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프독 (문단 편집) === [[영불관계]] === 영불 양국은 [[중세]] ~ [[근세]]까지 크게 대립하였다. 이때는 양국의 영토가 서로의 영역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영국에 [[노르만 왕조]]가 등장하고, 노르만 왕조에 이어 개창된 [[플랜태저넷 왕조]]의 [[헨리 2세]]가 [[엘레오노르 다키텐]]와 결혼하면서 영국 국왕은 노르망디부터 가스코뉴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게 된다. 당시 파리와 오를레앙 정도만 직할 영지로 영유하고 있던 프랑스 국왕의 세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 이것이 불거져서 터진 전쟁이 바로 [[백년전쟁]]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미국 독립전쟁]]~[[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다가 [[식민제국|식민지 쟁탈 시기]]에는 [[라이벌]] 관계 정도를 형성했고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해 긴장이 완화되었다. 백년전쟁의 결과로 영국은 섬으로, 프랑스는 대륙으로 갈리고[* 단, 유럽 대륙에 있는 [[칼레]]는 유일하게 백년전쟁이 끝나고서 100여년 동안 영국 영토로 있다가 1558년에야 프랑스가 차지했다.] 영국은 [[대항해시대]] 이후 [[대서양]]에 집중한 것도 이 두 국가의 갈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격화하지 않는 것에 기여했다. 대륙에 확고한 영향력을 지키려는 프랑스, 세력의 균형을 지키려는 영국의 전략으로 근세 시기에도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 맞붙는 일이 많았지만 서로의 영역과 국경이 확고했기 때문에 서로의 영토를 침탈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단, 나폴레옹 시기만큼은 프랑스가 전 유럽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에 [[대륙봉쇄령]]과 같은 큰 갈등이 벌어졌다. 결정적으로 영프의 관계가 호전된 계기는 [[1차 대전]]을 앞두고 이루어진 [[영불협상]](1904)이었다. 이후 [[2차 대전]]에서도 같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있으면서 우방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오늘날에도 두 국가는 모두 UN [[상임이사국]]을 맡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