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이기 (문단 편집) == 후대 == 다행히 그의 동생 [[역상]]은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것도 단순한 개국공신이 아니라 '''공신서열 6위'''[* [[소하]], [[조참]], [[장오]](유방의 사위이자 장이의 아들), [[주발(전한)|주발]], 번쾌의 바로 다음 서열이다. 하후영(8번째), 관영(9번째)보다도 높다.]에 4800호를 식읍으로 받았다. 역상 역시 유방의 중요한 장수로 활약했으며 [[사기(역사책)|사기]] <번역등관열전>의 '역'이 바로 역상이다. [[번쾌]], [[하후영]], [[관영]]과 함께 실려 있는 걸 보면 그의 대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형이 처참하고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한 보상도 어느 정도 담겨있던 듯 하다.[* [[고조공신후자연표]]를 보면 논공행상 시점에서 사망한 인물들의 경우 가족들에게 대신 상을 몰아서 줬기 때문이다.] 유방이 공신 서열을 책정하면서 순위가 높게 매겨진 사람들은 가족들이 같이 싸웠거나 혹은 그러다가 죽었는지의 여부가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소하가 1위가 된 근거 중 하나도 일가족 수십 명이 모조리 종군했다는 이유였다. 아들 역개도 고량후에 봉해져, 역이기의 공훈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전광의 숙부이자 역이기를 같이 삶았던(...) 전횡은 훗날 유방의 명령으로 낙양으로 오던 중 '내가 직접 삶아 죽인 자의 동생을 부끄러워 어찌 본단 말인가' 라고 하고는 자결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유방은 전횡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왕의 예로서 장사를 지내주었는데 전횡과 함께 낙양으로 온 가신 두 명도 장례가 끝난 후 전횡의 무덤 곁에서 자결했다. 전횡은 제나라 멸망 후 오호도라는 섬에 숨어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 섬에 있던 전횡 휘하의 식객 500명도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자성어 "만가(輓歌)"의 유래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