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열하사변 (문단 편집) ==== 장쉐량의 사직 ==== 불과 일주일만에 열하 전역이 함락되자 중국군은 허잉친의 중앙군을 포함한 화북의 부대들을 8개 군단으로 나누어 방어선을 꾸리기 시작했다. 황당한 패배에 전국 각지에서 장쉐량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고 장제스가 조속히 북상해서 직접 전쟁을 지휘할 것을 요구했다. 장제스는 3월 6일 비행기를 타고 난창에서 한커우로 이동, 그곳에서 평행철로를 타고 7일 정저우에 도착하여 담화를 발표했다. >"열하의 실수, 동북의 함락은 모두 내가 전 책임을 질 생각이다. 실지를 회복하기까지는 항일의 책임을 결코 방기하지 않겠다. 국민의 선봉으로서 당과 국가에 보답하며 군민의 희망에 응할 것을 맹세한다." 같은날 장쉐량도 사직을 원한다고 타전해왔다. 3월 8일 스좌장에 도착하여 장쉐량, 허잉친을 만난 장제스는 5분 간의 회담 이후 장쉐량의 사직을 받아들이고 군사위원회 베이핑 분회를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위원장, 즉 장제스의 직접 지휘 하에 둘 것이며 베이핑, 톈진, 치치하얼 계엄사령부를 설치하는 것을 결정했다. 9일 바오딩에 도착한 장제스는 쑹쯔원과 장쉐량 사직 문제를 협의했다. 쑹쯔원은 장쉐량을 사직시키면 북방 군대를 다루기 힘들 것이라 여겨 난색을 표했으나 이미 장쉐량에 대한 여론이 너무 나빠져서 어쩔 수 없었다. 3월 10일 장쉐량의 사직이 정식으로 수리되었고 장쉐량은 휘하 장병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가 중원으로 들어온 까닭은 국가 통일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 하지만 그 결과는 이제 우리가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병사들에게 장제스에게 복종할 것이며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 만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덧붙인 다음에 아내들과 경호원, 그리고 개인 고문인 윌리엄 헨리 도널드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떠났다. 그가 상하이에 도착하자 군중이 당신 때문에 만주에 이어 열하까지 잃었다고 비난했다. 장쉐량은 3월 11일 사직을 발표하는 전보를 띄우고 도널드에게 아편 중독을 치료받은 후 유럽으로 외유를 떠났다. 장쉐량의 자리였던 군사위원회 베이핑 분회 대리위원장 자리에는 3월 12일 허잉친이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