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적 (문단 편집) == 역적에 대한 대우 == 전근대 시절에는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 그 어떤 치적이나 안배가 있다 하여도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혐의로 엮일 정도라면 후에 무죄가 된다고 해도 [[연좌제|그동안에 일족들 대부분이 거진 갈려나가고]], 확정되면 두말할 것도 없다. 삼족[* 혹은 구족(九族). '''본가 / 처가 / 외가의 각 3대'''(조부, 아들, 손자)]은 몰살 확정이고, 운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후 평생을 숨어 살거나, 혹은 사회 활동이 사실상 끝장난다. 그리고 역적임이 확실하게 인정된 사람의 가문 출신은 '''아예 [[과거 제도|과거시험]]도 보지 못하게 했다.''' 관직 활동이 사실상 [[사대부]]의 중요한 의무요 생계수단임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상민으로 평생 살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 대신 실제 사례는 없지만, 역모 혐의에 연루되었다 무고함이 밝혀진 사람의 경우에는 훗날 '''당상관 승진에서 최우선 진급''' 등의 보상을 하게 되어 있었다.] 조선의 경우에도 역적에 대해서는 [[대명률]]에 의거하여 당사자와 적극적인 가담자는 죄질에 따라 [[거열형]] 혹은 [[참수형]]에 처하고, 나머지 가담자들과 그들의 16세 이상 남자 직계는 [[교수형]]에 처하며, 나머지 직계 가족들은 [[노비]]로 전락하는데 역적의 자손이 되어 노비로 전락하면 그야말로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외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친척들도 유배가 기본에 선처하더라도 지방으로 추방되어 상민으로 전락시키도록 했다. 즉, 가문 자체가 양반에서 최소 상민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연좌가 항상 [[FM#s-2.1|FM]]대로 되는 건 아니어서 적극적인 역적모의가 아니라 소극적인 반역 가담 혹은 사실상 반역으로 간주됐으나 실제로는 반역은 아니었던 기군망상죄 같은 사례는 당사자만 사형시키고 나머지는 덮어두는 식의 선처가 이뤄지는 일도 많았지만 그렇다 쳐도 양반가문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절대 피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김삿갓]]의 가문이 있는데, 김삿갓의 가문도 당시 [[세도정치]]의 끗발 날리던 [[신 안동 김씨]]였다. 역적으로 지목된 이들 중 특이 사례로는 [[정도전]]을 들 수 있다. 알다시피 정도전은 진짜 역적이 아니다. 왕자의 난 이후 [[태종(조선)|태종]]이 정권 합리화를 위해 [[정적#s-2|정적]]이었던 정도전에게 죄를 덮어 씌운 것. 어찌되었든 [[흥선대원군]] 때 복권되기 전까지는 가장 오랜 기간 국가 공인 역적으로 지명된 인물 중 하나였다. 단, 이건 국가 정책 상의 이야기였고, 실제 정도전은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유림]]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또한, 정도전은 역모가 아닌 '종친모해죄'로 처벌받은 것인데, 왕족을 해치려 든 죄는 역적죄가 아니었고 사실 이조차도 날조한 혐의였기 때문에 그 자손들에게까지 해가 가진 않았다. '''자기가 하는 일이 역적질인 줄 모르고 일을 벌이다 역적이 되어 목이 날아간 사람들도 있다.''' 못 배운 농사꾼이나 머슴이 돈 많이 준다기에 일하러 갔다가 '''그 일터가 하필 역적모의현장'''이라 역적들이 일망타진 된 뒤 역적과 한패라는 논리로 목이 날아간 식의 케이스. 다만 나중에 진상이 밝혀지면 이들은 역적질이라는 걸 몰랐다는 이유로 무죄방면되기도 했는데, 그나마 이것도 왕이 상황 봐서 판단할 수 있는 여유와 개념을 가졌을 때 한정으로, 둘 다 없는 [[인조]] 같은 인간이 걸리면 그냥 닥치고 모조리 [[사형]]이었다. 사실 인조 자체가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죽인, 인간성이 너무나 안 좋아서 실록에서 사관들이 대놓고 깠던 인물인데, 역적죄에 엮인 자들은 굳이 혐의를 날조할 것도 없이 현장에서 사형시켜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인조]]는 왕권이 워낙 불안정하다 보니 역적의 역 자만 걸려도 무조건 닥치고 죽여 대기 일쑤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안익신의 옥사 같은 경우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자기가 한 일이 역적질인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한 말이 역모 인정인줄도 모르다 여럿 죽어 나갔다고 전한다. 심지어 사형장에 끌려가는 길에 자기 죽을 줄 모르고 내가 지금 어디로 귀양가는 거냐? 고 묻기까지 하니 사람들이 모두 가엾게 여겼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 실록에서도 대놓고 "역적이지만 가엾게 여겼다"고 기록할 정도니 이런 케이스는 옛날에도 불쌍하게 여긴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