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카테린부르크 (문단 편집) == 도시 특징과 역사 == 도시가 [[우랄 산맥]]의 동쪽 기슭에 가까스로 위치해있기 때문에 대륙 구분상으로 [[아시아]]에 속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오벨리스크]]가 도시 서쪽으로 40km 거리에 위치해있다. 만약 찾아가볼 생각이라면, 우랄 산맥에 유럽과 아시아 경계비는 이것 말고도 수십 군데가 있다. 무려 2,000km나 되는 우랄 산맥에 경계비가 하나밖에 없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것.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도시에서 40km 떨어진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인데 경계비 기단석을 유럽 서쪽 끝 [[포르투갈]]의 호카 곶과 아시아 대륙 동쪽 끝인 [[축치 반도]] 데즈뇨프 곶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 이 경계비는 1846년 [[러시아 제국]]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황태자]]던 시절 방문한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는 기념비 외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상징성과 [[인증샷]] 때문에 관광객이 종종 찾아간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선상에 있는 도시로 [[터키]]에 [[이스탄불]]이 있다면 러시아엔 예카테린부르크가 있는 셈. 우랄 산맥의 풍부한 천연 자원들이 모이는 도시이기 때문에 공업이 상당히 발달했다. 러시아인들이 예카테린부르크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공장의 이미지. 도시 자체가 18세기 광산업을 위해 건설된 도시이고 이로써 축적된 부를 통해 공업, 금융업,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적백내전]] 이후 예카테린부르크는 우랄 산맥 권역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스베르들롭스크'''(영어: Sverdlovsk, 러시아어: Свердло́вск)라는 이름으로 도시 이름이 개칭되었다.[* 볼셰비키인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이름을 따왔다. 예카테린부르크 국립극장 앞에 이 사람의 동상이 있다. 개칭은 소비에트가 [[예카테리나 1세|봉건적 색채가 남아있는 예카테린부르크]]라는 이름을 도시에 쓸 수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닌그라드로 개칭된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마찬가지.] 이후 [[스탈린]]이 우랄 산맥을 공업화하면서 군수산업도 크게 발달하게 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예카테린부르크와 우랄 산맥 권역의 공업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되면서 도시 이름은 다시 옛 이름인 예카테린부르크로 바뀌었으나, 아직까지 이 도시를 포함한 주는 스베르들롭스크 주(Свердло́вская о́бласть)라고 불리면서 소련시대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감싸고 있는 [[레닌그라드 주]]와도 동일하다. 최근 러시아에서 발전속도가 빠른 도시 중 하나다.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고층건물도 많이 올리는 중. 2020 엑스포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두바이]]에게 밀렸다. 시의 중심부에는 저 위의 사진에서 나오듯이 [[크고 아름다운]] 인공호수와 [[운하]]를 만들어 두었다.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며 가끔 카누를 타고 노는 사람들도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