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춘권 (문단 편집) == 역사 == 기원에 관해서는 이설이 여럿 있어 대표적인 것만 추린다. 우선 [[청나라]]조에 저항했던 무술가 가운데 오매사태(五枚師太)가 창시해 엄영춘(嚴詠春)이란 여인에게 전했다는 설이다. 오매사태는 청나라의 공격으로 소실됐다고 전해지는 복건 소림사의 소림오조의 일원으로 무술이 매우 뛰어난 비구니(여승)였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 소림사의 비구니 오매선사가 마을에서 아버지와 두부 장사를 하던 엄영춘에게 전해주었다는 설인데, 엄영춘은 마을에서 지조와 품위가 있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불량배가 엄영춘에게 자신과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자 오매선사가 소림의 권법으로 불량배들을 물리치고, 영춘에게 일부 기술을 알려준 뒤 엄영춘이 부단한 수련으로 다시 찾아온 불량배들을 무찌르고 영춘권이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엄영춘 관련으로 이설이 여럿 있다. 엄영춘과 정략결혼하려는 한 장군이 있었는데 엄영춘이 싫어서 거절하려 했더니 이 장군이 격투로 자신을 이기면 결혼을 파기하고 물러나겠다는 조건을 걸자, 엄영춘 스스로 영춘권을 창시해 장군에게 격투를 걸어 박살내버렸다는 기원설도 있다. 가능성은 한없이 낮지만, 이 설을 따르자면 중국권법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을 만한 '여성이 창시한 무술'이다. 오매사태는 소림오로(少林五老)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실이라면 영춘권과 [[홍가권]]은 형제뻘인 셈이지만 당연히 '''근거는 없다'''. 혹은 오매사태가 묘순(苗順)에게 전했고, 묘순은 엄이(嚴二)에게, 엄이는 딸 엄영춘과 사위 양박주(梁博儔)에게 전했다는 설이 있다. 마지막으로 영춘현에 사는 엄씨 집안의 셋째딸이 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우고, 스스로 백학권을 만들었다가 이를 개량한 형태라는 설이 있다. 위 인물과 행적은 모두 실재 여부가 불확실하며, 광동성 불산[* [[황비홍]] 덕분에 친숙한 바로 그곳.]에서 행제당(杏濟堂)을 운영하던 의원 양찬(梁贊)이 황화보(黃華寶)에게 영춘권을 전수받은 뒤부터 유명해졌다. 영춘권왕이라 불린 양찬은 생업이던 의업에 바빠 평생 제자를 아들 둘을 포함해 네 사람만 길렀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진화순(陳華順)이다.[* 사실 세 명만 키우려고 했지만, 진화순이 몰래 보고 훔쳐 배운 뒤 양벽과 시비가 붙어서 싸울 때 영춘권을 사용하다가 양찬에게 걸리는 바람에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진화순은 도장을 열고 영춘권을 가르쳤지만, 기술마다 교습법이 따로 있어서 스승이 제자 옆에 붙어서 일일이 가르쳐야 했다. 이 때문에 어지간해선 [[멀티]]를 돌릴 수 없었고, 세간에선 권법 하나 가르치면서 더럽게 비싸게 군다고 소야권(少爺拳, 도련님 권법)이라 조롱하는 실정이었다.[* [[미국]] 무술 잡지에 실린 전 영춘권 수련자의 수기에 따르면, 어린 시절 [[이소룡]]과 친구가 되었고 그를 통해 영춘권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엽문]]에게 다음 투로를 가르쳐달라면, '얼마 있어? 그걸로 뭘 배우려고 해!'라는 면박만 받았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 엽문전전에서도 엽문이 양벽과의 대련에서 패배하고 내일 다시 오라는 양벽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며 양벽이 엽문에게 "자신에게 영춘권을 더 배워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엽문이 "자신은 돈이 없다." 하고 하면서 난감해 하자 "(자신은 영춘권을 좀 더 배워 보고 싶지 않느냐 물었지) 누가 돈 있냐고 물었느냐?" 하고 도리어 면박을 준다.] 이건 비단 영춘권만 그런 게 아니라 현대 태극권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양로선]]의 [[양식 태극권]]도 주로 부잣집 자제들을 위주로 가르쳤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진화순이 말년에 거둬들인 제자가 바로 [[이소룡]]의 스승으로 유명한 [[엽문]](葉問)이다. 이쪽도 나름대로 사연이 파란만장했다. 부자집 자제였던 엽문은 어려서 몸이 허약해 영춘권을 배웠다. 그런데 미처 다 배우기도 전에 진화순이 죽는 바람에(…) [[사형]] 오중소(吳仲素)에게 배웠고, 그나마 도중에 [[홍콩]]으로 유학을 가느라 다 배우지 못했다. 이후 엽문은 타고난 기질 때문에 홍콩에서 길거리의 불한당들과 싸움을 벌이고 다녔는데, 양찬의 큰아들이자 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양벽(梁璧)이 그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발라버린 뒤, 영춘권을 배운 사연을 듣고는 그의 스승이 되어 영춘권을 모두 전수했다.[* 양찬은 친아들이 아니었던 진화순에게 영춘권의 진수를 모두 전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엽문은 모든 기술을 전수받은 양벽을 만나는 기연으로 영춘권을 모두 배울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 다만 양벽은 그를 진화순의 제자라고 여겼다.] 엽문은 [[국공내전]] 당시에 [[중국 국민당|국민당]]의 [[경찰]]이었기 때문에 공산혁명 이후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도피했다. 거기서 생계를 위해 도장을 열었는데, 제자들이 길거리 대련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자 영춘권은 홍콩을 중심으로 급격히 뻗어나가게 된다. 영춘권도 분파가 여럿 있지만 엽문파 영춘권의 지명도가 가장 높다. 현재 엽문의 아들인 [[엽준]] 노사가 대를 이어 영춘권의 종사로 있다. 엽문파도 여러 계열로 갈라졌기 때문에 엽문파 영춘권을 찾기보다는 엽문에서 갈려져 나온 제자들의 성향에 따라 어느 계열이 본인과 맞을지 생각하고 수련하는 것이 좋다. 국내에 들어온 계열은 주로 엽문파 도장들(서울기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