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냥코클럽 (문단 편집) == 특징 == [youtube(HSm_u6uI1d8, width=100%)] 오냥코클럽 디스코그래피. 당초에는 [[후지 테레비]]의 버라이어티 방송인 '''유우야케 냥냥(夕やけニャンニャン)'''이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하면서 탄생된 일종의 이벤트성 아이돌 그룹이었다.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멤버들에게 연예계 활동보다는 학업을 우선시할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멤버들은 촬영장에 학교 숙제를 가져와 서로 공유하면서 공부하기도 하였으며 학교의 시험 기간에는 방송을 쉬었고 급한 경우엔 고학력자들인 후지 테레비의 작가나 스탭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한 멤버는 활동을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가 오냥코 클럽에서도 탈퇴당했다. ~~불쌍하다.~~ ] 또한 방송 관계자들에게도 비록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하긴 하지만 아직 '고교생'이라는 본분을 확실하게 인식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그들의 본업은 '''고교생'''이었으며 그들의 역할은 방송 내에서 사회를 맡은 인기 개그맨 [[톤네루즈]]와 함께 방송 진행을 돕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룹과 멤버들 자체의 인기가 높아져감에 따라 해당 방송은 오냥코 클럽이 메인이 되어버렸기에 당시 메인으로 MC를 진행한 이시바시 타카아키는 이 방송을 너무 그만 두고싶었다고 한다.[* 멤버였던 쿠도 시즈카와 15년만에 재회한 [[TBS 테레비]] 방송에서 이시바시가 밝힌 비화로는 녹화 도중에는 같이 웃고 떠들어도 실제로는 이미 베테랑 개그맨이었던 톤네루즈와 쌩신인 일반인들이었던 멤버들 사이에 벽에 컸기때문에, '누가 너희들같은 애들이랑 떠들까보냐! 가슴은 만지고 싶지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시바시는 쿠도 시즈카와는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라 후에 사이좋게 콜라보 싱글도 내는 등 친분을 이어왔지만 다른 멤버인 타츠미 리카와는 정말로 사이가 안 좋아서 녹화장에서 싸우기도 했다는 후일담이 존재한다.] 당시 '냥냥'이라는 프로그램 이름과 후술할 변태적인 노래 때문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냥냥이란 말 자체가 성적인 은어로 쓰였기 때문에다.[* 공식적으로는 '와라베'라는 아이돌 그룹의 전 멤버였던 타카베 토모코(高部知子)가 일으킨 스캔들에서 유래했다. 15세 미성년자였던 타카베가 이불 속에서 벗은 채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FOCUS라는 찌라시를 통해 보도되었다. 사실 사진은 그냥 담배를 물어보기만 한 것으로 불을 붙였다거나 흡연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해당 사진을 유출한 사람이 자살하는 바람에 타카베는 와라베에서 하차하지만 자살시도만 5번을 하는 시련을 겪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연예계에 복귀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여성 아이돌은 말 그대로 '우상'에 가까운 존재였으며 노래도 잘 하고 외모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지역에서 제일 예쁜 아이가 아이돌이 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으나 오냥코클럽은 이런 여성 아이돌의 개념을 비틀어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조금 신경쓰이는 동급생'''이 방과후 부활동의 연장으로 방송에 출연한다는 컨셉으로 결성되었다. 멤버는 매주 열리는 방송 내 '아이돌을 찾아라' 코너에서 매주 5인을 선정해 5일간 오디션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뽑았으며 오디션을 본 멤버 중에는 아예 일반인도 있었고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멤버도 있었다. 오디션 합격 후에도 소속사가 있는 멤버를 제외하면 모두 [[후지 테레비]] 사단 하에 있는 무소속 신인이었기때문에, 그 대부분의 멤버들은 오냥코가 해산한 뒤 일반인으로 돌아갔으며 이미 소속사에 속해있던 10명의 멤버들은 이후 솔로 데뷔 등으로 연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카와이 소노코, 와타나베 미나요, [[쿠도 시즈카]], 타카이 마미코, 이와이 유키코, 아가즈마 카요 등은 오냥코 출연 전부터 이미 연예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었다. [youtube(8LfHq1S-Pmk, width=100%)] [[1985년]] 4월 연예계 데뷔 후 3개월만에 내놓은 전설의 데뷔곡 '[[セーラー服を脱がさないで]]'가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 [[1987년]]까지 약 2년 반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 동안 사회 현상이라 불릴 정도의 인기를 얻었으며, 본진인 [[후지 테레비]]의 음악 방송 뿐만 아니라 타방송사의 '[[더 베스트 텐]]'과 같은 유명한 음악 방송 출연을 성사시키고, '묘조(明星)', '헤이본(平凡)'등 아이돌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아이돌 전성기의 한가운대에서 일약 급물살을 타며 본래 타겟인 일본의 [[남중생]], [[남고생]] 들에 한정되지않고 세대를 아우르며 폭 넓은 지지를 얻었다. 당시에도 도가 지나친 열성팬들이 많았는지, 최근 방송에서 멤버였던 [[쿠도 시즈카]]가 풀어낸 오냥코 시절의 일화에 따르면,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이 버린 쓰레기들이 일렬로 정리되어있었으며 살았던 맨션 앞에 버린 쓰레기들도 전부 일렬로 늘여져있어서 정말 기분나빴다고 한다. [[폭주족]]이었던 팬들도 있었는데, 서로 다른 조직의 폭주족들이 자신이 타고 갈 차를 따라와 누가 먼저 제칠지 싸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최초 멤버를 뽑을 때 노래나 댄스 실력, 외모보다는 친근감을 우선해서 뽑은 의도적인 전략은 완벽히 적중해서, 멤버들의 --어설프고--소탈한 매력이 많은 남자 청소년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당시 방송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여 ''' '유우야케 냥냥'을 보기 위해 부활동도 하지않고 방과후 집으로 달려가 방송을 보는 학생들이 증가'''했다는 [[도시전설]]이 오갈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팬클럽 '코냥코 클럽'의 회원수도 몇십만명의 회원수가 모이는 등의 인기를 얻었다. 오냥코클럽의 솔로 활동과 관련 유닛 싱글은 [[1986년]] 이 해 오리콘 싱글 1위 46곡 중 30곡이 오냥코 관련곡이었으며 총 52주중 36주를 점거하는 등 오리콘 차트를 독점했다. 인기 멤버였던 닛타 에리의 '冬のオペラグラス(겨울의 오페라글라스)'가 당시로써는 이례적으로 30만장 이상의 판매율을 보였고 차례차례 솔로로 데뷔한 멤버들은 모두 오리콘 등장 첫 순위가 1위였다. 단, [[고쿠쇼 사유리]]의 'バレンタイン・キッス(발렌타인 데이 키스)'는 유일하게 2위로 입성해서 최근 모 프로그램에서 디스당했다.(...). 이러한 인기가도에서도 [[홍백가합전]]에는 한 번도 출장한 적이 없는데, [[NHK]] 관계자에 따르면 1985년 당시 사전조사에서 시청자 대상 투표수가 적었기때문이라 설명했다. 상술되었듯 주요 팬덤이 성인이 아니라 인구도 적고 구매력도 받쳐주지 않는 십대 남학생층과 여학생층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 80년대 가요계의 주류는 아이돌이 아니라 Rock과 밴드음악이었다.] 멤버 중 [[쿠도 시즈카]]만이 오냥코클럽이 해산한 후인 1988년 솔로로서 처음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그러나 86년을 기점으로 초기 멤버들이 학업 등의 이유로 탈퇴, 새로운 멤버들은 계속해서 영입되었고, 후기 멤버들로 결성된 '우시로가미 히카레타이(うしろ髪ひかれ隊)'도 히트하였으나 차츰 붐이 꺼져감에 따라 빠르게 해산을 고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