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러관계 (문단 편집) === 19세기 이전 === [[이반 뇌제]] 때부터 러시아와 영국은 관계를 맺었다. 이반 뇌제는 영국인 무역상들에게 사실상 무관세 무역이라는 상당한 수준의 특권을 부여하였고, 영국인들은 볼로그다,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아스트라한]], [[카잔]] 등 러시아 각지에 무역관과 거류지를 설립했다. 여담으로 이반 뇌제는 당시 영국의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을 한 적이 있다. 1584년 [[아르한겔스크]] 무역항이 건설되면서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무역은 더 활기를 띄게 되었다. 근세 당시 러시아는 직접 보유한 상선이 없었고 모든 화물을 외국 선박으로 운송해야 했는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영국인 무역상인들이 활약하였다. 영국 상인들에 대한 무관세 혜택은 1646년에야 폐지되었다. 러시아가 [[표트르 대제]] 때 근대화정책을 실시했을 때에 영국의 영향을 받았다. 거기에다 [[예카테리나 대제]] 때에도 영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영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18세기에는 영국이 러시아의 주요 교역국이었는데 영국은 조선용 목재, 범포, 밧줄을 생산할 때 사용하는 삼, 우랄산맥에서 생산되는 철을 수입했다. 당시에도 화물은 주로 영국과 네덜란드 선박으로 수송되었으므로 무역 이익은 대개 영국 상인들에게 돌아갔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영국을 대상으로 대륙봉쇄령을 내렸을 당시 러시아가 강력 반발했던 이유는 러시아 입장에서 영국이 가장 중요한 교역국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루스 차르국은 해군을 육성할 때 주로 [[스코틀랜드인]] 용병에 의존했고, 이러한 연유로 적지 않은 러시아인 귀족 가문이 스코트계 기원을 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