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시아 (문단 편집) === 유화정책을 통한 군축 및 냉전 종식 === 1999년, 소행성 '1994XF04' 율리시즈의 지구 충돌이 목전까지 다가오자 오시아-유크토바니아 양국은 전략균형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율리시즈의 재난 이후'의 세계재건계획을 함께 세우고, 계속해서 위험요소로 남아있을 '운석 파편군 제거'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운석 파편군을 제거하기 위해서 과거 냉전의 절정기 때 미사일 요격용으로 구상되었던 오시아의 '대기 기동 우주선' 계획이 부활하게 되었고, 이 우주선은 한때 주적이자 이 병기의 주 목표였던 유크토바니아와 공동 개발되게 된다. ||<-6>[[파일:arkbird1213.jpg|width=430]] || || 오시아-유크토바니아 협력의 산물, 대기 기동 우주선 '아크버드' || 오시아제 돔형태 ABL (Air-Borne Laser)은 좀 더 효과적인 유크토바니아제 운석 파편 제거용 고출력 레이저로 교체되었고, 선체 하부에도 장착하려고 했던 ABL은 이 우주선이 지상을 향해 포신을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탑제 제외대상이 되어 설계가 변경된다.[* 다만 [[Open War|9월 29일]], 발발한 환태평양 전쟁 쟁 직후 단 5일만인 [[WHITE BIRD|10월 3일]], 아크버드를 대지상 타격 병기로 개조하기 위한 SSTO가 출발하고 이에 단 하루만인 [[FRONT LINE|10월 4일]], 아크버드의 대출력 레이저가 신팍시급 잠수함을 궤도 폭격한 것을 보면 얼마든지 쉽게 다시 기능을 원상복귀 시킬 수 있는 후속처리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SDI 계획을 통해 개발된 요격 병기를 평화적인 이용을 위해 기능을 전환한다는 양국의 역사적인 결단은 새로운 기술 혁신을 가져옴과 동시에 인근 국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2004년에는 '제1차 대륙 전쟁'으로 인해 가동을 중지한 [[스톤헨지(에이스 컴뱃 시리즈)|스톤헨지 레일건]]을 대체하여 적극적으로 임무 수행에 나선 아크버드의 운석 파편군 요격률은 정지궤도 내에서 무려 80% 이상이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한 셈이었다. 이러한 성과에 고무된 오시아와 유크토바니아 양국은 아크버드의 운석 파편군 요격 임무는 지속하면서도 동시에 근미래 시기에 영구 우주 정거장 건설을 위한 발판으로 아크버드를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중앙 유지아 연방와 베루사가 계획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 이러한 탈냉전, 국제협력 분위기를 공고히 한 것은 바로 2004년, 정권을 잡은 [[빈센트 할링]] 대통령이었다. 할링 정권은 그 이전 정권이 초래한 벨카 전쟁 전후 협상의 혼란을 수습하는데에 앞장섰으며, 동시에 각종 국제 사업과 우주 개발 사업을 통해 전 세계에 새로운 개척점을 제공하고, 고용 효과를 파급시켰다. 무엇보다 다소의 비관론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유크토바니아에 대해 적극적인 유화정책을 펼침으로써 오시아의 최대 기밀이었던 '바셋 우주센터'의 '매스 드라이버'를 유크토바니아 연방 우주청과 함께 공동 건설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다.[* 또한 이 매스 드라이버의 개발적 난국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유크토바니아의 엔지니어들이 가지고 있던 획기적 기술이 반드시 도입되었어야 했다고 하니, 오시아 측이 일방적으로 기밀 시설의 문호를 개방한 것이 아닌 일단은 양측 간의 윈윈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오시아 '할링 정권'의 유화 노선의 가장 절정은 바로 아크버드 내에서 주최된 [[https://cafe.naver.com/acecombatweb/29820|G7(+1) 정상 회의]]였다. 취임 이래 '빈센트 할링' 대통령은 '국경에 제한받지 않는 장소'에서의 정상 회의의 필요성을 역설해왔으며 진정한 '무국경 지대 (Borderless place)'를 물색하다 결국 아크버드라는 플랫폼 자체를 회의장으로 사용하는 결단을 내린다. 각 주요 국가의 정상들을 우주 공간까지 실어 올리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점에서 할링 정권의 수완이 상당했던 셈이다. 회의 참가국은 [[에메리아 공화국|아니아]], [[중앙 유지아 연방]], 오시아 연방, 유크토바니아 연방 공화국, [[벨카 공국]], 베루사, 노드랜드 그리고 구 에루지아의 잔존세력 (자유 에루지아) 재기와 난민문제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불안요인을 국제적 압박과 협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초청된 '에루지아 임시 자치 정부'를 포함한 총 8개국이었다. 그리고 이 G7 회의에서 냉전의 종식을 선언하고,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 (CTBT)'을 조기 발효/ 잉여 무기자산들과 플루토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2차 전략 무기 감축 조약 (START2)'에 대한 협상 시작, 유지아 난민에 대한 국제적 책임 분담과 협력을 골자로 한 '아크버드 선언문'이 발표됨으로써 세계는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완전한 냉전 종식으로 인해 불어온 평화 분위기는 오랜 시간만에 세계 각국이 안정을 찾는데에 큰 도움을 주었고, 오시아 연방이 호황기에 접어드는데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때 실시된 대규모 군축으로 인해 오시아 국방군 내에서는 일부 군인들의 빠른 퇴역 조치와 주요 전략 병기의 퇴출 등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쌓여가기 시작했고 이는 환태평양 전쟁 당시에 벌어질 혼란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