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도 (문단 편집) ==== 현대 중국 검술의 원류? ==== 의외로 명나라 말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중국 검술의 계보에서 조선세법이 남긴 흔적은 상당하다. 신유도법을 제외하면 문헌상으로 그 초식과 투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검법이 무비지의 조선세법이기 때문에 그렇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검보는 원말명초에 필곤(畢坤)이 쓴 혼원검경(渾元劍經)이지만 그림 없이 글로만 되어 있는데다 구체적인 투로 묘사는 없고 도교적으로 뜬구름잡는 내용뿐이라 검법을 복원할 수 있는 사료가 아니다.] 명나라 멸망 이후 멸청복명을 추구한 무술가인 왕오공(王五公)이 창시한 왕오공태극연환십삼도(王五公太極連環十三刀)의 검보를 보면 체보(掣步), 흔기(掀器, 흔격세), 간수(看守, 간수세)처럼 조선세법에서만 보이는 용어가 나타난다. 또한 1908년에 작성된 『검법진전도해』를 보면 격자격세(擊刺格洗)를 근본으로 두는데 이 역시 조선세법 초습의 개념이다. 그리고 검법진전도해는 이후 1920년의 『검술기본교련법,』, 1923년의 송유일의 『무당검술』, 1927년 진미명의 『태극검』, 1929년 오지청의 『칠성검』, 1930년 강용초의 『곤오검』, 1930년 조연화의 『달마검』, 1931년 황원수의 『무당검법대요』등 현대 중국 검술의 근간이 된다. 카게류 왜검술에서 비롯된 신유도법이 단도법선 - 왕오공태극연환심삽도[* 왕오공태극연환심삽도는 단도법선과 조선세법을 참고해 도법과 검법의 결합을 추구했다.] - 묘도법으로 현대까지 이어진 걸 보면 중국 검술은 조선과 일본의 영향 모두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검술의 국적을 따지게 된 것은 [[한족 민족주의]]가 심화된 21세기의 일이고 본래 중국인들은 외국 무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넨류]]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qawsedzaxscd&no=1278|직심영류]]의 예에서 보이듯이 일본 검술도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군은 [[무예도보통지]]로 익히 알려졌듯 명나라, 청나라, 일본 무술를 모두 배우려 애썼으니 동아시아 무술사에서 순혈주의적 접근은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