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예수 (문단 편집) === 탄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aintingandframe.com/2-the_adoration_of_the_shepherds.jpg|width=100%]]}}} || ||<#ffd700>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목자들''' ||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는 [[헤로데 대왕]] 통치 시절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쓰여 있고,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호구 조사를 할 때 태어났다고 쓰여 있다.[* 태어났을 때 그 바로 위에서 크게 빛나는 별이 밤하늘에 떴다고 한다.] 하지만 헤로데 대왕은 기원전 4년에 죽었고,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 된 건 기원후 6년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기원후 1년은 물론 기원전 4년에도 호적 조사는 없었다.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첫 호구 조사라는 기록을 따라도, 기원후 6년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 로마 기록을 대입하면 좀 더 아스트랄해진다. [[로마 제국]]의 경우는 인구 조사관이 따로 있어서 각지의 인구를 조사한 통계를 남기는 경우인데, 기록에 의거하면 내전 등의 요인으로 해서 켄소르(Censor), 즉 조사관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이 기원전 8년과 기원후 14년으로 기록된다. 달리 말해서, 기원후 6년의 조사 역시 불분명하며, 적어도 경전 기록대로 하여 [[황제]]가 지시한 호구 조사나 공식 조사는 아니거나 혹은 애초에 그조차 틀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즉 성경의 저자들은 예수의 어린 시절이나 탄생기를 몰랐다는 것이 확실하며, 예수의 탄생기는 복음서 저자들이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반영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상 깊게 기억하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만 나오는 이야기. [[마태오 복음서]]만 보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이지만, [[루카 복음서]]를 신뢰하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처음 온 사람들은 당대에는 그지없이 가난한 이들인 목자들이었다. 마태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이 바친 세 보물인 황금, 유향, 몰약은 현대 신학에서는 세속의 왕권, 종교적 권력,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 금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 부의 상징이며, 유향은 당시 종교적 의례를 위한 필수품이었으며, 몰약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장례 때 죽은 이의 유해를 수습할 때 바르는 것이었다. 특히 몰약은 장례식 용품을 갓난아기에게 선물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론 꽤나 황당하지만, 신학적 의미를 고려하면 밑에 서술하듯 그리스도교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예수의 [[부활]]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루카 복음서에서 목자들이 예수 탄생을 처음 경배한 것은 루카 복음서의 "예수는 세상에서 제일 미천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목자는 당시부터 이미 극히 가난하고 별다른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남의 재산을 지키는 막노동으로서 매우 낮은 직업으로 취급되었기 때문. 루카의 기록에서 목자를 예수 탄생을 처음 경배하는 이들로 설정된 것은 신학적 의미가 크다. 흔히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생일로 알려져 있지만, "예수의 실질적인 탄생일에 관하여 구약 전승과 신약 성서에는 기록된 바가 없고,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나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儀式)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2세기 말경에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스는 5월 20일의 특별한 축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나 4세기 말까지는 기념일의 의식이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336년, 성탄 축일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관습이 서방 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로마인들의 이교적인 국가 축제일이었던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nvicti)을 그리스도교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는 27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때부터 태양을 최고신으로 공경하여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그 건립일을 축제일로 지정했던 것이다. 이 태양신에 그리스도를 대치시켜 354년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이날을 성탄으로 판정하여 그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고 5세기 초에 이날을 예수 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한 것이다."{{{-2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2511&keyword=%EC%84%B1%ED%83%84&gubun=01|가톨릭 대사전]])}}}[* 가톨릭 대사전의 해당 문서에선, 이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로 설명하고 있다.] 일단 목동들이 밖에서 [[양(동물)|양]]을 치다가 노숙할 정도였으면 겨울은 아니며, 오히려 초여름으로 추정된다. [[12월 25일]]이란 날짜는 [[3세기]]경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인기 있던 태양신인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의 생일이었다. 가끔 솔 인빅투스와 [[미트라]]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트라를 포함한 각종 태양신을 짬뽕시킨 신이 솔 인빅투스이다. 간단히 말하면 태양으로 묘사되는 모든 신적 존재를 축하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태양이 가장 고마운 시기는 역설적으로 태양이 가장 짧은 날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뜨거운 여름날 내리쬐는 태양은 피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맙게 여길 리가 없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12월 25일에 솔 인벡투스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축제를 벌였다. 공교롭게도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천체가 태양이었다. 태양이 지고 뜨는 것을 부활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솔 인벡투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합시다"라고 말한 것. 율리우스력에서는 12월 25일이 동지, 즉 해가 뜨는 시간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는 동짓점 절입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게 아니라, 달력에서 대충 며칠쯤에 오면 그날이 무슨 날이라고 정하자는 식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결국 [[로마 제국]] 시대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로 포용(정복)하기 위해 임의로 정한 날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소수 신자들 중에선 세속화된 크리스마스를 안 지키고 진짜 탄생일로 추정되는 날을 계산해서 기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쪽 또한 부정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참고할 유일한 기록인 성경 자체가 저자들이 예수의 탄생 시기를 전혀 몰랐으니 정확한 날짜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외에 예수가 [[3월 25일]], 즉 춘분 무렵에 수태되었다는 신비적 이유로 9개월을 더하니 자동적으로 12월 25일이라고 생각했을 거라는, 꽤 정밀한 전례학 자료 고증을 통한 설도 새로 제시되었으나, 대부분 책들이 전례학과는 거리가 먼 데서 자료를 찾다 보니 이에 따라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 공인되기 이전인 2세기 중엽 무렵부터 예수의 탄생에 대한 논란이 나타났으며, 3세기부터 많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기념했다는 설도 강조되고 있다. 12월 25일이라는 날짜에 여러 의미들이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중립적일 듯하다.[* [[세례자 요한]]이 니산월 14일(태양력 3월 말경)인 파스카에 태어났다는 계산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티쉬리 15일(태양력 9월 말경)인 초막절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성서학적 해석으로는 초막절 출생은 의미가 있다.] 또한 출생 당시 [[양치기]]들이 양을 치고 있다는 기록이 루카 복음서 2장 8~20절에 나오는데, 당시의 양치기들은 겨울에 바깥일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9월이라는 기록이 신빙성이 더 있을 수 있다. 이전 판본에서는 [[1월 4일]]이라고 했는데, 이건 [[정교회]]에서 아직도 [[율리우스력]]을 쓰기 때문에 동짓날이 달라진 것이다. 태양력 문서에 보다시피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은 그레고리력 제정 당시 10일 차이가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를 불문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지만, [[성경]]에는 마구간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저 말구유에 뉘었다는 서술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 마구간으로 간주하는 것도 서방 그리스도교권의 이야기고, 그리스를 비롯한 동방 교회권은 예수가 마을 인근의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정교회 전승에 따르면 요셉은 방이 없자 마을 인근의 동굴로 피신해서 짚을 깔고 낳았다고.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도 그 동굴 위에 지어졌다. 따지고 보면 여관에 방이 없다는 이유로 마구간에서 [[출산]]한다는 것 자체가 뜬금없지 않은가? 당시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부유한 가정 아니면 가축이 사는 공간과 사람이 사는 공간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유럽]],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중세]]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집은 가축 사는 곳과 사람 사는 곳이 나뉘지 않았다. 중세 유럽인들은 해당 [[성경]] 구절을 듣고서도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루카의 복음서 2:7]"라는 구절을 "여관에 자리가 없어서, 아기가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말구유에 눕혔다."고 해석하는 것 자체는 현대인들 기준으로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 구유에서 포에 싸진 상태로 구유에 뉘어졌다는 [[복음서]]의 기록은 하느님의 가호를 받은 존재라는 증표였다는 견해도 있으며 [[유대교]]에서 포와 구유는 하느님의 보호를 상징한다. 또한 일부 역사학자들의 학설에 따르면 그 당시 그리스 의사들은 아기 요람으로 말구유를 사용하면 아기가 편안하게 잘 수 있다고 말구유 사용을 권장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한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헤로데 대왕]]이 자신의 자녀가 아닌 엉뚱한 자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두려움을 느끼고 [[베들레헴]]의 갓난아기들을 학살했다고 서술했으나, 역사적 사실로 보이진 않는다. 애초에 위에서 서술하였듯 동방박사의 방문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기 때문. 굳이 따지자면, 인구 조사 자료를 토대로 추산하면 약 20명의 아이를 죽였을 거라 추산할 수 있긴 하다. 현대 신학에서, 헤로데 대왕의 유아 학살 부분은 구약 성경에서 [[출애굽기]]의 [[모세]] 신화를 모티프로 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예수를 새로운 모세로 해석하는 [[메타포]]로서 서술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한편, 유대교의 경전인 '(예루살렘) 탈무드'에는 예수 탄생 시기에 '판델라'라는 로마의 군인의 간통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해당 사건에서 태어난 아기를 예수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Patrick, "John The Apology of Origen in Reply to Celsus", pages 22–24, 2009 (ISBN 1-110-13388-X)][* Schafer Peter, "Jesus in the Talmu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15–24, 2009 (ISBN 9781400827619). 해당 자료는 에세이지만 '사피엔스'처럼 수많은 조사와 논문을 근거로 뒷받침하고 있다.][* Tabor, James D. "The Jesus Dynasty: A New Historical Investigation of Jesus, His Royal Family, and the Birth of Christianity", New York: Simon & Schuster, 2006 (ISBN 0-7432-8723-1)]. 다만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탈무드의 속보성이 오히려 복음서보다도 늦다는 점에서, 예루살렘 탈무드 자체가 복음서의 처녀 수태 설화의 영향으로 예수의 사생아설을 주장한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한편, 처녀 수태에 신화는 복음서보다 속보성이 빠른 아테네 신화나 [[그리스 신화]]([[오르페우스]],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인간)인 [[세멜레]]가 제우스로 부터 받은 죽은 디오니소스(오르페우스 비교의 교리에 따르면 제우스의 아들 [[자그레우스]]가 티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가 디오니소스로 부활했다고 한다)의 심장 일부분을 음료 형태로 마심으로써 임신한다.(출처 : Hyginus, Gaius Julius, Fabulae in Apollodorus' Library and Hyginus' Fabuae: Two Handbooks of Greek Mythology, Hackett Publishing Company, 2007,ISBN 978-0-87220-821-6). 상술한 바와 같이 죽임을 당한 후 2번 태어나므로 이를 부활로 보는 견해가 존재하며, 인간 어머니와 신인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반인반신으로 볼 수 있다.], [[페르세포네]],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 어머니 [[다나에]]가 금빛물로 목욕함을 통해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를 임신하게 된다. (출처 : Warner, Marina, "Alone of All Her Sex: The Myth and Cult of the Virgin Mary", Oxford University Press)])에 이미 존재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예수 탄생 신화가 고대 신화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보는 주장도 존재하며[* Warner, Marina, "Alone of All Her Sex: The Myth and Cult of the Virgin Mary",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963994-6, 2016][* Litwa, M. David, Iesus Deus, "The Early Christian Depiction of Jesus as a Mediterranean God", Minnesota Fortress Press, ISBN 978-1-4514-7985-0, 2014]. 이러한 주장[* 이집트 학자인 제럴드 메이시 (Gerald Massey, 1828-1927)가 이집트 '사자의 서'를 해석하여 주장함]에서는 처녀 수태 및 부활 신화까지도 예수와 매우 유사한 신화가 고대 신화에 이미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주로 [[오시리스]][* 이집트의 신이자 왕으로서 지지를 받다가 이를 시기한 세트(남동생)에게 죽음을 당하고 이시스(여동생)에 의해 부활한 후 죽은 자의 나라인 두아트의 왕이 된다. (출처: Pinch, Geraldine "Egyptian Mythology: A Guide to the Gods, Goddesses, and Traditions of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ISBN 978-0-19-517024-5)]의 부활 신화나 사자의 서의 내용을 그 대상으로 꼽는다[* Eddy, Paul Rhodes; Boyd, Gregory A, "The Jesus Legend: A Case for the Historical Reliability of the Synoptic Jesus Tradition", Grand Rapids Michigan Baker Academic ISBN 978-0801031144, 2007]. 그러나 이에 대해 성서 주석학[* 그리스도교 안의 주석학과 세속적 주석학에서 그렇게 한다.]에서는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철저히 비헬라스적인 유대인이었다며 전술된 주장들을 일축한다. 처녀 수태를 비롯한 예수 관련 신화들은 그리스 신화와 무관하게 철저하게 유대교적 맥락에서 생성되었다고 본다. 앞서 언급된 오르페우스 신화나 디오니소스 신화나 이집트 신화 모두 예수 신화의 처녀 수태와 플롯도 전개도 전혀 다르며[* 사실 각 그리스 신화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전문가들의 분석도 볼 것 없이 일반인들이 봐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부활에 실패하며, 디오니소스 신화는 정본에서는 처녀 수태도 부활도 존재하지 않고 오르페우스 비교에 나오는 [[자그레우스]] 신화에서만 처녀 수태와 부활이 나온다. 오시리스 신화 또한 부활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플롯에서 상당히 차이가 많다.], 예수 신화의 문맥이나 인용문은 전부 구약 성경의 구절들을 성경의 저자들이 재해석하거나 짜깁기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Bart D. Ehrman, "How Jesus Became God: The Exaltation of a Jewish Preacher from Galilee", Harper Collins, 2014 ISBN 0062252194, 9780062252197, 국내 번역서 바트어만,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갈라파고스 출판사, 2015][* The Historical Jesus: Five Views, October 8, 2009, by James K. Beilby., 국내에서는 <역사적 예수 논쟁>, 2014, 새물결플러스 번역 출판함] 가령 마태오 복음의 경우, 서로 다르게 전승된 공생활-죽음-부활의 내러티브를 탄생 내러티브와 결합하고[* "우리는 탄생 이야기들의 기원과 전수 과정은 예수님의 사역, 죽음, 부활 이야기들의 기원이나 전수 과정과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자료를 결합시킨 것은 한 명의 복음서 기자이다.{{{-2 {{{[}}}책 속 주석: 마태복음의 유아기 내러티브와 복음서 나머지 부분의 문체가 대체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은 처음 두 장이 다른 사람의 작품일 가능성을 배제시킨다{{{]}}}}}}"(『메시아의 탄생』 74쪽)] 여기에 구약 인용구를 덧붙이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마태오 복음의 탄생 내러티브를 저자 혼자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마태오 이전 전승(pre-Matthean)이 탄생 내러티브 안에 들어있으며,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천사, 이집트로의 피신, 헤로데의 유아 학살 등은 마태오 이전 전승에 속한다.{{{-2 (참고: 『메시아의 탄생』 172쪽)}}} "Knox, W. L., ''Sources'', II 125는 '마태가 유아기 내러티브의 편집 과정에서 보통 이상의 개정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보통이라는 것은 복음서의 주요 내러티브 속에서 마태가 마가복음을 개정한 정도를 말한다."{{{-2 (『메시아의 탄생』 165쪽)}}} 비슷하게, 요아힘 그닐카{{{-2 (Joachin Gilka)}}}는 마태오와 루카가 사용한 전승의 원천이 분명히 가계 전승{{{-2 (家系傳承)}}}들과 관련된다고 말했다.{{{-2 (Joachim Gnilka, ''Das Matthäusevangelium. Erster Teil'',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vol. I/1, Freiburg-Basel-Wien 1986.)}}}] 한편, 마태오 1장 23절의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2 (공동번역)}}} 는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한 것인데,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원문이 '젊은 여인'[* "히브리어에서는 한 낱말로 되어 있으면서 앞에 정관사가 붙은 “젊은 여인”은 동정이냐 아니냐, 미혼이냐 기혼이냐의 명확한 구분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경우 ‘처녀’를 의미하기는 하지만(이러한 의미에서 ‘동정녀’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 뜻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젊은 기혼 여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2 ([[https://bible.cbck.or.kr/Knbnotes/Bible/Ls/7|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 성경』 이사야서 7장 14절 주석]])}}} "히브리어 '알마{{{-2 עַלְמָ֗ה }}}'는 '젊은 여인'을 뜻하며, 결혼한 여자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처녀, 동정녀에게도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굳이 결혼한 여자와 구분되는 처녀를 지칭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2 버툴라בְּתוּלָה )}}} 이를 '동정녀'라고 번역한 것은 70인역에서 이루어진 일이다{{{-2 (παρθένος)}}}. 더구나 히브리어 본문에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있어, 이사야와 아하즈는 그 젊은 여인이 누구를 일컫는지 알고 있었으리라고 추정된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부인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는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하즈의 아내다. 히브리 전통에서는 언제나 이 '알마'를 아하즈의 아내 아비야로 보았고, 그 아기는 히즈키야라고 보았다. 히즈키야와 관련된 연대표에 불확실한 부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예언을 히즈키야에게 적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략) 아하즈가 임금이 된 직후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이 일어났고, 그때에 아하즈에게 아직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다고 한다면, 히즈키야의 탄생은 다윗 왕실의 미래를 위한 훌륭한 표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2 ([[도미니코회]] 안소근 실비아 수녀, [[http://www.yes24.com/Product/Goods/27842763|《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바오로딸, 2016, 139쪽-140쪽)}}}]으로 쓴 것과는 달리 '동정녀'라 한 것이 눈에 띈다. 이는 마태오가 [[칠십인역]]에 따라 인용했기 때문이다. "칠십인역은 이 '젊은 여인'을 '동정녀'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2세기(또는, 그 이전)부터 유다교 내의 어떤 전통이, 앞으로 일어나리라 고대되는 이 특이한 탄생을 동정녀 모친에게서 나오는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해했음을 뜻한다. 마태 1,23에 이어서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신탁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다."{{{-2 ([[https://bible.cbck.or.kr/Knbnotes/Bible/Ls/7|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 성경』 이사야서 7장 14절 주석]])}}}[* 이사야서 이야기를 더 상세히 덧붙이자면, 구약 성경은 1차적으로는 당대 독자를 향해 저자가 서술했을 문필적 의미로 읽어야 한다는데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성서 주석학의 폭넓은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있다. "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의 내적 역동성의 종착점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것은 소급적인 인식이며 그 출발점은 본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선포된 신약의 사건들에 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본문 안에서 선포된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비추어, 그리고 성령 안에서 본문 안에 숨겨져 있던 잉여 의미(surplus de sens)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2 (교황청 성서위원회,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pcb_documents/rc_con_cfaith_doc_20020212_popolo-ebraico_fr.html|《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번역은 [[도미니코회]] 안소근 실비아 수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137-138쪽에서 발췌)}}}" 그리고 유다 왕국 내부의 왕자 탄생이 글의 전후 맥락상 이사야서의 1차적인 문필적 의도로 추정되기에, 이사야서의 해당 어휘는 '동정녀'보다는 '젊은 여인'으로 읽어야 원문 문맥에 가깝다.{{{-2 (앞에서 '젊은 여인'에 단 각주를 참고하라)}}} 다만 그렇다고 한들 이사야서의 '젊은 여인' 독법이 '동정녀' 독법을 온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70인역이나 타르굼 등의 고대 번역은, 고대인이 구약을 바라본 '신학'을 현대인에게 보여주며, 실제로 구약을 번역할 때 (70인역뿐만이 아니라) 타르굼 등 고대 번역은 매우 중요한 참고 자료로 쓰인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도 어떤 시대의 예언이 다른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다({{{-2 (안소근 수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137쪽)}}}. 즉 이사야서의 해당 부분을 '젊은 여인'으로 읽으면서도 마태오의 '동정녀' 독법의 타당함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로, '구약 성경'이라는 문헌이 그 내부에서 사용하는 독법에 부합한다. 바로 그렇기에 마태오 1장 23절에서는 '동정녀'로,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는 '젊은 여인'으로 읽는 그리스도교 번역들{{{-2 (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NRSV, NABRE)}}}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후대 독자가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성경 저자의 '1차적 의도'와 후대 독자의 '수용' 사이의 이 미묘한 긴장에 대해서는, [[성경]] 문서의 [[성경#s-8.2|성서 주석학을 통한 성경 읽기]] 부분을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