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옐로우키스 (문단 편집) == 특징 == H.O.T.의 팬덤과 맞짱을 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팬덤이었다.[* 생뚱맞지만 독일프로축구로 비유해 보자면, 세기말 H.O.T.와 클럽 H.O.T.의 세(勢)가 [[바이에른 뮌헨]]과 뮌헨 팬의 그것과도 같다면, 젝스키스와 옐로우키스는 이에 유일하게 뮌헨의 독주를 가로막을 수 있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도르트문트 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규모 면에서는 열세였던 것이 사실이며[* 흰 색이 상징컬러인 H.O.T.팬들이 대다수인 관객석에 소수의 젝키 팬들이 자리잡은 모양을 두고 흔히 [[계란 후라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러한 숫적인 갭을 메꾸기 위해 각 개별 팬들의 전투력이 높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세기말 각 공연장에 걸렸던 현수막 걸개의 문구들을 보면 그 과격함에 놀랄 정도. 혹은 '''아이돌 팬덤의 시초'''라고도 한다.[* [[20세기 미소년]], WISH 등의 방송에서 젝스키스를 소개할 때 '아이돌 팬덤의 시초', '아이돌 팬덤의 역사'라고 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고유 상징색[* 이전 세대의 가수들도 특정 색상의 무언가로 응원을 하기는 했으나, 이를 공식화하여 상징으로 삼지는 않았다.], 풍선, 우비, 응원 구호(젝키짱, 노래할 때 응원), 사진을 넣은 현수막, [[알페스|동성팬픽]][* 이성팬픽은 [[H.O.T.]]가 최초다.], 팬앨범[* 꽤 알려진 You're Welcome 외에도 2집 '스완송'과 3집 '해바라기'도 있다.[[https://youtu.be/5gJyYbFaSqM|#]] ], 팬페이지, 허브홈, 팬콘서트 등등 지금은 안하면 허전할 정도로 당연한 아이돌 팬덤문화 아이템의 시초가 바로 젝스키스다.''' [[http://tvcast.naver.com/v/1095222#comment_focus|팬앨범, 팬콘서트 언급]] 주요 발생 원인은 팬덤 간의 대립과 자급자족이었다. 팬덤 간의 대립이 심화되자, 구분이 되게 하기 위해서 공식색과 우비를 도입했다. (우비는 실용적인 측면이 매우 강했다.) 젝키가 처음 노랑을 상징색으로 정하기 전에는 플래카드로 응원했다. 초기에는 노란 풍선과 빨간 우비[* D.S.F. 1기 공식 물품 중 등에 젝생젝사라고 써 있는 빨간 망토가 있었다.] 조합이었으나, 노란 풍선과 우비로 변했다. 또한,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성팬픽 역시 젝스키스가 최초다. 소속사에서 굿즈나 문집을 내주지 않자 자급자족하기 위해 멤버 간의 동성팬픽, 가상문답 등이 생겼다. 해체 후에는 자급자족이 더욱 절실해졌고, 자연스레 팬픽 역시 더욱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소속사와 사이가 굉장히 나빠서 공식에 가입한 팬의 비율이 적었다. 당연히 다수의 팬들이 모여있을 공간이 없다보니 팬페이지를 만들었고, 그 중에서도 사람이 많고 중심이 되는 곳이 생기자 허브홈 개념이 생겼다. 여담으로 젝키의 현수막 문구는 매우 강하기로 유명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문구는 게장꿀타파의 '고지용 날 죽여라'. 새하얗고 거대한 현수막 위에 시뻘건 글씨로 쓰여서 여러모로 임팩트가 엄청났다. [[동방신기]]의 팬덤에게 현수막 문구를 대거 도용당해 싸우기도 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68848&page=1&search_pos=-77444&s_type=search_all&s_keyword=%ED%98%84%EC%88%98%EB%A7%89|젝키 현수막 문구 모음]] 해체 후에는 최초로 팬들이 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세 장의 팬 앨범을 만들었는데, CD는 딱 여섯 개만 만들어져 멤버들에게 전달되었다. 또한 해체 후에 수차례 팬 콘서트를 개최했다. 젝스키스의 팬들은 소속사와 사이가 나빠서 공식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공식 팬클럽 회원수만으로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 없다. 공식보다 [[하이텔]]이나 [[나우누리]], [[천리안]]같은 곳에 훨씬 많았고, 젝키 멤버들이 그런 곳에 글을 남긴 것도 그런 이유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071211&page=1|이재진]]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071210&page=1|고지용]]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071208&page=1|은지원]]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071204&page=1|강성훈]]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071202&page=1|장수원]]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6kies&no=1071201&page=1|김재덕]] 세기말 싸움에 대해 다소 와전된 정보가 돌아다닌다. 당시 팬덤들이 풍선을 터뜨리기 위해 압정을 뿌린 것은 사실이나, 젝스키스 팬들의 드림콘서트 좌석은 대부분 2층이었기 때문에 뿌리는 것이 아닌, 3층에서 뿌린 압정에 맞는 입장이었다. 2층 좌석에서 1층 운동장을 향해 던져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애초에 클럽H.O.T.에 비해 인원이 적었다는 거였지, 다른 아이돌에 비하면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굳이 위층에서 압정을 찔끔찔끔 던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젝스키스는 당시 아이돌 팬덤 사이에선 유일하게 H.O.T.에 대항할 수 있는 팬덤이었고 그만큼 현장에서도 살벌한 견제를 받는 거대 팬덤이었다. 차라리 머리채 잡고 싸우거나 우산같은 걸 휘둘렀지, 젝키팬들이 압정을 뿌리진 않았다. 풍선을 터뜨리려면 위에서 아래로 던져야 하는데, 좌석 위치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시에는 팬들끼리 싸우면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뼈나 이가 부러지는 일이 잦을 정도로 살벌했다. 악에 받혀 싸웠으면 싸웠지, 압정을 찔끔찔끔 던지지는 않았다. 온갖 팬덤이 싸우던 방식에 대한 증언이 합쳐져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어른의 사정]]으로 와해되었던 팬덤은, 그러나 16년이 지난 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부활했다. 단순한 추억팔이로 끝날 것으로 보였던 그들의 기세는 세기말부터 젝키팬이었던 3, 40대와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을 통해 입덕한 1, 20대 팬들이 뭉쳐져 현역 아이돌 팬덤 못지 않은 화력을 자랑하고 있다. 젝키가 16년만에 발표한 신곡인 '세 단어' 또한 오랜 시간동안 자신들을 잊지 않고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담고 있으며 이 노래의 가사와 상황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입해 감정이입하는 다른 아이돌 팬들도 많은 상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