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예수 (문단 편집) === 탄생 배경 === 예수의 조상이나 가계는 역사적으로는 불분명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에 귀족이나 제사장 출신도 아닌 서민의 집안에서 가계를 기록하는 경우는 없었고 대체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까운 조상 정도의 계보나 자신이 어느 지파 소속인지만을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경 기록에서 기적이나 신비적인 사건을 제외하고 본다면, 로마 제국의 사실상 식민지인 이스라엘 왕국[* 헤로데 대왕 당시는 헤로데가 로마를 등에 업고 왕위를 차지한 것이라서 아직 공식적으로는 로마의 땅은 아니었다. 헤로데 대왕이 죽자마자 후계자들의 통치권은 로마에게 뺏기지만.]의, 북부 지역인 [[갈릴래아]] 지방의, 촌락 [[나자렛]]에서 목수 [[나자렛의 요셉|요셉]]과 [[성모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파에 대해서는 [[바오로]]의 서간에서 "유다 지파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서술되어 있다. 바오로가 유대인이기에 예수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메시아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운 근거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라는 것만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증거로는 상당히 빈약하다. 대다수의 역사적 예수론에서는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 자체를 의심하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는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는 유대인들의 사상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인 결과 "신학적 진술의 역사화"로서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 레이몬드 E. 브라운, 『메시아의 탄생』, CLC, 2014, 825-826p. 이하 『메시아의 탄생』으로 표기] "신학적 진술의 역사화"이론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우선, 다윗의 자손이라는 조건이 메시아로 인정받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문제를 제시한다. 가령 2세기 초 [[바르 코크바|바 코흐바(Bar Kochba, Simon ben Kosibah)]]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음에도 랍비 아키바 등에 의해 메시아적 인물로 추앙받았다. 아울러 주의 형제 야고보 등 초기 교회에서 알려진 예수의 친족들이 다윗 자손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묵인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유대인들이 사생아라는 비난은 가했을지언정 다윗 자손이라는 주장에 대해 논쟁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다윗 혈통이 전적으로 꾸며진 것이라고 본다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지적한다. 또한 신약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바오로]]의 서신에서도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 자신이 베냐민 지파임을 2번이나 강조하는 바울이 다윗의 혈통에 무관심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적으며, 다윗 혈통에 대해 오류를 범할 경우에는 그의 사도직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 의해 공격당할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메시아의 탄생』, 831p]하며, 제일 이른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에서도 당당하게 예수가 다윗의 후손임을 주장한다는 점 역시 근거로 지목된다.[* 『메시아의 탄생』, 828-830p ] 어쨌건 성경에서는 [[마태오의 복음서]] 1장에서 기록된 예수의 계보에 따르면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고 나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까지가 14대이며,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14대이다. 마태오 복음서 1:17(공동번역성서)] [[루가의 복음서]] 마찬가지로 예수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계보를 서술했지만, 마태오 복음서의 족보와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 족보의 차이는 신학계에서 자주 다뤄진 떡밥.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의 해당 서술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관념인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중에서 나온다'는 생각과 '메시아 탄생 때에는 특별한 하느님의 표징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서술로 추측된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하며 [[나자렛의 요셉]]에게 [[성모 마리아]]의 잉태를 알리는데, 해당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원문은 동정녀가 아닌 '(결혼하지 않았을 정도로) 젊은 여인'이다. 그런데 구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역 성경에서는 그것을 동정녀로 옮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느님의 특별한 표징' 중에는 처녀 잉태가 포함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구세주의 동정녀 출생 신화 부분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주장된다.[* 단, 조로아스터교의 동정녀 신화는 조로아스터의 정액이 풀려져 있던 호수에서 동정녀가 목욕을 해서 조로아스터의 자식을 잉태한다는 내용이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신화와 서사 구조적으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현대 신학계에서는 족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두 복음서가 같은 자료를 기반으로 서술되었지만 서로를 참고하지 않고 서술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는 족보를 아브라함까지 거슬러가고, 루카 복음서는 아담과 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마태오 복음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인 복음서여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서술한 것이며, 루카 복음서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쓰인 복음서여서 모든 인류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두 복음서 모두 다윗의 후손인 [[나자렛의 요셉]]과 [[성모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으며, 예수는 그때 출생하여 나자렛에서 자랐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관념을 적용한 서술. 마태오 복음서에는 [[나자렛]]에서 살던 마리아-요셉 부부가 왜 뜬금없이 베들레헴에 있었는지 이유를 말해주지 않지만 루카 복음서는 호적 조사 때문에 잠시 간 것이라고 한다. 단 역사적으로는 어느 시점의 호구 조사인지 불분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도 [[메시아]]가 태어날 수 있는 지역임을 강조하기 위해 2장 6절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라는 미가서 5장 1절, 사무엘하 5장 2절을 섞은 인용을 하고 있다. 설명하자면, 당시 유대 땅은 '바빌론 유수' 이후에 왕족, 귀족의 후예들은 조상들이 살았던 남유다 지역에 몰려서 살았는데,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귀족, 왕족 출신들도 내려와서 같이 살게 되면서 하나의 타운을 형성한다. 그 타운은 크게 도시들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크게 예루살렘, 여리고, 베들레헴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오 복음서 필자는 위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베들레헴도 과거에 왕족들이 타운을 형성했던 고을이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덧붙이려는 의도로 헤로데 대왕과 제사장들의 대화를 기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역사적 예수론에서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의 예수 탄생 서술은, 실제로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근거로 해석된다. 예수가 나자렛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팩트이기 때문에, 예수가 곧 메시아라는 그리스도인들의 구약 성경 해석에 끼워 맞추기 위해 어떻게든 구약 성경상의 근거를 붙이다 보니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 서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