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화관 (문단 편집) === 한국 === 기존에는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왕실이 주도하여 세운 한양 [[정동]]의 협률사(協律社)를 최초의 극장으로 보았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이미 1890년대에 극장이 등장했음이 드러났다. 1892년 인천의 '인부좌(仁富座)'는 일본인들이 만든 것이었지만, 우리 손으로 설립한 최초의 극장은 서울 협률사와 다른 '협률사(協律'''舍''')'로, [[1895년]] [[인천]] [[중구(인천)|중구]] 경동에 문을 열었다. 이 협률사는 이후 '축항사(築港舍)'로, 그리고 1924년(일설에는 1915년)에 '애관(愛館)'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현재 [[애관극장]]의 전신이다.[[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120000005118|#]][[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206|#]][* 건물은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고, 이후에도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쳤었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2041845601|#]]] 1907년에는 한국 최초의 상업 영화관 [[단성사]]가 개업하였고 이 후 서울 종로구를 일대로 1960~70년대까지 여러 단관 극장들이 개장하여 한국에서도 영화관이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영화관들이 단관 극장이었으며, 많아봐야 3~4개의 스크린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1989년 서울씨네마타운(서울극장)이 3개관으로 증축한 것이 시초이며, 이후 서울의 몇몇 단관 영화관들이 스크린 개수를 늘렸다. 그러던 1998년, 11개의 상영관을 갖춘 [[CGV 강변|CGV 강변11]][* 개점 당시 명칭.]이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특히 CGV는 최초로 [[CJ그룹|대기업]]이 멀티플렉스 영화 산업에 투자한 케이스여서 화제가 되었다. 이듬해인 1999년 [[롯데그룹]] 계열 [[롯데쇼핑]]도 멀티플렉스 영화산업에 뛰어들어 [[롯데시네마]]를 런칭했고, [[동양그룹]] 역시 [[메가박스]]를 런칭했다. 이것이 2010년대부터 대한민국 영화산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탄생의 순간이었다. 이렇게 멀티플렉스 극장이 크게 유행을 타자 기존의 영화관들은 위기를 맞았고, 대다수의 극장들이 단관에서 멀티플렉스로 전환하여 영업하기 시작했다. 사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형 멀티플렉스의 영향력이 현재만큼 크지 않았기에 기존의 영화관들 역시 멀티플렉스 형태로 전환하여 건재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대형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중소기업이나 영화업체들이 합동주주인 회사들 역시 멀티플렉스 사업에 뛰어들어 만족할 만한 입지를 내며 장사하곤 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대형 멀티플렉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반 영화관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거나 대형 멀티플렉스에 흡수되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에 들어서는 사실상 대형 멀티플렉스 3사가 영화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영화산업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 3사가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