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역사 (문단 편집) ==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작 == 오스트리아가 공위시대(Interregnum, 1243 ~ 1278)를 맞은 시기는 [[신성 로마 제국]]의 [[대공위시대]](1254 ~ 1273)와 시기가 겹치는데, 신성 로마 제국의 혼란과 함께 오스트리아도 혼란에 빠졌다. 이때 여러 유력 가문들이 오스트리아의 지배권을 획득하려고 시도했는데 [[바덴]](1248~1251)의 체링겐 가문에 이어 중부 유럽의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 프르셰미슬 왕조 [[보헤미아 왕국]]의 [[오타카르 2세]]가 오스트리아를 장악했다.(1251 ~ 1278) 한편 신성 로마 제국의 대공위시대는 1273년 [[스위스]] 일대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백작 루돌프 4세가 [[독일왕]] [[루돌프 1세]]로 선출되면서 종결되었다. [[도나우강]] 유역으로 확장을 원했던 루돌프 1세는 1278년 마르히펠트 전투에서 [[오타카르 2세]]를 전사시키고 그가 차지했던 오스트리아 공국과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을 회수하여 맏아들 [[알브레히트 1세|알브레히트]]에게 주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를 차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291년 스위스가 반란을 일으켜 결국 1315년 떨어져 나가게 되고 이때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를 가문의 본토로 여기게 되었다. 1335년 [[케른텐 공국]]과 크라인 변경백국[* Krain, [[슬로베니아어]]로는 크란스카(Kranjska).]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병합되었다. 1356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가 [[금인칙서#s-2.8]]를 공포하며 그동안 관례적으로 이어오던 [[선제후]]를 7명으로 명문화하여 고정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7인의 선제후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의 공작 [[루돌프 4세]]는 장인인 황제 카를 4세에게 불만을 품고 1156년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가 오스트리아를 변경백국에서 공국으로 승격시킬 때 내린 문서(Privilegium Minus)를 위조하여 Privilegium Mainus를 작성한 후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의 오스트리아의 특권적인 지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카를 4세는 이것을 위조로 판정하여 루돌프 4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140년 바이에른 공국에서 독립했던 [[티롤 후백국]]이 상속 문제로 혼란을 겪자 루돌프 4세는 1363년 티롤 후백국의 백작 부인 마르가레테에게 접촉하여 티롤 후백국에 대한 상속권을 얻어냈다. 1364년 루돌프 4세는 크라인 변경백국을 [[카르니올라 공국|크라인 공국]]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1369년 마침내 [[티롤 후백국]]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 병합되었다. 이렇게 합스부르크 가는 [[잘츠부르크 주]]를 제외한 현재 오스트리아를 구성하는 모든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잘츠부르크는 교회에 소속된 영지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