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뚜기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uRMiCrzbe8)]}}} || ||<#dc2c34> '''{{{#fff 오뚜기 카레 01 (1980년대)}}}''' || [[1969년]]에 [[조흥화학공업]] 사장 함형준(1914. 6. 12.~1991. 12. 26.)[* <대선제분 50년사> 참고.]의 장남 [[함태호]]가 식품부를 들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4가에 '풍림상사'를 세운 게 기원이다. 삼일회계법인 대표 김일섭과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의 공동저서 <세계로 가는 우리 경영(1995)>에 따르면, 본사의 역사는 오기와 집념으로 점철돼 있다. 창업 초기부터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내수 식품시장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걸로 [[카레라이스]]를 처음 내놨다. 당시 인스턴트 카레 시장을 장악했던 한국에스비식품과 제일식품화성공업사의 '스타카레'와 맞서야 했는데, 이를 타개하고자 소규모 업체로서 과감히 TV광고를 내보냈고, 특히 당대 찬밥신세였던 일요일 등 TV 휴일시간대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내보냈다. 또한 판촉요원을 구멍가게와 백화점 등지에 보내 제품을 소개하고 시식을 하여 시장점유율을 확대토록 했다. [[1970년]]부터는 [[스프]]를 판매하고 [[1971년]] '풍림식품공업(주)'로 법인화시켜 [[케첩]]을 내놓는가 하면, [[1972년]]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호계리[* 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안양)|호계동]]. 이듬해에 현재의 안양시로 승격되었다.]에 안양공장을 세우고 [[마요네즈]]를 출시했다. [[1973년]] '오뚜기식품공업'으로 사명 변경 후 마요네즈 시장에서 본사보다 7배 더 큰 [[서울식품공업]]을 앞질렀으며, [[1977년]]에 식초 생산을 개시했으며, [[1979년]]부터 일본 카고메[* 사업가인 카니에 이치타로(蟹江 一太郎, 1875~1971)가 [[나고야시]]에 설립한 식품 회사. 1899년 일본 최초로 토마토를 재배했으며 1914년에 아이치 토마토 소스 제조 합자회사(愛知トマトソース製造合資会社)라는 사명으로 설립했다. 1933년에 [[토마토 주스]]를 처음으로 양산. 1949년 5개 회사를 합병하면서 아이치 토마토 주식회사(愛知トマト株式会社)를 새로 설립하면서 기업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1963년에 현재의 사명(カゴメ株式会社)으로 변경하였다.]와 [[큐피#s-2|큐피]] 등과 케첩 및 마요네즈 기술제휴를 맺었다. 1980년 오뚜기식품(주)로 사명을 바꾸고 1980년대 내내 서울하인즈와 베스트푸드미원 등 외국계 합작사들을 제쳐 소스업계에서 우위를 점했다. 1981년 국내 최초로 레토르트제품 '3분 카레/짜장'을 출시하고 1983년에 식품연구소를 세우고 1986년 김 생산을 시작하는가 하면, 1987년에 [[청보식품]]의 자산을 인수해 '오뚜기라면'을 세웠다. 1988년에 태진산업을 세웠다. 199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뒤 이듬해 먹는샘물 '석천'을 출시했고, 1996년 현 명칭으로 변경 후 이듬해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 첫 해외공장을 세웠고[* 주로 자사 제품에 쓸 소고기를 가공한다.], 전 제품에 칼슘을 첨가시켰다. 1999년에 함태호 회장이 장남 함영준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선임시켜 '2세 경영체제' 수립을 위한 준비를 거쳐 2001년 충북 음성군 대풍공장을 세우고 이듬해 모체기업 조흥화학공업의 대주주가 되는가 하면, 2003년에 연수원을 열었다. 2005년에 애드리치를 세운 후 2006년에 [[삼포식품]]을 인수하고 2008년 제1회 카레 및 향신료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2010년에 삼화한양식품을 인수하는 등 한동안 승승장구했지만, [[2011년]] 5월 대형 업체([[할인점]])에는 꼼짝도 못 하면서 중, 소, 영세 업체에는 '최소 납품가' 및 '가격 제한'을 건 사실이 알려졌다. 욕을 바가지로 먹고 어쩌고 하는데, 다만 업체의 규모에 따라 대형화, 자동화, IT 역량 등의 이유로 유통비용이 차이가 나고 대량 납품에 따른 저마진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업체 규모에 따라 가격제한을 두는 것은 거의 전 세계 공통적으로 드물지 않은 일이다. 2013년 하반기 라면 시장 점유율에서 드디어 [[삼양식품]]을 누르고 라면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히트상품 [[참깨라면]]과 [[열라면]], [[진라면]]의 리뉴얼을 통한 맛 개선이 소비자에게 통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4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2년 6개월간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그리고 희대의 개그 광고 [[데 헤아|WE]] [[로빈 반 페르시|LOVE]] [[아드낭 야누자이|3분]]을 [[https://www.youtube.com/watch?v=Mb8duHP1gyc|찍어]] 국내 스포츠 팬들을 폭소시켰다. 2014년 [[넥센 히어로즈/2014년/7월#s-1.1|7월 1일]] [[목동 야구장]]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브론즈 스폰서로서 함께 '오뚜기 데이'행사를 [[http://www.heroes-baseball.co.kr/dev/notice/listbody.php?h_gcode=bbs&h_code=3&po_no=11804&page=1|개최]]하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 넥센의 상대는 [[롯데 자이언츠]]. 여담으로, [[넥센 히어로즈]] [[김시진#s-4.1|제2대]] [[감독]] [[김시진]](전 [[롯데 자이언츠/2014년|롯데]] [[김시진/2014년|감독]])의 별명은 '탑뚜기'로서, 이 회사와 연관이 매우 크다. [[김시진#s-5|문서]] 참조. 2016년 9월 12일 [[함태호]]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오뚜기의 창업자로서 회사는 물론 사회적 기여 역시 상당했기에 그의 행적을 본 네티즌들도 애도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8/2016091800073.html|뉴스]] 24년간 심장질환을 앓았던 어린이 4,242명에게 경제적 후원을 해줌으로써 새 생명을 선물했다고 한다. 2017년 오뚜기가 갑자기 비정규직이 없는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21/2015122103722.html|'착한 기업'으로 알려져서 주식이 3년 만에 6배가량 올랐다]]'''고 한다. 또한 2017년 들어서는 농심의 상대적인 하락세에 힘입어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763614|점유율을 25%선까지 올렸다]]. 2017년 2월에 오뚜기삼화식품을 합병한 후 7월 초에 10여년 간 우려먹던 홈페이지 디자인을 개편했고, 2018년에 상미식품지주 및 풍림피앤피지주를, 2020년 오뚜기제유지주를 각각 합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