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대십국시대 (문단 편집) === 한반도 === 한편 한반도의 통일신라에서는 나라의 실권을 쥔 지배층인 진골들의 권력 다툼으로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궁예]]가 [[후고구려]]를, [[견훤]]이 [[후백제]]를 세워 [[후삼국시대]]가 성립되었다. 이후 궁예가 축출되고 고구려계 호족들의 대표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였다. 때마침 중국이 분열되어 혼란한 덕분에 [[삼국통일전쟁]] 때와는 다르게 [[후삼국시대]]의 통일은 외세의 개입 없이 고려의 주도 아래 진행될 수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후삼국이 외교에 무관심했던 건 아니었다. 견훤의 후백제가 오대십국을 포함한 중원 국가들은 물론 거란, 일본 등 모든 주변국과의 외교에 적극적인 노선을 취했다면 왕건의 경우 후삼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은 이후부터 후당, 후진 등 중원 세력과의 외교에 전념했다. 신라 역시 후당에 조공하는 등 생존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중원 세력들은 고려를 정통으로 인정하면서 신라를 박대하였다.] 한편 [[발해]] 역시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말갈족의 이탈로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틈타 발흥한 거란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여 한민족의 주활동영역이 한반도로 고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오대십국을 통일한 송나라는 거란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고려와 친선관계를 맺었고,[* 고려는 3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덕분에 거란은 고려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고려는 이런 사정을 이용해 [[고려-북송 관계|송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역으로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각주] [[분류:오대십국시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