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니체리 (문단 편집) == 특징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456e9649c9862fc88eabc47677655bac.jpg]] [[활|궁술]]을 비롯한 각종 [[무기]]들을 능숙하게 다루도록 훈련받았다. 초기에는 활을 주 무기로 하고 [[할버드]], [[검]], [[도끼]] 등을 부무장으로 사용했으나, [[머스킷]]을 도입한 뒤에는 활 대신 머스킷을 주 무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유럽 국가보다 훨씬 빠른 1440년경에 머스킷을 제식 채용[* [[화승총|아르퀘부스]]는 15세기 말, [[머스킷]]은 16세기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아마 이때 예니체리들이 사용한 화약 무기는 [[핸드 캐논]]이 아닌가 싶다.]했다고 한다. 유럽 군대와는 달리 [[화망]]을 짜서 사격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적을 조준해서 쏘는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수류탄]]이나 대형 화포도 일찍부터 많이 사용했고, 17세기 말이 되면 유럽 군대와 마찬가지로 [[플린트락]]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총검]]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병사 개인의 무용을 중시하였던 예니체리들은 검을 선호하였다. 주 임무는 전장에 친정하는 술탄의 호위. 다가오는 적을 활이나 총으로 격퇴하거나, 또는 아군 기병이 뒤로 빠진 이후 달려오는 적병을 막아서는 역할도 했다. 훈련 기간이 긴것 답게 싸움 실력도 좋고 사기 역시 매우 높았다고 한다. 또한 폭파나 기술자, 굴파기 부대나 [[공병]], 지정 사수 등의 특수 임무를 맡은 소규모 조도 운영했다. 아예 군의관에 요리사, 예니체리 전용 물자 보급반까지 딸려 있을 정도. 지극히 비효율적인 짓이긴 하지만, 순수 예니체리 부대만으로 군사원정을 벌이는 것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 외에도 평상시에는 [[군사경찰|헌병]] 겸 황궁 호위병, 소방관 노릇도 했다. 오스만 제국의 대규모 원정에는 반드시 참여했고 전공도 많이 세워서 오스만 제국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예니체리도 서유럽에서는 '[[악마]]의 군단'이라는 식으로 악명을 떨쳤고, 제국 내에서도 정예병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고위급에 올라서 제대로 퇴직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결혼]]도 못 하고 평생 군대에 붙잡혀 있는 인생을 살았기에 개인적인 삶이 별로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직업군인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이 철저해야만 군대에 붙잡아둘 수 있었으므로, [[기사단|보수와 사회적 지위도 상당했지만 처자식도 없는 군인이 돈 잘 벌어 봐야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겠는가?]] 후술되듯 정부 입장에서는 어지간한 인재가 아니고서는 결혼시켜서 그렇게 좋을 거 없긴 하다. 최하층 집단에서 자질만 보고 뽑아와서 충성심으로 기른 집단인데 후손을 남기게 되면 예니체리로 인한 신분상승자와 새로운 예니체리가 점점 쌓이는 신분 적체현상이 생기거나, 예니체리 자손들에서 예니체리를 뽑으므로 여러 표본 집단에서 자질과 의욕이 뛰어난 젊은이들만을 가려뽑아 입맛대로 훈련시킨다는 근본적 강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하층민인 기독교인 짐미로 사는 것보다야 나은 셈이고, 전근대 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방편이라는 의의는 있었다. 이 항목의 제목이 예니체리다 보니 예니체리에 대해 중점적으로 서술했지만, 상술했듯이 데브시르메로 뽑히면 군인뿐만 아니라 기술자나 예술가, 관료가 될 수도 있었다. 즉, 머리만 좋다면 자신의 고향에 총독 각하로 부임하거나 아예 재상까지 승진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