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합뉴스 (문단 편집) == 역사 == [[1980년]] [[언론통폐합]]에 따라 동양통신[* [[쌍용그룹]] 계열.]과 합동통신[* [[두산그룹]] 계열. 법인은 이후에도 합동-두산개발-두산유업-두산농산 등으로 존속하다가, 1998년 OB맥주 등과 (주)두산으로 통합되었다.] 등 5개 통신사[* 이외에도 시사통신, 경제통신, 산업통신, 무역통신 등이 있었다.]를 통폐합한 후 11월 17일부터 '통합통신사 7인 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준비 작업을 거쳤고, 12월 19일부터 '연합통신'이란 명칭으로 창설했다. 창설 당시 신문협-방송협 각 회원사가 지분 51%를, 나머지 49%는 성곡언론재단 및 두산개발(주)가 각각 나눠가졌다. 창립 초기 합동-동양 2개 통신을 발행했다가 1981년 1월 4일부터 <연합통신>을 새로 창간했다. 창립 첫 해부터 선박방송을 개시한 후 1983년 AP 텔리레이트 한국서비스를 개시하며 처음으로 컴퓨터 금융정보서비스를 개시했고, 1985년 [[KBS]]와 [[MBC]]에 첫 방송뉴스 서비스를 개시한 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및 [[1988 서울 올림픽]] 주관통신사로도 활약했다. 1988년 7월 서울 수송동 신사옥으로 이전한 후 10월에 헝가리 MTI통신과 뉴스통신계약을 체결해 공산권 국가까지 확대했고, 1992년에 금융정보 서비스 '인포맥스'를 개시하고 (재)동북아시아정보문화센터를 세웠다. 1993년 연합텔레비전뉴스(주)를 세워 1995년에 [[케이블 방송]] 보도채널 '[[YTN]]'을 개국하고 1996년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1997년에 인터넷 라디오방송 서비스를 개시하며 적자방송사 YTN을 [[한전KDN|한전정보네트웍]]에 매각하고 1998년에는 현 사명으로 개칭하고 이듬해에 북한 전문 뉴스통신사 (사)내외통신[* 1974년에 '내외문제연구소'란 명칭으로 설립되었고 종로구 주자동에 사옥을 두었다. 존속 시절 통상적 취재활동을 하지 않고 북한 평양방송 등을 라디오로 청취해 기사를 써 언론사에 내보냈으며, 명목상으론 공보처 소관 사단법인이나 사실상 [[국가안전기획부]]가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86189|운영에 관여하여 '안기부 기관지'로 불렸다.]]]을 합병했다. 2000년에 인포맥스사업부를 (주)인포맥스로 분사시켰고, 2001년 부산지하철 1호선에 '인포비전'을 가동시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언론계와 정치권 등지에서 소유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2003년에는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5년에 정식으로 제정/시행되면서 국가기간 뉴스통신으로 지정됐다. 법정단체인 [[뉴스통신진흥회]]가 최대주주. 나머지 지분은 KBS, MBC, 기타 언론사들이 나눠갖고 있다. 다만 2009년에는 한시조항이 삭제됐다. 2005년에 연합블로그 및 인터넷방송 '연합 U&I 뉴스' 서비스를 개시하고 2008년에 사진DB 디지털화를 개시했다. 2009년 [[미디어법]] 개정 후 2010년 12월 31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보도전문채널]] 신규 사업자로 재선정돼 다시 케이블 뉴스채널 사업에 뛰어들어 2011년 10월 17일 채널명을 뉴스Y로 확정하고 12월 1일 개국했다. 그 후 [[연합뉴스TV]]로 이름을 바꿨다. 2016년에는 북한포털을 연 후 아시아-태평양 뉴스통신기구 차기 의장사로 선출됐고, 2017년 국내 최초로 AI 스포츠기자 시스템 '사커봇'을 도입했다. 2018년 통일언론인연구소를 세우고 이듬해에 재난포털을 개설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