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역사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 제국]]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Austrian_Empire_1815.svg.png|width=100%]] || || 181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 || [[나폴레옹 전쟁]] 중이었던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를 자칭하여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권위가 무색해지자 황제인 [[프란츠 2세]]는 기존의 동군 연합 상태에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들을 통합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우고 스스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로 선언했다. 그러나 얼마 뒤인 1806년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배해서 신성 로마 제국은 완전히 해체되었고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제1제국]]과 동맹국들에게 영토를 할양해야했다. 1809년에 오스트리아는 복수를 위해 다시 참전했다가 또 다시 영토를 빼앗겼다.[* 나폴레옹 전쟁 이전에 오스트리아는 현재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바이에른]] 주에도 현재 오스트리아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던 [[월경지]]를 보유했으며, 그 영토 중에는 현재 [[프랑스]] 영토인 [[알자스]]나 [[프라이부르크]]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빈 회의]]에서 전쟁 중 손실한 월경지에 대한 대가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탈리아 북부]]와 [[달마티아]]를 차지하였다. 한편 오랫동안 대주교가 다스려 온 잘츠부르크는 다른 주교령들처럼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이 1803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자 통치자인 콜로레도 대주교[* [[모차르트]]의 후원자기도 하다.]가 지배권을 포기하고 빈으로 도피했다. 오스트리아는 잘츠부르크를 [[선제후]]령으로 만들고 친척인 [[토스카나 대공국]]에게 하사했으나, 이후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기 속에 오스트리아 제국(1805년), 바이에른 공국(1809년)을 거쳐 빈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빈 회의 이후 50여년 동안 [[독일 연방]]의 주도권을 놓고 통일 독일의 구축과 자국 내의 오스트로슬라브주의, 헝가리 독립 운동, [[이탈리아 반도]]의 카르보나리 당과 같은 사상들을 모두 억누르며 [[1848년 혁명]]에도 제국 유지에 성공했다. 그러나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에서 [[프랑스 제2제국]]-[[사르데냐 왕국]] 연합군에게 패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고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왕국에게 패배하면서 독일 내 영향력과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세력이 축소되었다. 전통적으로 우방이던 가톨릭 국가 [[바이에른 왕국]] 또한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어 오스트리아의 독일 팽창은 저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