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열린우리당 (문단 편집) === 취약한 지역기반 ===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극복과 전국정당화를 창당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창당 과정에서 호남 기반이 강했던 새천년민주당을 분당시켰다는 태생적 한계는 열린우리당이 끝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린우리당 창당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인위적인 호남색 빼기가 되버리고 말았으며,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지지받을 수 있는 지역기반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새천년민주당의 잔류 세력이 끝내 살아남아 열린우리당의 최후를 지켜봤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역기반이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 민주당이 호남색이 강한 정당이라서 전국정당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반대쪽에서 보기엔 지역주의 극복과 전국정당화의 명분으로 호남색을 인위적으로 빼는 것이야말로 신(新)지역주의이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좋든 싫든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 호남이었는데, 그 호남과 결별하고 집권당의 인위적인 분열을 택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정당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 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야당이 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역시 취임 전부터 꾸준히 신당 창당을 반대했는데, 민주당 내분이 너무 격렬했고 개혁세력의 여론이 신당 쪽으로 모이자 막판에 입장을 바꾼 것이었지 신당 창당을 원하지 않았다. [[http://blog.daum.net/junsool55/1383|#]] 그런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을 원하지 않았다면 하지 말라는 메시지만 보냈어도 될 일이었다. 아니, 열린우리당으로 당적만 옮기지 않았다면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소멸했을 것이다. 신당파가 당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대통령이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 그보다는 대통령이 배후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시 신당파의 관록과 세력만으로는 창당이 불가능했다. 3김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신당을 만들어서 재미볼 수 있는 능력자가 없다. 그나마 현직 대통령을 끼고 창당했던 열린우리당조차 그 대통령 임기동안 못 버티고 소멸했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 정권 초의 여당에서 신생 미니정당으로 갈 ~~정신줄 놓은~~ 정치인은 없다. 당권파로부터는 또 그 나름대로 신당 창당의 속내가 천신정(천정배 - 신기남 -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호남 신주류[*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선 정동영, 천정배 등 당시 호남 신주류가 동교동계와 손잡고 [[안철수]]의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으로 이적했으니... 참으로 역사란 아이러니하다.]+친노성향의 영남+신진 개혁세력이 당시 민주당의 주류였던 동교동계 중심의 기존 호남계 세력을 밀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꾸준히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특검법 수용은 당시 구주류측에서 사실상 DJ+동교동계와의 결별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는 평을 받았다. 물론 먼 훗날을 보면 두 대통령간의 앙금으로 남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당대에는 그러했고, 실제 DJ는 당시 병원에 입원했는데, 세간엔 화병 때문 아니냐는(...) 소리도 나돌 정도였다.][* 사실 대북송금특검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치행위의 일환이었다고 표명만 했다면 자신은 수용 안했을텐데, 김대중 대통령 본인이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게, 인수위 시절부터 대북송금문제는 털고 가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어찌보면 정권 초기에 전 정권과의 결별과 차별화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후단협]]으로 인한 DJ계와의 앙금이 원인이었다고 보는 측면도 있고...] 이 과정에서 [[강준만]] 등의 정치평론가들의 "안티조선" 움직임이 개입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런 특성이 친 개혁적 의원들(조순형, 추미애, [[설훈]])을 [[분당(정치)|분당]] 과정에서 낙오시키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http://www.hani.co.kr/section-012100001/2003/11/012100001200311131122001.html|분당 찬성 측의 견해를 다룬 글]]. 대표적인 케이스가 열린우리당에 안 가고 새천년민주당에 남았--다가 생고생하--던 [[추미애]] 전 의원.[*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본인의 [[지역구]]였던 [[광진구 을]]을 [[고민정]]에게 넘겨줬고,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 호남 정치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대해서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 대북송금특검 논란 당시에 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으로 사실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11월 28일 [[새천년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의 문안인사를 받고 덕담을 건네는 모습이 9시 뉴스에도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총선 때는 '대통령 탄핵'은 잘못이라며 새천년민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으며, 새천년민주당 측은 탄핵 역풍 속에서 유일한 동앗줄 DJ의 이름을 팔며 표를 구걸했으나 DJ가 탄핵을 용납하지 않아 망했다. 호남 유권자들도 탄핵에 분노해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줬다. 2005년에는 '열린우리당은 내 정치적 계승집단'이라는 덕담을 남기는등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96044|#]] 열린우리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으나, 참여정부가 실패하자 열린우리당 창당을 '민주 진영 비극의 시작'이라고도 이야기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http://blog.naver.com/hahn428/8002957612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