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열하사변 (문단 편집) == 배경 == 원래 열하성은 [[장쉐량]]이 [[동북역치]] 이후 자신의 세력권으로 넣었던 곳인데, [[만주사변]]으로 본거지인 만주에서 축출당한 후에는 그의 유일한 거점[* 따지자면 허베이 일부도 그의 영토였지만 화북 군벌들의 공세로 인해 위태로웠다.]이 되었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한 여세를 몰아 열하성까지 점령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군 참모본부는 1932년 3월 <열하성 병요지지> 등을 편찬하며 열하성 병탄을 통해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만주국을 격리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확보할 수 있으며 평진 지방을 영유하는 동쪽으로의 작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장쉐량은 만주 상실 이후로 [[권토중래]]를 꿈꿨지만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고 [[장제스]]와의 관계도 악화되었으며 [[왕징웨이]] 등에게는 만주를 잃은 책임을 지고 하야하라는 공격을 받았다. 장제스는 1932년 5월 15일 열하성 주석 [[탕위린]]이 만주국 건국 선언에 서명한 것을 지적하며 그를 해임할 것을 요구했지만, 장쉐량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직속 부대인 7여단과 16여단을 파병하는 것으로 끝냈다. 장쉐량은 3개 여단을 추가 배치하여 열하성의 방비를 증강하고 중앙군을 주둔시키며 탕위린을 차하얼 성으로 좌천시키자는 장제스의 제안도 거부했다. 중앙군의 파병이 일본군에게 공격의 구실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실추된 자신의 권위가 더욱 실추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장쉐량의 선택은 열하까지 날려버리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