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의정 (문단 편집) === 태종 ~ 명종 === * [[이서(1332)|이서]]: 1401년(태종 1) 최초로 영의정부사에 임명되었다. * [[이거이]]: [[1399년]](정종 1) 파면된 [[의안대군(이화)|의안공 이화]]를 대신하여 판문하부사가 되었다가, 의정부와 문하부가 아직 분리되어 있던 1400년(정종 2) 판문하부의정부사가 되었으며, [[1402년]](태종 2) 영의정부사가 되었다. * [[성석린]]: [[1403년]](태종 3) [[성석린]]이 영의정부사로서 [[영락제]] 즉위 축하 사절로 정해지자 명목상 우두머리일 뿐 집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국 측이 트집을 잡을 것을 우려한 [[사헌부]]는 이를 비판하고 집정인 좌정승 [[하륜]]을 보낼 것을 주장하였다. * [[조준(조선)|조준]]: 1392년(태조 1) 배극렴이 죽자 문하좌시중이 되었다. [[1399년]](정종 1) 판문하부사가 되었다가 태종 연간에는 이서, 이거이, 성석린 다음으로 영의정부사에도 올랐다. 이 때는 영의정부사가 명예직이어서 우두머리 재상인 좌정승으로 직무를 보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 개념으로 받은 것으로, 그는 영의정부사가 된 지 5개월 뒤에 죽었다. * [[의안대군(이화)|의안대군 이화]]: 태조의 이복동생으로 [[1398년]](태조 7) 판문하부사가 되었다가 태종 연간 초기에 영의정부사를 지냈다. * [[하륜]]: 이 사람이 영의정을 하던 시절부터 영의정의 위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 [[남재]]: 태조의 배향공신이자 [[남은]]의 형. 태조, 태종, 세종 3대를 직간접적으로 옹립해 유명하다. * [[류정현]] * [[심온]]: 세종의 장인이지만 외척을 경계한 태종에 의해 본인과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고증을 증명하듯 국문을 받을 때 영의정부사는 실권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모든 업무를 사실상 좌의정 [[박은]]이 처리한다고 하여 그의 양심을 찔렀다. 결국 드라마에서는 박은이 태종에게 사정하여 국문이 멈춘다. * [[이직(조선)|이직]] * '''[[황희(조선)|황희]]''': 조선 역사상 '''최장기''' 영의정 재임자로 그 기간은 무려 '''18년'''으로 [[1431년]](세종 13) 69세에 영의정부사로 임명되어 [[1449년]](세종 31) '''87세'''에 노령을 이유로 물러날 때까지 영의정부사를 지냈다. 영의정이 의정부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우두머리 재상이 된 것도 황희가 영의정부사로 있던 시기였다. 1449년 중국 사신 왕무(王武)가 태평관(太平館)에 오자 당시 영의정부사 황희와 좌의정 [[하연(조선)|하연]]이 각각 문안하였는데, 사신은 황희에게는 깍듯이 예를 갖추었지만 [[역관]]이 사신에게 좌의정도 수상이라고 소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연에게는 보통 사람처럼 대했다고 한다. * [[하연(조선)|하연]] * [[황보인]]: [[계유정난]]으로 인해 사망. * [[세조(조선)|수양대군 이유]]: 계유정난 직후 즉위할 때까지 영의정부사였다. 결국 나중에는 왕족은 몇대가 지나기 전까지 벼슬을 못한다는 원칙이 생기게 되었다. * [[정인지]] * [[한명회]] * [[신숙주]]: 여담으로 신숙주는 최단임 영의정 기록을 세운 바 있는데 자그마치 4일이다. 세조의 변덕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자세한 정황은 [[세조(조선)|세조]] 항목 참조. * [[구치관]]: 세조의 공신이며, 성종 초반기 원상으로 훈구파였으며, 청렴결백한 영의정으로 이름이 높았다. * [[황수신]]: 영의정 황희의 아들이고, 세조의 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최장수 영의정을 했음에도 옥의 티가 많았던 아버지처럼 치부를 많이 하여 욕을 먹기도 했지만, 나름대로의 능력은 있었다. * [[심회]]: 영의정 [[심온]]의 아들이고 [[세조(조선)|세조]]의 외숙부로, 세조의 공신으로 세조 말년에 영의정을 지냈으며, [[성종(조선)|성종]] 시기 원상에 좌의정에 원로대신이었다. * [[최항(조선)|최항]]: 세조의 공신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학자이자 명신이었다. 또 좌의정 역시 2번이나 한 적이 있다. * [[구성군]]: 조선 역사상 '''최연소''' 영의정 역임자. '''27세'''에 영의정이 되었다. 이는 종친 측근 세력을 기용해서 왕권을 보호하려는 세조의 의도였다. * [[박원형]]: 세조의 공신이며, 귀성군이 물러난 후 영의정이 된다. * [[홍윤성]]: 무고한 백성과 자신의 숙부를 때려 죽인 [[사이코패스]]이나 [[세조(조선)|세조]]의 총애로 인해 홍윤성을 벌하자는 상소들이 묵살되었다. * [[윤자운]]: 신숙주의 처남으로, 세조의 공신으로 성종 때 원상이기도 했다. * 조석문: 세조의 공신이며, 성종 때의 원상으로 영의정 1번에 좌의정 2번을 했고 훈구파 노신 중 한 명이다. * [[정창손]]: 세조의 공신으로, 세조 때 2번 했고 성종 때 10년이나 하며 훈구파 원로로 군림했다. * [[윤필상]]: 세조의 공신이고, 문무를 겸한 외척 출신 원로대신이지만, 갑자사화 때 연산군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 [[이극배]]: 세조의 공신이고, 성종 때 원상이며, 원로대신으로 연산군 때까지 원로로 대접받은 영의정이다. 그리고 [[이세좌]] 등과도 일족 관계를 형성했다. * [[노사신]]: 세조의 공신이고, 성종 때 원상이었으며 또 성종과 연산군 때의 원로대신으로 뛰어난 학문과 능력을 가졌지만 대간들에게 자주 탄핵을 받았다. 그래도 대승적 차원에서 사화를 줄이려고 노력한 재상이다. * [[신승선]]: 공신 출신이며, 왕실과도 일족 관계를 형성, 또한 연산군의 장인으로 원만하고 중후한 인품으로 조정의 봉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대간들에 의해 죽반승이라고 조롱을 받기도 하였다. * [[한치형]]: 인수대비의 사촌오라버니로, 왕실과도 인척을 형성해 높은 영의정의 자리에 올라서 연산군에게 시폐10조를 올리는 등 충언을 했다. * [[성준(조선)|성준]]: 세조와 성종, 연산군 때의 신하로 연산군 때 원로대신이었지만, 시폐10조를 올리는 등 연산군에게 충언을 하였지만 갑자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교살당했다. * [[류순]]: 연산군 때 영의정으로,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지만 연산군에게 아부하였고, 또 반정 이후에는 공신들과 친하게 지내서 사림과 대간의 지탄을 받았지만 탐학하지는 않았다. *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중종반정]]의 [[삼대장]]. 반정 이후 슬슬 벼슬이 올라가다 셋이서 차례로 사이좋게 '''영의정을 진짜 조금씩 지냈다'''. '왜 조금씩 지냈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이들이 영의정을 지낸 지 몇 달 만에 병으로 죽었기 때문(...) 정사나 야사를 가지리 않고 기록에는 이들이 연산이 거느린 미녀들을 취하고 전국에서 뇌물을 받아 창고가 모자랄 정도였다는데 이에 선비들은 하도 저딴 식으로 굴다가 [[천벌]]을 받았다며 비웃었다고 한다.~~삼대장이 아니라 개노답 삼형제~~ * [[김수동]]: 중종 때 영의정으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사림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굽은 소나무 충신으로써 연산군 때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 [[송질]]: 중종 초반기 영의정으로, 연산군의 총신 전력과 탐욕하다는 비판으로 사직하지만 사위 홍언필과 외손자 홍섬이 영의정을 지냈고, 왕실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 또 남곤과도 인척 관계가 되어 영화를 누린 재상이다. * [[남곤]] * [[정광필]]: 11년 이상 영의정으로 재임한 중종조의 명재상. 조광조의 독주 시절에는 그를 제일 강력히 저지했고 조광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누구보다도 열렬히 그를 변호했다. 김안로의 미움을 사서 유배되자 도성의 백성들이 통곡했고 그가 귀환하자 환영 행렬이 길거리를 메웠다한다. * [[장순손]]: 김안로의 측근으로, 김안로에 의해 영의정까지 되었다. 그러나 편히 죽는다. * [[한효원]]: 김안로와 이웃한 영의정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능력과 실력은 뛰어났다. * [[김근사]]: 김안로의 일파로,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김안로의 실각 후 유배되었지만 죄가 김안로보다 덜해 편히 죽는다. * [[윤은보]]: [[중종(조선)|중종]] 때 영의정 역임. * [[홍언필]]: 좌의정과 영의정을 각각 2번 했으며, 청렴하여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참고로 장인 [[송질]]도 영의정이고, 아들 [[홍섬]]도 영의정이다. 부인 [[여산 송씨]]는 '''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영의정'''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갖고 있다. * [[윤인경]]: [[명종(조선)|명종]] 때 영의정으로 을사사화에 가담해서 실록에서 그의 졸기에 안 좋은 예기가 쓰이지만 그가 을사사화 때 처음에는 유배나 좌천으로 끝내려 했지만, 결국 사약으로 상소를 돌린 이유는 [[좌의정]] [[이기]]의 권세에 짓눌렸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 보아서 처음에는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보려고 어떻게든 힘을 썼지만, 결국은 힘이 미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이기]]: 을사사화를 주도했던 정승이며, 소윤 중에서도 강경파에 속해 영의정 시절에도 대윤세력과 소윤 온건 세력을 모두 제거했다. 다만 말년에는 윤원형과 대립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 [[윤원형]] * [[심연원]]: [[세조(조선)|세조]] 시기의 영의정 [[심회]]의 증손자로, [[명종(조선)|명종]] 시기에 7년동안 영의정을 지냈다. 증손자 [[심열]]도 [[인조]] 시기에 영의정을 지냈다. 명종비 [[인순왕후]]의 할아버지로서 명종의 외척이며 동서분당을 일으킨 [[심의겸]]의 할아버지이다.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명종 시기의 권신 좌의정 [[심통원]]의 형이다. * [[상진]]: [[명종(조선)|명종]] 때 영의정이며, [[윤원형]]과 친해 그에게 이용당했지만, 청렴한 명재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