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선군 (문단 편집) == 여담 == * 영선군은 한국이 문명진보의 영역으로 나가려면 교육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의 교육론을 직접 실천에 옮겨 1908년([[융희]] 2년)에 종친, 외척 자제의 일본 유학을 건의하여 실행했다. 그 뒤에도 해외 유학과 견문의 중요성을 주장하여 일반 양반가와 평민의 자제들에게도 해외 유학 지원을 구상하였으며 1908년 봄에 [[이지용]], [[이재극]] 등과 함께 한성부 북부 계동에 황족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돈명학교(敦明學敎)를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황족들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했다가 점차 문호를 개방하여 나중에는 평민, 민간인들까지 입학을 허가해 100여 명 정도가 공부하게 되었다. 설립 당시 [[순종(대한제국)|순종]]이 거금 수천 원을 하사하기도 했다.][* 명목상 주인은 6촌 동생인 [[계동궁]]의 종주 이기용이고 실질적으로 운영한 사람은 [[신소설]]의 선구자이자 조카 뻘되는 먼 친척인 [[이해조]]다.] 당시 나중에 자신의 토지를 저당잡히면서까지 학교를 부흥시키려 했다고 한다. 또한 학교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예전의 전통적 교육 기관이 아닌 근대적 인재들을 길러낼 사범 학교를 세워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몸이 뚱뚱하면서도 걷지 않고 하인들을 시켜서 가마를 타고 다닌 이준용을 두고 [[윤치호]]는 양돼지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당장 위에 나오는 사진만 봐도 통통한 체형임을 알 수 있다.] 정작 상술하듯 본인의 5촌조카 윤원선과 이준용의 딸이 결혼해서 그렇게 싫어하던 이준용과 사돈이 된 것이 아이러니. [[분류:대한제국의 황족]][[분류:대한제국의 황자군]][[분류:운현궁 종주]] [[분류:종로구 출신 인물]] [[분류:대한제국의 군인]] [[분류:이왕가]] [[분류:1870년 출생]] [[분류:1917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