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헌성 (문단 편집) == 묘지명 == 천헌성 묘지명의 공식 이름은 '太周 故 左位大將軍 右羽林衛上下 上柱國 卞國公 贈 右羽林位大將軍 泉君 墓誌銘'이다. 해석하면 '주나라[* 당시는 측천무후가 주나라, 즉 무주를 세운 시절이다.]의 고(故) 무슨무슨 관직을 가진 천(泉) 군의 묘지명'이란 뜻이다. 헌성이 반역자로 몰려서 죽었다 보니 묘지명 후반부터는 그냥 단순한 연헌성 찬양 뿐이다. * 연헌성의 선조는 고구려국인(高句驪國人), 본인은 소맥지향(小貊之鄕)에서 왔다고 표현했다. * 헌성의 묘지명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아버지 연남생의 항복을 ''''자신이 주도했다고 하는 점''''이다. 묘지명에서 아버지를 대인(大人), 양공(襄公)으로 부르며 아버지를 크게 도왔다고 한다. * 평양성 전투와 관해 어떠한 언급도 없다. 아마 참전하지 않은 듯하다. * 헌성의 조모, 즉 친할머니가 등장한다. * 아버지 연남생과 사이가 좋았던 걸로 보인다. 연남생은 9살에 선인(先人) 관등을 받았는데 아들인 연헌성도 9살에 선인 관등을 받았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크게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다. * 묘지명엔 헌성이 16살 때 작은아버지들이 내전을 일으켰다고 한다. 연남건은 헌성의 형 연헌충(淵獻忠)을 죽였는데 연헌충의 나이는 최소 17살 이상이었을거고 관등 또한 연헌성보다 높았을 것이다. * 본인을 아버지 양공의 적자(嫡子)로 표현했다. * 아버지 대는 남(男) 자 돌림, 본인 대는 헌(獻) 자 돌림, 아들 대는 현(玄) 자 돌림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사병 양군(襄軍)을 거느리고 있던 듯 하다. 또한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하여 현존 기록 상 아들 현은까지 삼부자간 이어졌다.[* [[고려]]의 [[최충헌]], [[최이]], [[최항]] 삼부자도 진강, 진양, 진평과 같은 [[진주]]와 관련된 곳을 봉작받아 사실상 세습의 모습을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