패한다. 오영종이 1경기 선취. 2경기는 [[백두대간(스타크래프트)|신 백두대간]]. 전략 준비했는데, 걸려서 실패... 결국 무난히 패한다. 3경기 [[알카노이드(스타크래프트)|알카노이드]]에서는 이윤열의 운영에 막혀 이렇다 할 뭔가를 해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 이윤열의 선공에 한방 먹은 후, 첫 역공에서 마인 하나를 너무 제대로 밞은 것도 컸다... 그런 면에서 운이 안 따른 면도 있었던... 이렇게 순식간에 벼랑 끝에 몰려 버렸다. 4경기 [[아카디아(스타크래프트)|아카디아 2]], 오영종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트리플 넥서스를 시전하며 대규모 물량으로 테란의 자리 잡은 진형을 그대로 뚫어버리는 시원함을 보여주며 승리한다. 4경기를 통하여 벼랑 끝에서 살아난 뒤 이제 마지막 남은 5경기를 통하여 최종 승부 결과가 가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5경기에서 초반부터 이윤열의 회심의 벌처 드랍 전략에 휘둘렸고,[* 비교적 잘 막은 편이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부정할수 없다.] 그 후 멀티 더 안 먹고 캐리어 가는것까지 걸리면서 이윤열의 타이밍 러쉬에 그대로 패하며[* 앞마당 바로 앞까지 조이기가 들어와서 초조했는지 원래도 힘들만한 전투에서 발전투를 보여주고 바로 GG를 쳤다.] 가을의 전설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 이윤열이 준비한 벌처 드랍 전략의 관점에서 이윤열이 자리 운이 따랐고, 반면에 오영종은 자리 운이 안 따랐다. 하지만 이 시즌에서도 지난 So1때 못지않은, 간지 절정의 경기들을 보여주었다. 16강부터 매 경기마다 해설자들은 오영종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그걸 모두 뚫고 매 경기마다 [[드라마]]를 썼다. 결승에서는 패하고 나서도 이윤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등 대인배적인 행동을 보였다.[* 엄옹이 나중에 이 행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왜 졌는데 웃냐고'''... ~~[[감동의 골마|그럼 졌다고 질질 짜냐]]?~~ 당시 결승 상대였던 이윤열이 오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수월한 상대를 꺾고 결승까지 올라온 것에 비해 오영종의 대진운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에 이윤열이 아닌 오영종이 우승하길 바라는 팬들도 많았고, 이후에도 이때 오영종이 우승했어야 하는데... 하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상대는 스타판에서 가장 팬 지분이 많은 게이머 중 하나였던 이윤열이었기에 결국 묻혀졌다. [[우승]] 이후 이윤열이 인터뷰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 이윤열은 우승 이후 골든 마우스 획득에 성공하였다. 사실 이윤열도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이 시즌이 끝나고 나서부터 개인리그에서는 16강을 넘어선(정확히는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바가 없다. 그러나 그 힘을 모두 프로리그에 쏟아부어 프로리그에서는 그야말로 언제나 [[가을]]인가 싶을 정도의 활약을 보인다. 특히 06년 후기리그에서는 만년 약체 신세였던 르까프 오즈를 포스트시즌까지 끌어올렸고, 그 다음 해에는 07년 전기리그에서는 준우승, 07년 후기리그에서는 팀이 아예 꿈에 그리던 우승까지 해 버린다. 이후 그랜드파이널에서도 우승하면서 [[2007년]]은 그야말로 르까프의 한 해가 된다. 동시에 오영종 - [[이제동]]의 원투펀치는 가히 경이로운 수준의 성적도 올렸다.[* 당시 프로리그에서만큼은 르까프 최고 에이스는 오영종이었다. 다음해에는 이제동에게로 넘어갔지만 이 시절 이제동은 스타판을 다 씹어먹을 수준의 기량을 보여줬던 것을 감안하면 후배에게 [[세대교체#s-1|세대교체]]를 잘 한 것이다.] [[테프전/스타크래프트|테프전]]과 [[프프전/스타크래프트|프프전]]에 능하며, 특히 초반 [[파괴자(스타크래프트 시리즈)|리버]]와 [[암흑 기사(스타크래프트 시리즈)|다크 템플러]] 드랍을 통해 상대 테란을 괴롭히면서 확장을 가져가고 물량을 뽑는 프테전의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저프전/스타크래프트|저프전]]은 So1배 16강 vs 홍진호 경기에서 다크 템플러만 뽑는 기행을 통해 이긴 명 경기를 제외하면 평범한 편이지만, 가끔 [[막장]]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2007년에는 대 [[저프전/스타크래프트|저프전]] 80%가 넘는 미칠듯한 승률을 보인 바가 있다.[* 당시에는 김택용의 전성기였다.] 일명 [[가을의 전설(e스포츠 용어)|가을의 전설]]의 힘을 독차지했다고 평가되며, 만년 전어가 아닌 빙어로 탈바꿈했다. 소위 [[본좌]]급으로 일컬어지는 [[임이최마|임이최~~마~~]], 그리고 본좌를 노리는 여러 게이머들에 비해 활약상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하지만, 우승한 [[So1 스타리그 2005]]와 준우승했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가 워낙 드라마틱하고,[* 소원 시절은 비스폰 팀 출신의 신인이 팀을 살리기 위해서 도약한 소년만화같은 전개, 신한은행 시즌 2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선수가 역경을 계속 헤쳐 나가면서 정상으로 기어올라가는 눈물나는 스토리이다.] 또 수려한 외모를 갖추고 있어서 인기도 많은 편이다. 왠지 모르게 [[성우]] [[이시다 아키라]]를 닮은것 같다. 동시에 야구 해설가 [[현재윤]]을 닮은 것 같기도...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는 프로리그[* 5승 4패를 기록하였는데, 이런 성적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s-7.14|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 기록한 18승 5패에 다승왕까지 먹은 것과 대조해 보면 확실히 좋은 성적은 아니다.]고 개인리그[* [[온게임넷 스타리그|스타리그]]에서는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는 1차 본선에서 [[김동건(e스포츠)|김동건]]과 [[박성균]]에게 연속으로 털리며 2연패로 광탈, [[MSL]]에서는 [[Arena MSL 2008]]에서 조별리그에서 [[허영무]]와 [[박영민(1984)|박영민]]에게 역시 연속으로 털리며 2연패로 광탈하였다. 이후로 오영종은 [[은퇴]]할 때까지 스타리그고 MSL이고 어느 개인리그에고 진출하지 못하였다.]고 전년도들과 비교하면 다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지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감독과의 불화[* 조정웅의 [[결혼식]]에 불참한 것과 리그 후반부부터 경기장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등이 결정적 증거들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은퇴한 화승 출신 선수들의 썰에 의하면 실제로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다만 오영종이 공군에 입대할 당시 함께 가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09-10 프로리그 시절(당시 공군 소속) VS 화승전에 대한 평가는 딱 하나. '''[[조정웅]]을 무너뜨리려 작정하고 필사적으로 덤비는 살기 그 자체'''.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화승과의 경기에서 전승하고 공군이 화승 상대로 4승 1패를 거두는 것으로 화승의 탈락에 기여했다. 덕분에 오영종은 전역 후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말(최악의 경우 '''한동욱 사건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까지 생겼으나, 전역 이전 조정웅이 감독을 그만두어서 그런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친정 팀 화승 오즈로 복귀한다.]로 인하여 동년 [[여름]], 공군 ACE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합격. 전역 후의 행보가 스타판에 영향을 줄 듯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