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수회 (문단 편집) ==== 일본에서 ==== [[일본]]은 [[센코쿠 시대]] 유력 [[다이묘]]들이 [[천주교]] 신자가 되는 등 교세가 크게 흥성했다. [[유교]]보다 [[불교]], 특히 타력구원 성향의 [[정토종]] 계열이 흥성했던 일본에서는 내세관을 갖춘 그리스도교에 훨씬 개방적이었고, 예수회도 극단적인 선악관을 가진 신란의 정토진종에 대해 '[[마르틴 루터]]의 무리가 이미 일본에 있다'고 발언하는 등의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유사점은 천주교 전도에 큰 도움이 되어, 중국과는 달리 일본의 그리스도교는 민간종교적인 성격을 띠기도 했다. 남만사(南蠻寺)[* 당시 [[천주교]] 교회(=[[성당]])을 일컫던 일본의 용어.]와 선교사 양성지, 그리고 화승총과 직물을 비롯한 활발한 무역으로 흥성하던 천주교는 [[오다 노부나가]]의 정권 말기부터 서서히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인]] 노예가 판매되는 것을 알게 된 일본의 반감, [[엔랴쿠지]] 등 불교 세력을 압도하면서 견제구로서의 의미가 줄어든 [[천주교]]의 전파, 그리고 화승총 무역 등으로 지방 정권의 군사력이 뒷받침되던 점 등이 통일 정권을 향해가던 일본 집권자의 압력을 부르게 된 것이다. 예수회가 후원해 [[교황]]까지 만나고 온 일본인 [[덴쇼 소년사절단]]도 유명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를 거쳐, [[에도 막부]]로 진입하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쇄국 단계에 들어서고 선교사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선교 없는 교역만을 조건으로 [[네덜란드]]만이 흔적을 남긴 채 서양 세력은 완전히 추방되어 예수회 선교도 사실상 종결되고, [[시마바라의 난]]으로 남은 그리스도교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