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옥 (문단 편집) == 역사적 배경 == 연옥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그들에게 유익하다'는 믿음과 그 전제가 되는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위에서 인용된 마카베오기 하권 12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가 존재하기 전부터 유대교(특히 바빌론 유수 이후의 유대교)에 널리 퍼져있었다. >바울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의회는 갈라지고 말았다. >사두가이파는 부활도 천사도 영적 존재도 다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고 바리사이파는 그런 것이 다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사도행전 23장 7-8절 ([[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도 [[부활]]이나 [[천사]]가 있다고 믿는 [[바리사이]]파와, [[모세오경]]만을 인정해서 그런 게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파가 대립하여 서로 원수지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당시 바리사이파가 믿었던 "부활"이 어떤 의미였었을 지를 생각해 보자. 당시 유대교에는 [[메시아]]가 고난 당해 죽음을 당하고 부활한다는 개념은 없었으며,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환생]]이나 [[윤회]]라는 개념도 없었다. 이들에게 '''부활'''은 내세에서의 죽은 자들의 부활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믿음을 유대교로부터 이어받았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어떤 식으로 죽은 이들에게 유익한지, 그리고 죽은 이들이 어떤 상태에 있길래 기도가 필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차츰 지금과 같은 개념으로서의 연옥 믿음이 발생했다. 이는 5세기 초부터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4세기까지는 역사적인 혼돈기로서, 그리스도교 전반에 [[종말론]]적 성향이 강하게 끼어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의 심판이 곧 도래할 것이라 믿었고, '모 아니면 도',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이분법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5세기 이후 조금씩 세상이 안정적으로 변하자, "느긋하게 지내도 괜찮을 거 같아" 하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상에 지옥과 천국 둘 중 하나면 너무 각박하잖아. 지옥에 갈 만큼 죽을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라는 사고방식에 도달했고, '''"하느님은 사랑이셔서 누구나 구원받기 원하신다"'''를 근거로 연옥의 교리를 완성해갔다. 연옥 개념은 [[중세]]의 경제 발전 때문에 탄생했다는 이론도 있다.[*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중세 시기 교회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벌지 않는 행위를 죄악시했는데, 특히 고리대금업이 대표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들에 고리대금업자 이미지가 덧씌워진 [[반유대주의]]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서양 중세 시기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서 교회의 이러한 통제는 잘 되지 않았고, 교회는 언제부턴가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의 입장은 연옥은 중세에 새로 만들어진 교리가 아니라,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삼위일체론처럼) 이미 교회에서 인식되던 것이 중세에 명료화되었다는 것이다.]자크 르 보프가 이런 타협의 일환으로 설정되었다고 보는 '연옥'이라는 공간은 내면적 회개를 중시하는 공간으로, 정죄가 끝나면 천국행을 보장받는 곳이었다. 금융업자들은 생전에 돈을 벌기 위해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참회, 회개하고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자크 르 보프는 연옥이 자본가들에게 지옥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연옥은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