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맥 (문단 편집) == 예맥(濊貊) ==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예맥'''과, 동쪽은 옥저와, 북쪽은 부여와 접한다.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편 > ... '예왕의 도장'이라 하니 나라의 옛성에 예성이 있다. 대개 근본은 '''예맥'''의 땅이다.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노릇을 하고, ... >----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편 > 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다에 임하여 거한다. 그 땅의 형태는 동쪽과 북쪽은 좁고 서쪽과 남쪽은 길다. 가히 1,000리이다. 북쪽으로 읍루와 부여에 접하고, 남쪽으로 '''예맥'''에 접한다. >----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옥저 편 역사속에서 '''예맥'''이란 명칭으로 우리 [[민족]]을 처음 분류한 사람들은 [[한나라]]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료에서는 [[한국인|예맥인]]들의 문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예맥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향해기술로 [[일본열도]]와 교류하는 것은 힘들었고, [[고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의 예맥인들에게 타민족이란 동북방의 [[말갈]]과 대륙의 [[되놈]]들 뿐이어서 자신들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은나라]]시절부터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나누었는데, 한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다른민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중화사상]]을 처음 정립하고 이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5방이라는 규범단위를 만든지 한참 지나서 예맥을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대 사료에서는 이민족들을 거대한 규범단위[* 그들은 자신들을 [[중화]]로 규정하여 문명의 중심지로 보고 외부의 타민족들을 특성에 따라서 [[북적]], [[동이]], [[남만]], [[서융]]으로 나눈 뒤에 세부적으로 다시 나누었다.]로 먼저 나누고 그것을 다시 문화권으로 다시 나누어 그들을 구분했다. 그들의 구분 중에서 예맥은 [[동이]]로 나뉘었는데, [[왜]]와 [[말갈]][* 다만 말갈을 북적으로 구분될 경우도 있었다.]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전부 예맥[* 다만 예맥인 [[고구려]]는 당과 큰 마찰을 빚을 때는 북적으로 구분될 때도 있었다.]으로 분류되었다. 본래 [[동이]]는 최초의 [[중화제국|통일 제국]]인 [[진(영성)|진나라]]가 등장하기 전인 [[하나라|하]], [[은나라|상]], [[주나라|주]] 시절에는 [[중원]] 동쪽의 [[외국|이국 세력]]들[* 관(管)나라, 채(蔡)나라, 곽(霍)나라, 엄(奄)나라,육(六)나라, 주래(州來), 거(莒)나라와 담(郯)나라 등의 현재는 없어진 예맥도 [[한족]]도 아닌 이민족 부족국가들]이나 왕국 동쪽의 비중화권 [[제후국]][* [[주나라]] 시절의 [[노나라]], [[제나라]]와 [[춘추전국시대]]의 [[서나라|서(徐)나라]], 래((萊))나라]들이 동이족으로 분류되었었다. 하지만 최초의 통일 [[중화제국]]인 [[진(영성)|진나라]]가 들어선 다음에는 오직 예맥만이 유의미한 동이로 남았다. 북방의 [[유목민족]]과 명백하게 차별되는 문화를 보였을 뿐만이 아니라, 고대에는 윤리의식이 상당히 부족했던 유목민족[* [[북적]]의 의미는 북방의 야만스러운 오랑캐들이란 소리다. 유목민족은 [[약탈]]과 [[강간]]을 하는데 꺼리낌이 없었고 무엇보다 수틀리면 비무장 시민들도 [[학살]]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상 비교적 온건하고 문명적이었던 예맥이 동이의 주류로 남은 뒤[* [[청나라]]시절까지도 [[일본]]은 조공책봉체제에서 관심 밖이었다. 주요 [[제후국]]취급을 받았던 조선과는 대조적]에는 그들을 책봉체제 안에 넣으려고 상당히 공을 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쪽의 기록을 기반으로 예맥(濊貊)족이 원래 하나라는 가설을 세운 학자들과 예(濊)족과 맥(貊)족은 서로를 구분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 통합되었다는 학자들로 나뉜다. 예맥쪽이 원래 하나였다는 가설을 세우는 학자들은 기록에서 예족과 맥족을 구분하는 것은 중국 쪽에서 임의로 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예족과 맥족의 언어에는 차이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고조선 이전에 예족과 맥족에 언어적 차이가 있었다면 [[삼국시대]]가 시작되는 때 쯤에는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언어적 차이가 나야하는데, [[고구려어]]와 [[신라어]]와 [[백제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대한민국 표준어도 기원이 [[고구려]]어이고[* 신라가 대동강이남을 한정하여 불완전한 삼국통일을 했었지만 중앙집권제와 융합에 실패하여 고구려인들과 백제인들의 언어적 문화적 동화를 하는데 실패했다. 그 후 왕건이 고려로 재통일한 이후에 개성의 모어인 [[고구려]] 남방어+ 북방 [[백제]]어가 중세 우리말의 표준이 되었고, 고려어가 조선어로 이어졌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표준어]]의 모체는 맥(貊)족어인데, 한(韓)족의 [[신라어]]가 모체인 [[경상도]]방언가 표준어는 차이가 없고, 예(濊)족의 언어가 모체일 [[동북 방언]]도 큰 차이가 없다.[* 고대에는 공교육이 없고 인구가 적어서 언어가 쉽게 변했다. 단적으로 같은 [[게르만어]]를 모체로하는 [[네덜란드어]], [[독일어]], [[노르웨이어]]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같은 [[로망스어군|라틴어]]를 모어로 하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즉 기원전 2333년에 예족, 맥족, 한족의 언어에 차이가 있었으면 약 2100년 뒤인 [[삼국시대]]에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란 것이다. 심지어 약 500년 동안 나뉘어있던 [[삼국시대]]에도 언어분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서 [[삼한일통]] 후에도 언어가 통했고, 그 이후부터 또 약 300년간 북방의 발해와 남방 신라로 나뉘어있었음에도 고려어와 발해어에는 큰 차이가 없어서 발해 유민들이 무리없이 고려인들에게 섞여들어갔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증거다.] 반면 예(濊)족과 맥(貊)족이 실체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언어와 민족관은 별개라고 보는 것을 기반으로 하며, 이를 기반으로 맥족이 예족을 흡수-동화해가는 것이 북방에서의 우리민족 역사라고 본다. [[단군신화]]를 예(濊)족과 맥(貊)족의 통합과정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당시 [[반농반목]]을 하던 예족을 목축과 방목을 하던 맥족이 정복한 것으로 보며, 실제로 고조선을 세운 것은 맥(貊)족이다. 이러한 학설의 근거는 외국의 사료에 있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호랑이]]를 예족으로 본다는 것이다. 중국 외의 자료로는 곽박의 《이아(爾雅)》와 《일본서기》[* [[고구려]]를 '''[[맥#s-2|박(狛)]]'''이라고 쓰고, '''[[곰|코마(こま)]]'''라고 읽었다.] 등을 근거로 들 수 있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맥'(貊)이 [[곰]]을 의미하므로 '''단군신화에서 예(濊)족이 [[호랑이]]이고 맥(貊)족이 [[곰]]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단군]]은 [[제사]]와 [[정치]]를 같이하는 제정일치사회의 수장이었고, 고조선이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보니, 하늘과 태양에 제사를 지내던 [[샤머니즘]]세력[* 천신족(天神族)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이 곰을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던 맥족과 손을 잡고 호랑이를 숭배(토템)하던 예족을 복속하여, [[단군조선]]을 건국했다고 볼 수 있다고 이 학설에서는 설명한다.[* 당연히 정설이라고 볼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 어디까지나 신화를 해석하는 설 중 하나일 뿐임을 유의하자.][[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318820|#]][* 출처: 위키백과 한글판, 원 출처는 《한국사》 1권(1973), 《한국민족문화대백과》로 제시되어 있음. 추가로 제시된 링크 (# 부분)의 경우, 신용하 교수의 저작을 언급하는데 신용하 교수는 2000년대, 즉 70대까지는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단체, 독도 영유권 등을 다루던 학자였지 고대사 학자는 아니다.] 여담으로 한(韓)족인 [[삼한]] 사람들이 [[곰]]을 토템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