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옥 (문단 편집) == 성경적 근거 == 가톨릭에서 연옥에 대한 [[성경]]의 직접적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마카베오기]] 하권의 다음 대목이다. >다음 날, 장사 지내는 일이 시급해졌으므로, 유다와 그의 군사들은 전사자들의 주검을 거두어 조상들의 무덤에 친족들과 나란히 묻어 주려고 갔다. 그런데 죽은 자들마다 그 옷 속에서 '''[[대죄|율법으로 유다인들에게 금지된 얌니아 우상들의 패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전사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사실이 모든 이에게 분명히 드러났다. 그들은 모두 숨겨진 일들을 드러내시는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의 방식을 찬양하였다.또 그렇게 저질러진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였다. 고결한 유다는 백성에게, 전사자들의 죄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죄를 멀리하라고 권고하였다. > >그런 다음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을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천주교 성경) >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 >마카베오기 하권 (마카베오기 2권) 12장 39-45절 그런데 마카베오기 하권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에 성경에서 제외된 구약 [[제2경전]]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르틴 루터가 대사 논쟁에서 꿀릴까 봐 삭제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의견이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유일한 종교적 교범으로 보았고,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인지 확인 불가한 출처가 부정확한 부분은 과감하게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경전은 초대 교회 시절 히브리어 사본을 찾아내지 못했고, 불가타 라틴어역을 저술한 [[히에로니무스]]도 히브리어 사본이 없는 제2경전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졌다. 이런 교부들의 불신을 반영해서 구약 성경을 재편한 루터는 우선적으로 구약의 헬라어 부분인 제2경전을 위와 같은 이유로 외경으로 봤다. 사실 대사 논쟁이나 연옥 논쟁으로 마카베오기 하권이 가지는 위치는 [[가톨릭]] 내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많다. 그 부분이 겨우 3절에 불과한 짧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후 마르틴 루터는 2차적으로 신약 성경의 재편을 주장했지만, 같은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신약은 구약과 비교할 때 출처가 분명하기 때문에 재편을 하면 안된다. 그것은 이단들만 하는 짓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포기했다. 이때 빼려고 했던 게 대표적으로 [[야고보서]]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감행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로마서의 말씀과 충돌되는 것처럼 보이는 선한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의 내용들 때문이었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 부르면서 야고보서 첫 장 전 설명에서 성경의 전체 맥락과 다르다며 주의를 요구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재판이 나오자 이런 설명을 아예 빼버렸다. 종교 개혁 당시에는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이 컸다. 그런 열망은 기독교 안에서 성경 외의 것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사실 루터는 [[사도신경]]도 성경에 없기 때문에 예배에서 빼버리려고 고민하기도 했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기원전 3세기 70인역과 이후 유대인 랍비들의 얌니야 회의를 기준으로만 구약을 인정했기에, 20세기 초까지 제2경전은 가톨릭이 자신들의 종교적 정당화를 위해 첨부한 부분이라고 개신교와 유대교에게 까여왔다. 정교회에서도 제2경전은 경독서라고 하며, 정경과 완전히 동등한 권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또는 시대상 마카베오서처럼 [[그리스어]]로 저술된 구약 제2경전 문헌은 헬레니즘 세계로 디아스포라된 여러 그리스어권 유대인 공동체들이 사용하고 형성시켜 온 것이었다. 70인역에서는 기존 히브리어로 있던 구약을 당시 [[지중해]] 세계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했기에 사도 시대에도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 그리스어(헬라어) 구약을 인용했을 정도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어권 유대인 공동체라는 문화적 기반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사도행전이나 서간에서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헬레니즘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 터잡아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성경'이란 그리스어 구약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하여 제2경전 내지 외경들은 그리스도교가 처음 형성될 때부터 그리스도교 안에 있었던 것이다. [[사해문서]]에서 보듯이 제2경전들이 실제로 히브리 원본이 존재했을 가능성 자체는 있지만(마카베오서는 시대적으로 70인역 이후이니 논외) 다른 제2경전인 [[희년서]], [[에녹서]]까지 히브리어로 나와서 근거로 삼기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는 [[희년서]]와 에녹서를 경독서로 사용한다. 사실 애초에 마카베오서는 히브리서 원본 유무와 별 상관이 없다.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삼은 근거인 70인역은 기원전 300년쯤이고, 마카베오 시대는 그로부터 150여 년 후인 데다가 집필 시기는 기원전 60년대이다. 이건 히브리 원전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인정하냐 마냐의 문제. 어쨌든 [[개신교]] 대부분이 이제와서 제2경전을 정경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일부 교파에서 제2경전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조건 연옥 및 유사 교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마카베오기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말고도, 개신교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는 [[신약성경]]에도 연옥에 대하여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만한 부분이 있다. 다만, 연옥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기도 하다. 그중의 몇 구절을 통해 연옥이라는 개념을 옹호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개역개정) >---- >마태오 복음서 12장 32절 위의 마태오 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하여 유추해 보면, 내세에서도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이것이 사후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톨릭은 내세(연옥)에서 소죄를 다른 신자들의 전구나 자신의 벌로 용서받고 보속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것이 그 신자의 구원 상태를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연옥에 가는 사람들은 쉽게 말해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며, 죽기 전에 모든 대죄를 용서받고(고해성사로) 떨쳐내거나 용서받지 못한 소죄+자신의 죄를 짓는 악습과 죄로 기우는 습성+이미 현세에 용서받았던 과거 대죄들의 못다한 보속을 연옥에서 모두 정화의 방식으로 벌 받는 것이다. 연옥은 구원(=천국행)이 확정된 신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오점이나 의롭지 못한 실수들을 마저 치르는 상태와 장소를 말한다. 따라서, 가톨릭의 연옥 교리를 설명하며 연옥은 죽은 뒤의 제2의 구원 기회를 바라는 곳이라거나 하는 식의 설명을 하는 것은 오류이다.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개역개정) >---- >고린토1서/고린도전서 15장 29절 위 구절은 사도 바울로가 [[코린토스|고린토]] 교회를 향해 하는 말이다. 현재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받는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초기 교회의 신자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어떤 의식을 행했고, 또 바울로가 그 의식을 언급하면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가 그 죽은 이들을 위한 어떤 의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보자.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읽어보면 오히려 바울로가 이 의식에 행하는 것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기초 위에다가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어떤 사람은 나무로, 어떤 사람은 마른 풀로, 어떤 사람은 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합시다.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를 가려줄 것입니다.'''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 >고린토1서/고린도전서 3장 12-15절 고린토 서간서의 이 말씀도 연옥의 존재 유무를 지지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육체로는 인간이 받는 심판을 받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을 따라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공동번역]])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 >---- >베드로 1/전서 4장 6절 베드로는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전하다의 원어는 εὐηγγελίσθη, 유앙게리세스로 읽을 수 있는 이 단어는 복음의 동사형이다. Preach(대다수 영어성경)혹은 Proclaim(BLB, ISV)으로 번역한다. 다만 이 구절에서는 주의가 필요한데 복음이 전해진다고 했지 죽은 이들이 복음을 따라 믿는다고 한 적은 없다. 이 대목은 같은 책 3장 19절의 ἐκήρυξεν, 선포하다와 동의어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승리 선포라는 해석도 가능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모든 죽음, 사망을 영적 죽음이나 사망으로 보는 견해는 개신교의 정통 견해가 아니다. 신약 성경 누가복음 16장 22절에서 거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원문에서는 ἀποθανεῖν(아포사임)으로 적는데 동일한 단어들이 맥락상 영적 죽음을 의미할 수 없는 대목에서 지속적으로 쓰인다. 히브리서 9장 27절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가 대표적. 이 구절이 영적 죽음이라고 해석한다면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죽는단 말인가? 하지만 이 죽음을 영적 죽음으로 해석하더라도 영적으로 죽은 이들이 복음을 받을리가 없다. 위의 성경 말씀들을 종합해 보자면, 우리가 (현실에서의 소원을 담아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죽은 자의 '''소죄'''(구원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하느님 앞에서의 작은 죄악들)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보자면, 연옥이 유대교로부터 이어받은 전통(아래의 "역사적 배경" 문단 참고)과 위에서 살펴본 성경 구절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죽은 자들의 상황을 담아낼 개념으로서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다듬어져 형성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옥"이 원래 그리스도교 안에서 논란이 많았던 주제이므로, 이런 문장에 개신교인들의 반론이 없진 않을 것이다. 성경을 근거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좀 더 진실에 다가가려는 토론은 바람직하지만, "내 성경 해석만이 옳으니 다른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