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역사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의 성립 == [youtube(oUTxJTlOk78)] || [[파일:2BA07396-EED9-42CD-8146-16F824D2A15B-1507-000002B0DCA85E1D.png|width=100%]] || || 오스트리아의 지형도 || 오스트리아 지역은 과거에는 [[켈트족]]이 살던 땅으로 켈트족이 세운 노리쿰 왕국이 있었다. 노리쿰 왕국은 기원전 1세기 말에 [[고대 로마]]에게 점령되었으며 그 자리에 노리쿰 [[속주]]가 세워졌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게르만 바바리족(Bavarii)이 오스트리아에 정착했으며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훈족]]의 등장으로 로마는 오스트리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이후 [[동고트 왕국]]과 [[랑고바르드 왕국]]이 차례대로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어서 [[아바르 칸국]]이 오스트리아 지역의 패권을 잡았으며 이 시기를 전후로 [[슬라브족]]이 유입되었다. 슬라브족은 [[아바르 칸국]]에 저항하여 사모 왕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국가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리아로서의 이 지역의 역사는 796년 [[카롤루스 대제]]가 [[판노니아]] 지역의 [[아바르족]]을 복속하고 해당 지역을 [[바이에른]] 동부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편입시키며 시작되었다.[* 바이에른 산하 시기 해당 지역의 첫 통치자는 바이에른 총독이었던 [[https://de.m.wikipedia.org/wiki/Gerold_der_Jüngere|게롤드]]이다.] 799년에 아바르족이 봉기를 일으키며 해당 지역의 총독들이 전사하는 등 굉장히 불안정한 시기가 되었는데, 803년 마침내 이를 완전히 진압한 카롤루스 대제는 더욱 효율적인 통치와 외침의 방어를 위해 805년에 바이에른 지역에서 이 지역을 분리하여 새로운 변경주를 설치하였다.[* 해당 주의 첫 총독은 [[잘리어 왕조|잘리어 가문]]의 [[https://de.wikipedia.org/wiki/Werner_I._(Pr%C3%A4fekt_des_Ostlandes)|베르너 1세]]로 비정된다.] 당초 아바르 변경주라고 불리던 이 지역은 왕국의 동쪽 끝에 있다는 이유로 점차 오스틀란트, [[오스트마르크]], 오스타리히 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스트리아라는 이름의 시초가 된 것. 이 변경주의 행정적인 중심지는 원래 로마 시대에 군사 요새이기도 했던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의 엔스에[* 정확한 위치는 해당 도시의 로르흐라고 불리는 동네이다.] 설치되었으며,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의 틀른안데어도나우에는 국경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 거점이 설치되었다. 828년에는 당시 바이에른 공작이었던 [[루트비히 2세]]가 이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대 모라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제1제국]]의 대대적인 침공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이후 [[동프랑크 왕국]]의 왕이 된 루트비히 2세는 자기 후계자인 아들 [[카를로만]]에게 군사적, 행정적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이 지역을 [[바이에른#역사|바이에른 공국]] 산하의 지역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면서 이 지역은 다시 바이에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907년에 동프랑크 왕국이 [[브라티슬라바#역사|프레스부르크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바이에른 공국은 [[헝가리 대공국]]에게 이 지역을 통째로 빼앗겨 버린다. 하지만 955년에 [[오토 1세]]가 [[레히펠트 전투]]를 통해 이 지역을 재수복하게 되면서, 다시금 [[독일 왕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된 동방 변경 지역은 늦어도 970년에서 972년 사이에 [[오스트리아 변경백국]]으로서 성립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부족 사회를 완전히 통합하고 세력을 확장한 [[헝가리 왕국]]을 상대하는 역할을 해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