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동군 (문단 편집) == 역사 == ||<-30> '''영동군 행정구역 변천사''' || || '''영동군 [br](永同郡, 1895)''' ||<|2>→ ||<|2> '''영동군 [br](永同郡, 1906)''' ||<|3>→ ||<|3> '''영동군 [br](永同郡, 1914)''' || || '''[[옥천군]] [br](沃川郡, 1895) [br]학산면, 양산면, 용산면''' || ||<-3> '''황간군 [br](黃磵郡, 1895)''' || [[신라]] 초까지 길동군(吉同郡)으로 불리다가 신라 제35대 [[경덕왕]](757년) 때 지명 한화 정책에 따라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영동군(永同)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다. 이 때 永은 '길'을 훈차한 것이라고 하며, [[소나]]와 함께 고대 국어의 고유명사 표기와 관련해 국어 교과서에 자주 출연하는 예시이다. 신라 영동군에는 속현이 둘 있었는데 양산현(陽山縣, 양산면)과 황간현(黃澗縣, 황간면)이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계산(稽山) 또는 계주(稽州)라 개칭하고 승격시켜 자사(刺史)를 두었으나 1005년(목종(穆宗)8년)에 자사를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顯宗) 9년)에 상주(尙州)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明宗) 2년)에 현령(縣令)으로 승격시켰다. 원래는 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에 해당하는 신라의 상주, 고려의 경상도에 소속된 현이었지만 1413년(조선 태종 13)에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고 1906년 옥천군의 학산면, 양산면, 용산면을 편입하였다. 1914년에 황간군을 편입하였다. 황간은 신라시대에 처음에는 소라현(召羅縣)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에 황간으로 바뀌고 영동군에 소속되었다. 고려 현종 때에 경산부(京山府:경북 성주)에 속하였다가 조선 태종 때에 경상도로부터 충청도에 이관되어 청산현(靑山縣)과 합하여 황청현(黃靑縣)이 되었다. 1940년 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군이 현지인과 피난민 수백 명을 좌익으로 몰아 살상한 [[노근리 학살 사건]]이 있었다. 1991년 황금면이 추풍령면으로 개칭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