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도 (문단 편집) === 중국 검술과의 관계 === 예전에는 모원의가 조선세법을 조선에서 얻었다고 강조했고, 예도는 영조때의 군관 고후점을 통해 전수되면서 훈련도감에서 수련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본국검과 함께 부정할 수 없는 민족 전통의 검술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되면서 조선세법의 단어는 물론, 세법의 이름과 초식까지 중국 이화창, 소림곤법천종 등 중국 쪽과 동일하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이들과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화창과 소림곤법천종에서 발초심사는 무기를 낮게 두었다가 들어올리면서 옆으로 밀어내는 동작인데, 조선세법 점검세에서도 칼을 아래로 내린 그림에서 발초심사세를 거쳐 어거세로 전환하는 동작은 중국의 발초심사와 똑같다. 또 백사롱풍세는 봉두세에서 나타나는데, 이화창과 곤법천종에서 백사롱풍은 좌우로 섬잠화창하거나 아래로 내린 무기를 들어서 상대 무기를 옆으로 눌러 내리는 동작이고, 역시 봉두세가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는 기법임을 볼 때 조선세법의 백사롱풍세도 동작이 완전히 같다. 직부송서세는 중국 명나라 무술에서 주먹이나 무기를 찔러서 앞으로 뻗은 것을 말하는데, 조선세법에서도 똑같은 용례로 쓰인다. 조천세는 무기를 하늘로 들어올린 자세, 찬(鑽)은 찌르듯이 밀어 치는 것, 요(撩)나 략(掠)은 올려베기를 뜻하는 등 단어 몇개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 중국 명나라 무술과 똑같다. 그래서 단순히 '''단어만 영향받았다''' 라고 주장할 수가 없는 수준이고, [[몽골어]]와 [[모골어]]처럼 근연종 수준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모원의가 이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모원의가 검술을 되찾았다고 얘기한 기록을 보면 검술의 기원을 해명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그냥 당시 중국에선 양날검을 사용하는 방법이 사라졌는데, 조선에는 그 기술이 있으니까 이를 다시 얻어왔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애초에 모원의 본인도 검술 이름을 아예 조선의 칼 쓰는 법이란 의미로 조선세법이라 짓기도 했고. 비유하자면 조선군이 "과거 신라 대에는 검술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더 이상 검술이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일본으로부터 검술을 얻어 이(검을 사용하는 기법)를 되찾았으니, 일본세법이라고 하겠다."라고 표현한 것.] 어쨌든 중국의 검술을 상서, 등운에 비유하며 조선에서 되찾았다는 시각을 예전에는 그냥 중화사상 정도로 생각했지만 나름의 근거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격세 같은 자세의 단어가 일반적인 중국어 한자 문장의 형식과 안맞고[* 중국 문법으로 따지면 요격세는 허리로 친다가 되며 허리를 친다는 격요세가 맞다. 물론 중국에서도 강조 등을 이유로 가끔 어순을 바꾸는 경우도 있긴 있다. 다만 세명은 그렇다쳐도 자세를 설명하는 부분까지 "요격세자, 즉요격야"라고 어순이 바뀌어 있는 것은 확실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우수우각, 좌수우각 등의 주로 쓰이는 손발을 표현하는 단어는 기존의 중국무술 사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서술법이며, 상살(上殺), 중살(中殺), 하살(下殺)의 살(殺) 표현은 이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 종합하면, 중국 검술을 배웠던 한반도 국가의 사람이 그 검술을 바탕으로 어레인지를 더한 검술, 즉 '''중국 검술을 기반으로, 혹은 중국 검술을 참고하여 한국식으로 개량한 검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카게류를 토대로 만들어진 신유도법도 카게류의 용어가 아닌 척계광이 고안한 초식명과 용어로 서술되어 있으며 무예제보번역속집의 왜검보도 조선군이 이미 익숙히 아는 신유도법 및 자체적으로 고안한 용어(ex: 용나호확세)로 서술된 사례가 있기에 중국무술의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 중국 출처라 보기에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편으로는 조선세법에서 가장 중시하는 허리치기(요격세)의 명칭과 설명이 전부 조선식 어순으로 되어 있는 점과, 다른 초식명과 다르게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묘사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검보 기록자는 따로 있고 세법을 전수한 조선인 검객은 한문을 모르는 까막눈이라는 주장도 있다. 백사'''롱풍(弄風)'''이 무슨 말인지만 알아도 '''요격(腰擊)'''과 같은 틀린 표현은 쓰지 않는데 그마저도 모르는 사람이 중국인으로부터 검술을 교습받기는 어렵다. 조선세법에서 사용된 표현이 특정 중국 무술에서만 사용하던 말이라면 해당 무술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백사롱풍과 발초심사, 직부송서 등은 이화창과 소림곤법천종 등 명대의 여러 중국 무술에서 공통으로 쓰일 만큼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또한 중국식으로 분류되는 표현들이 짐승의 움직임이나 고사를 인용한 세련된 문장인 것과 달리 우수우각, 좌수우각 및 하살, 중살, 상살 등의 조선식 표현들은 대체로 한문 초보나 쓸 법한 단순한 표현인 점도 그렇다.[* 살(殺)은 그 원색적인 어감도 그렇고 고작 초식의 일부로 상대를 살(殺)한다는 것이 굉장히 오만하게 들리기에 중국 무술에서는, 특히 투로의 서술용으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전근대에 무예는 통달했으나 문맹인 경우는 드물지 않고[* 심지어 액션 배우로 유명한 [[성룡]]은 20세기 인물인데도 20대까지 문맹이어서 부인인 임봉교가 대본을 대신 읽어주기까지 했다.], 글 모르는 조선인이 주먹구구식으로 설명한 검리를 중국인 호사가가 중국인 독자를 위해 알아듣기 쉬운 중국식 용어로 옮겨 적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검리는 한국의 고유한 것이되 용어와 설명만 중국식으로 된 검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원의가 잃어버린 검법을 '되찾았다'고 한 것도 '중국의' 검법을 되찾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검법 그 자체를 다시 도입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조선세법을 접하기 전까지는 검법에 대해 무지했을 뿐더러 곤오검결이 한손검에 대한 내용인지도 모르고 같이 실어버린 사람이 조선세법의 서술이 명나라식인지 조선식인지 알았을 리도 만무하다. 물론 역사는 사료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조선세법의 기원을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료상 확실한 것은 조선세법이 조선에서 왔고 조선인의 손을 탔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100% 순수한 조선의 것인지, 중국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뿐이다. 무예제보번역속집의 왜검보가 어느 왜인에게서 배운 것인지도 모르고 조선식+중국식 서술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일본 출처인 것이 확실한 것처럼 조선세법의 출처가 조선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아울러 무비지와 별개로 고후점으로부터 전한 예도는 거기에서 증보된 4세를 포함하여 [[검무]]의 형태[* 칼을 던지고 받는 것은 [[박제가]]의 정유각집 중 검무기에서도 묘사될 만큼 조선 검무 특유의 동작이었다.]로 수련하는 등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무예도보통지 예도는 확실히 한국 검술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