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락실 (문단 편집) === 여명기 === [youtube(5TVFgPouMd4)] 1982년 [[MBC]]에서 방영한 당시 한국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관한 방송. 초반에 다뤄진 게임은 세가의 레이싱 게임 [[터보]]와 [[갤러그]]이다. [youtube(5oyknoCN9xM)] [[파일:external/www.hardcoregaming101.net/part1-46.jpg]] [[경향신문]]이 취재한 [[1983년]]의 오락실 풍경. [[갤러그]]가 늘어서있는 모습에서 당시 갤러그의 선풍적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저 기판은 모두 [[세운상가]]를 주축으로 유포된 불법 클론 기판들이다. 기사 내용은 당시 학부모들의 전형적인 시각처럼, 오락실을 유해하게 보는 논조였다.[* 업주들도 오락실이라는 단어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의식했는지 '컴퓨터 지능개발실', '지능계발' 이름의 간판이 많았다. 물론 간판뿐이고 실제로 지능개발실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초창기에는 핀볼 게임기나 [[아타리]]에서 개발한 [[퐁]] 등의 게임이 [[http://blog.naver.com/smilesunkr?Redirect=Log&logNo=120015251329|다른 아날로그 싱글로케이션 게임과 함께 서비스되면서]] 시작했다. [[개명#s-3.1.2|영어 발음을 잘 모르는 오락실 주인 아저씨들이 게임 원제와 전혀 상관없이 게임 제목을 오락실 기계에 써붙이기도 하였다.]] 국내에서 몇몇 게임들이 원작과 다른 타이틀로 알려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가 1977년에 아타리 [[브레이크아웃]]([[벽돌깨기]]) 게임이 들어오면서 오락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1978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도입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으로 오락실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여 이미 1980년이 되면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종로]], [[명동(서울)|명동]], [[서면]], [[남포동(부산)|남포동]] 같은 번화가 뿐만 아니라 학교 주변이나 주택가에도 오락실이 들어서게 되었고, [[전주시]]에도 오락실이 급증했을 정도가 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 서울 기준으로는 1975년 이후로 에너지 절약 문제 및 청소년 생활지도 문제로 인하여 오락실 신규 개업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중인 오락실의 90~95% 이상이 무허가 오락실이었으며 이 시기에 사용된 기판들은 상당수가 세운상가나 청계상가 등지에서 만든 복제 기판이라는 [[흑역사]]가 있다. 이후 전대미문의 히트를 기록한 [[갤러그]]를 비롯하여 [[너구리]], [[버블보블]], [[아타리 테트리스]], [[하이퍼 올림픽]], [[원더보이]], [[1942]], [[더블 드래곤]]등의 게임이 차츰차츰 늘어나면서 오락실의 최고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