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식진 (문단 편집) === [[예군]] 묘지명에 대한 [[일본]] 측 반박 === 일본측의 해석은 묘지명의 일본을 '일본'이 아닌 '일'과 '본'으로 끊어 읽어서, 사실은 '일본'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전체문장은 "于時 日本餘噍 據扶桑以逋誅 風谷遺甿 負盤桃而阻固" 인데, 여기서 '일'과 '본'을 끊어서, "于時日 本餘噍 據扶桑以逋誅 風谷遺甿 負盤桃而阻固"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그러나 당대 문장에서 '이때'를 于時로 표현하지 于時日이라고 쓰는 경우는 전무했다. 또한 묘지명을 쓴 방식은 대구를 이루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문장만 해당 방식으로 끊어 해석하는 것은 어색하다. 이와 비슷한 문장의 용례를 찾아봐도 >佛說超日明三昧經 >於時日王白佛言:“唯願大聖,枉屈尊神到宮小食,令諸導御虛空神天皆蒙大恩,聞深妙法悉發道意所度無量 여기서 얼핏보면 於時日이라고 해야할 것 같지만, 글의 전체 문장을 보면 >於時日王白佛言。唯願大聖。枉屈尊神到宮小食。令諸 導御虛空神天皆蒙大恩。 聞深妙法悉發道意所度無量。 時佛默然已受其請。日王見佛已許就請。 "於時日 王白佛言"로 읽어서 "왕이 부처에게 말하길"이라고 보고 싶지만, 결국 "於時 日王白佛言"으로 읽어야 제대로 된 해석이 된다. 다음 문장에 "日王見佛已許就請"라고 나와서, 日王이 명사로 쓰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당시 한문 어느 표현에도 "於時日" 이라고 표현했던 곳은 없었으니 일본 측의 반박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