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선군 (문단 편집) === 가족들에 대한 원망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운현궁 친족 단체 사진.컬러 사진.png|width=100%]]}}} || || {{{#ffd800 '''운현궁에서 친척들과 함께. 왼쪽부터''' [[흥친왕|{{{#ffd800 '''흥친왕 이재면'''}}}]], '''영선군 이준용''', [[완순군|{{{#ffd800 '''완순군 이재완'''}}}]], [[의양군|{{{#ffd800 '''의양군 이재각'''}}}]]. '''전부 [[친일인명사전|{{{#ffd800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다.'''}}} || 영선군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계속 위기에 빠지게 한 [[가족]]들을 상당히 미워하였다. 특히 [[일본]] [[망명]] 생활 중 여러 번 [[암살]]당할 뻔했음에도 가족들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자 감정은 더욱 격해져 차가운 개인주의자가 되었다. 1907년([[융희]] 원년) [[순종(대한제국)|순종]]에게 [[사면]]받고 귀국한 직후 [[흥선대원군]] 내외의 [[사당]]을 찾아가긴 했지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 [[흥친왕]]이 죽을 때도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무루공자(無淚公子)', 즉 눈물없는 사나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다. 이 일로 그의 [[당숙|5촌 당숙]][* 영선군의 큰할아버지 [[흥완군]]의 아들.]인 [[완순군|완순군 이재완]]에게 질책까지 받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식으로서 너무 불효하는 것 아니냐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