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방준비제도 (문단 편집) == 창설 == [[1913년]] 12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법에 의해 세워졌다. 그전까지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그린백]]처럼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어 연방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했다. 연방준비제도 이전에도 미국 내에서 [[중앙은행]]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때의 중앙은행[* 제1차 미국은행, 제2차 미국은행이 있었다. 제1차 미국은행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제안으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만들었으나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폐지를 시켰다. 가장 가까운 예시인 제2차 미국은행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 설립했다가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무력화, [[남북전쟁]] 직전인 [[1852년]] 해산했고, 남북전쟁 이후의 [[도금시대]] 기간에는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는 채로 지속되었다. '''[[미국]] 정부가 [[존 피어폰트 모건|J.P 모건]]에게 돈 빌리던 시절이 바로 이 시절.''' 미국 정부는 [[존 피어폰트 모건|J.P 모건]]한테 무려 5번이나 돈을 빌렸다가 갚았다가를 반복했다(...). [[1907년]]의 공황 때에는 J.P 모건이 미국을 [[대공황]]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고..]들은 겨우 20~30년 정도 운영하고 끝났다. 미국은 애초에 여러 주정부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역사적으로 연방정부의 권한이 계속 견제되어 온 탓에 건국 당시에는 물 건너갔고 건국 후에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금융 권력의 집중을 이유로 들어[* [[알렉산더 해밀턴]]은 예외.] 설립을 반대한 데다 근현대로 넘어오면서는 반사회주의가 대두되어 반대되다 20세기에나 들어서 세워졌다. 그러니까 지금의 연방준비제도는 100년 정도의 역사밖에 없는 거다. 다만 주화는 재무부 직할의 화폐 제조창에서 계속 만들었다. [[미국 의회]]는 원래 [[중앙은행]]을 창립하려고 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정부의 권한이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1900년대]] 초까지는 [[독점]] 규제고 뭐고 완전 방임이었다. 정부가 경제에 간섭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은행들은 미국경제에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정부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중앙은행 설립에 반대했다.[*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민간 중앙은행을 설립하자는 의견은 이미 여러 번 나와 있었던 상황이었다. 세계적으로 여러 국가가 [[공황]]에 빠지는 걸 보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중앙은행이 대두된 데다, 실제로 [[1차 대전]] 직후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천조국]]으로 발돋움하기 힘들었을 거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둘 사이의 오랜 투쟁 끝에 은행들의 수익성을 보장해주면서도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어중간한 기관으로 탄생한 게 연방준비제도이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만큼 복잡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의 정치상황에 연준제도가 가장 적합한 제도임을 방증한다. 연준이 창설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1907년]]의 [[1907년 은행 패닉|미국 경제공황]]이었다. 이때는 정말 [[존 피어폰트 모건|J.P. 모건]]이 없었으면 미국은 [[대공황]]을 [[1929년]]이 아닌 [[1907년]]에 겪어야 했다고 할 정도로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당시 J.P. 모건이 미국 은행과 [[증권사]]들을 모아놓고 강제적으로 채무조정작업을 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미국 정부가 점점 [[존 피어폰트 모건|J.P. 모건]]한테 경제권을 의존하게 되는 모습이 드러나버리면서, 미국 의회에서도 결국 [[중앙은행]]을 만들어 금융을 통제해야 한다는 심각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금융계에서도 1907년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기에, 그 나름대로 수습책을 만든다고 당시 가장 강력한 상원의원이었던 [[공화당(미국)|공화당]] [[로드 아일랜드 주]] 넬슨 W. 알드리치를 중심으로 한 [[https://brunch.co.kr/@jyhan71/53|알드리치 플랜]]이란 것을 금융인들과 경제학 교수들과 모여서 만드는데, 이것이 도리어 [[민주당(미국)|민주당]] [[우드로 윌슨]]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이것이 J.P. 모건이 1907년 은행들을 쥐락펴락하던 모습을 보았던 당시 미국인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우드로 윌슨이 완승을 거뒀다. 윌슨의 당선 이후 공약대로 중앙은행을 다시 설립하는 것이 현실화 되었다.[* 연준의 역사는 여러모로 민주당 정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연준의 창설도 우드로 윌슨 때 이루어졌고, 연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뉴딜 정책에 선봉장에 선 매리너 에클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대통령 때 연준 의장을 역임했고, 연준의 독립성을 쟁취한 1951년 통화협정정의(Monetary Accord) 또한 해리 트루먼 민주당 대통령 때 있었으며, 연준이 가장 강력하게 미국경제를 주도했던 1979년 [[폴 볼커]]의 볼커 쿠데타도 지미 카터 민주당 대통령 때 실행되었으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경제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시행한 [[벤 버냉키]]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도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때 시행되었다. 미국에서 민주당은 여러모로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좌파적, 국가통제를 중시하는 사상을 가졌다고 평가하는데, 그 전력이 연준을 이용한 여러 정책 변화 등으로 드러난 것. 건국 초, 민주당의 시조 [[앤드루 잭슨]]이 중앙은행을 무력화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지만 중앙은행이 창설되면 각 [[미국/주|주]]의 경제권을 빼앗길 것이 거의 확실하니[* 미국은 [[은행]]([[제1금융권]]) 법인이 정말 많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나 [[씨티그룹]]도 미국 전역을 커버하지 못하며, [[대침체]]를 거치면서 '''은행 법인이 1만 곳이나 없어졌는데''' 남아있는 은행 법인(지점이 아니다)이 5,000곳이 넘는다.] 각 주정부들의 반발도 거세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중앙은행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 연방준비제도에 지분을 가진 민간 은행들은 매년 총 배당금 중 6%의 [[배당]]을 가져가며, 그 돈은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제도로부터 돈을 빌려서 화폐를 발행한 것에 대한 이자에서 발생한다. 나머지 94%의 배당금은 재무부에 귀속된다. 바꿔 말하면 미국의 [[통화정책]]에 따라 액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정책인 [[화폐]]의 발행이 자동적으로 민간은행에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