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호수아 (문단 편집) == 눈의 아들 여호수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shua_Renewing_the_Covenant_with_Israel_%28Bible_Card%29.jpg|width=300]] 본서의 주된 인물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יְהוֹשֻׁעַ בִּן נוּן, Yehoshua Bin-Nun)'이다. 본명은 "[[구원]]"을 의미하는 '[[호세아]](הושע, Hoshea)'이며, [[모세]]에 의해 새롭게 붙여진 이름인 '여호수아'는 "[[야훼|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예수]]'''(ישו)란 인명의 원형이기도 하다.[* 히브리어 발음으로 예호슈아(여호수아) → 예슈아·예슈(예수). ]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서력기원|기원전]] 12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되며[* 다만 이렇게 되면 사울 왕의 재위시가랑 별 차이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판관기의 기록이 약 400년 정도의 시간을 다룬다고 되어 있는데 사울 왕은 기원전 11세기 사람으로 추정되니...] 110세에 생을 마쳤다. [[성인]]으로서의 축일은 [[가톨릭]]과 [[정교회]] 모두 [[9월 1일]]이다. [[성경]]의 첫 등장은 [[출애굽기]]로 아말렉군의 습격을 모세의 응원 하에 대응한 지휘자이며 [[조운]]처럼 상승장군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탐군 12인 중에 하나이며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 중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두 생존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세]]는 신관, 정치가, [[예언자]], 군인 등 여러 가지 성향의 인물인 데 반해 여호수아는 그냥 정치가 및 군인으로만 나오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이는 제사에 관련된 것이 체계화되면서 신관의 역할은 레위 지파, 제사장 가문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민수기]]에서는 [[12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 대표로 [[가나안]](현 [[팔레스타인]])의 정찰병으로 활동, 12명의 정찰병 중 여분네의 아들 갈렙[* 유다 지파 대표로 정찰병이 된 사람으로, 유대인에 편입된 외래민족이다. 민수기에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만 나오지만, 여호수아에는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으로 적고 있다.]과 더불어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이에 당시 성인들 중 갈렙과 함께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가나안]] 점령 전쟁과 땅의 분할을 지휘했다. [[모세]]의 후계자 겸 수종자로, 여호수아 1장 1절에서는 야훼의 종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로 기록되나, 마지막 장인 24장 29절에서는 야훼의 종 여호수아로 묘사된다. 모세 이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유대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고뇌와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읽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그의 전임자인 모세는 40년간 대제국 이집트의 왕자였으며, 40년간은 유목민의 주요 생계를 책임지는 목자로서 활동했고, 이후에는 이집트의 지배자 파라오와의 항쟁을 통해 히브리인을 해방시켰고, 그 거대한 민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다. 그 와중에도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자기 백성의 원성과 불평을 수도 없이 들으며 40년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직접적으로 인도하며 자기 민족의 세대교체기가 다할 때까지 홀로 지도자로서 활동했던 외로운 투사였다. 때문에 당시 여호수아가 아무리 야심가였다고 해도, 모세 생전에는 감히 그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지 못한 채 1인자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다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