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포 (문단 편집)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미남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정사에선 외모에 대한 서술이 없다. 또 연의에서는 여포가 [[방천화극]]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만 방천극과 같은 형태의 무기는 송나라 시대 이후에야 비로소 등장하며, 살상용으로는 실용성이 떨어져 제사 의식용으로 주로 쓰였다. 그러니까 연의의 창작. 다만 극이라는 무기는 당시에 군대에서 자주 쓰던 무기여서 던지는 단극부터, 마상에서 사용하는 장극 등 종류도 다양했다. 여포가 극을 잘 썼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정사에서 여포가 [[극(무기)|극]]을 세워서 [[활]]을 쏘아 맞춘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착안하여 아예 여포가 극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연의에선 3회부터 등장하며 정원이 여포의 양아버지로 나온다. 정사에서 여포가 양아버지로 섬긴건 동탁 뿐인데 여포의 의리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원도 양아버지로 설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숙]]도 여포와 고향 친구라는 설정이 붙었고 동탁의 [[적토마]]를 여포에게 주어 여포를 매수, 여포는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부한다. 5회에서는 화웅이 전사하자 호뢰관에서 출전해서 유섭, 목순을 죽이고 [[무안국]]의 한 팔을 자른 뒤 공손찬을 밀어붙이며, 장비가 여포와 50합정도 겨루나 밀리지 않았다. 관우가 중간에 끼어들자 밀리기 시작했고 유비도 끼어들어 여포는 유비 삼형제와 3:1이 되자 못 버티고 도망친다. 이후 관우, 장비가 불세출의 무장으로 묘사되니 그들과 싸운 여포도 엄청 강하게 인식되었다. 본래 연의에서는 이 장면에서 유비의 무용이 뒤떨어진다는 묘사는 없으나 [[유비]]는 이후 무력을 강조하는 묘사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몇몇 판본에서는 유비가 망쳤다는 묘사도 나온다.[* 다만 힘이 달린 여포가 유비를 찌르는 시늉을 하였고 관우, 장비가 놀라 유비를 보호하려 하자 그 틈을 타서 여포가 도망쳤다는 묘사가 있다.] 장비가 여포를 욕한 유명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울 때 여포를 욕한 ''''삼성가노(三姓家奴)'.''' 성씨 셋 가진 종놈이라는 뜻이다.[* 호뢰관에서 여포가 무쌍을 찍고 공손찬을 끔살하기 직전, 난입한 장비가 가로막자 여포는 기백은 꽤나 있지만 차림새가 누추해서 일반병인줄 알고 "졸병은 저리 비켜라!"하고 그냥 무시하자 장비가 "[[트래시 토크|애비성을 셋이나 가진 천하의 상놈아!]]”라고 외치며 반격을 하고 빡돈 여포가 목표를 장비로 바꿔서 싸우게 된다.] 원래 여씨인데 양부로 [[정원(삼국지)|정원]]과 동탁을 모셨기에 성이 여(呂), 정(丁), 동(董) 세 개라는 이유로 이렇게 욕한 것이다. 보통 이건 [[패드립|재혼을 여러 번한 모친에 대해 사용하는 욕]]이다. 그 후 8회에선 왕윤이 여포에게 금관(金冠)을 선물하고 여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정사에서 여포는 금관을 썼다는 묘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 장면 때문인지 여러 미디어 매체에서 여포가 더듬이가 달린 금관(金冠)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흔히 여포의 관을 속발관(束髮冠)이라 부른다. 연의의 여포를 모티브로 한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여포도 머리에 더듬이 장식을 하고 나오는데, 제작진의 설정에서는 산새 깃털로 만든 翎子(링즈)라고 언급된다.] 연의에서는 여포가 동탁을 배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왕윤]]의 미인계라고 설명하나, [[초선]]의 존재를 포함하여 그것은 허구에 가깝다. 초선은 정사에서 여포와 눈이 맞은 시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 볼 수 있다. 연의에서 완전한 형태로 완성된 [[연환계]]는 여포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해준 장면. 당시에 이 에피소드의 서술 시 [[왕윤]]의 계략에 넘어간 것에서 여포를 띄워줄 의도는 없었겠지만, [[초선]]을 되찾기 위해 [[동탁]]을 배신했다는 점이 [[사랑]]을 강조하는 현대적인 정서에는 오히려 여포에게 낭만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더하게 되었다.[* 정사에 나오는 제장들의 아내와 사통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은 것도 크다.] 그런데 여포는 연의에서도 이미 장가를 가서 딸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설정은 은근히 묻히거나 얼렁뚱땅 넘어가진다. 여포는 9회에서 동탁을 죽이지만 이각&곽사에게 쫓겨났고, 11회에서 서주를 공격하던 조조를 뒤치기하여 여포와 진궁은 연주를 차지하고 돌아온 조조군과 싸운다. 이 복양 전투에서 신캐 보정을 받은 [[허저]]가 여포와 20합을 싸워 밀리진 않았지만, 조조는 여포를 혼자서 꺾을 수 없다며 [[전위(삼국지)|전위]], [[하후돈]], [[하후연]], [[이전(삼국지)|이전]], [[악진]]을 보내면서 여포를 퇴각시킨다. 12회에서 조조에게 패배한 여포는 유비에게 의탁한다. 유비의 아랫사람인 [[관우]] 및 [[손건]] 등이 "무엇이 아쉬워서 여포를 받아들이냐?"고 묻자 유비는 "나도 싫기는 하지만, 이러이러하여 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 [[조표(삼국지)|조표]]의 사위가 여포라는 설정이 붙었다.[* 그럼에도 연의에서 여포의 처첩은 [[엄씨(삼국지)|엄씨]]와 [[초선]]만 등장하는데, 삼국지연의 모종강본 기준 16회에서 여포의 가족에 대해 설명할 때 조표의 딸은 여포의 둘째 부인이었지만 일찍 죽었다고 한다.] 유비가 원술을 요격하러 나간 사이 평소 여포를 안 좋게보던 장비가 술에 취해 조표를 때리자 조표는 사위 여포에게 도망간다.(조표가 자기 사위 여포를 봐서라도 용서해달라고 비는데, 장비와 여포는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 그랬다면 대놓고 장비를 협박하는 것이고, 몰랐다면 눈치없다는 것으로 작품에서 해석이 된다.) 14회에서 원술과 싸우던 와중에 여포가 서주를 점령하자 유비는 서주를 여포에게 맡기고 자신은 소패로 간다. 그 후 16회에 나오는 원문사극 장면은 실제 정사에서도 나오는 에피소드이되 거리가 얼마인지 안나오는 정사와는 달리 150보(약 180m)라는 거리[* 명나라 시절에 궁술 훈련 거리가 120~150보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이 시기에 살았던 나관중이 이걸 참고해서 원문사극의 거리를 정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궁술 훈련때의 표적은 넓은 과녁이라 화극의 가지와는 적중 난이도가 차이가 너무나 크다. 참고로 이 거리는 조선에서도 똑같이 적용했기에 현대 국궁에서도 120보를 환산한 145m를 표준 거리로 규정한다.]가 나와 여포의 궁술실력을 더욱 부각시켰고 신용을 잃었다는 원술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하늘의 뜻 운운하는 걸로 약간 각색이 되었다. 정사에서 여포의 본처는 성씨조차도 나오지 않았지만 연의에서는 [[엄씨(삼국지)|엄씨]]라고 나온다. 연의에서는 [[기령]]이 '소불간친지계'라는 이름으로 원술의 아들과 여포의 딸을 혼인시키자는 계책을 내놓으며, 엄씨가 원술과 사돈이 되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유비가 위험해질 것 같다고 여긴 [[진등]]의 아버지 [[진규#s-1]]가 병든 몸으로 직접 여포를 찾아가 반대한다. 나중에(18회 무렵) 서주성에서 장비가 말도둑질을 했을 때 여포와 장비가 리벤지 매치를 갖는데 여기서는 1대 1로 100합을 넘게 싸웠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조조군+유비군에게 패퇴된 여포는 하비성에 고립된다. 진궁이 계책을 내지만 본처 엄씨와 첩 [[초선]]이 반대하여 무산된다.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원술이 딸부터 보내라고 하자 여포는 딸 [[여씨]]를 직접 업고 출전했다 패주한다. 19회에서 조조군이 하비성을 물에 잠기게 하자 여포는 심란해져서 매일 엄씨와 초선을 끼고 술만 마시다가,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자신이 심하게 초췌해진 것을 깨닫자 술을 끊고 금주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 때 [[후성#s-2]]이 말들을 도둑맞혔다가 되찾아온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축하하려고 술을 마시려고 했으나 여포의 금주령이 두려워서 여포에게 특별 허가를 신청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화난 여포가 사형을 명령했고 (판본에 따라) 후성이 바쳤던 술병이 깨지면서 술냄새가 돌자 더욱 분노했으나, 주변에서 간곡히 말린 덕에 곤장형으로 감형했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곤장질을 당해 망신받은 것과 이제까지 여포에게 받아온 푸대접에 대한 원망이 폭발한 후성은 그날 저녁에 위문을 온 [[송헌]]&[[위속]]과 배신을 모의한다. 후성은 밤을 틈타 여포의 적토마를 훔쳐 투항했고, 조조는 이를 알자 여포를 잡을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다음 날 아침에 총공격을 명령한다. 여포도 이 사실을 보고받자 송헌과 위속 등 관리를 게을리한 장수들을 모조리 참하려 했으나, 조조군이 몰려왔기 때문에 뒤로 미루고 정신없이 방어에 전념한다. 하지만 워낙 격렬한 싸움이었던지라 피곤해서 잠깐 쉰다는 게 그대로 잠드는[* 몇몇 판본에서는 그 여포가 지친다는 건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송헌과 위속이 몰래 마취약을 섞은 걸로 각색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 듯하다는 의견과 이게 더 여포에게 비참한 짓이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바람에 송헌과 위속에게 묶이고 만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부하를 시켜서 "여포를 잡았으니 들어와라"라며 알렸고, 조조군이 의심하며 들어오지 않자 여포의 방천화극을 던져서 여포를 생포했음을 알린다. 이에 조조군이 물밀듯이 쳐들어오면서 하비성은 난리가 났고, 조조군과 결탁하지 않은 [[진궁]]과 [[고순]] 등은 저항했지만 끝내 모조리 사로잡힌다. 여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고순]]과 조조와의 옛 우정을 깨끗이 정리한 [[진궁]]이 모두 당당히 죽음을 택한 뒤에 끌려왔는데, 여포가 앞서 둘과 달리 "이제라도 저를 받아주시면 한결 [[천하통일]]이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라며 목숨을 구걸하자 좌우 사람들이 여러가지 의미로 놀란다. 조조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고심하는 듯하다가 유비에게 의견을 구하는데 유비는 "[[정원(삼국지)|정원]]과 [[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라며 단칼에 거부하고 조조도 여포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에 여포는 "이 귀 큰 놈아! 내가 원문에서 활을 쏴서 [[기령]]과 화해시켜준 일을 잊었느냐!"라며 정사와 달리 원문사극의 일화를 언급하며 유비를 비난하지만, 어차피 이는 여포가 자기 무력을 앞세워 성사시킨 억지 화해였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정사와 달리 참수형에 처해지고 목이 효수된다.[* 이희재 만화 삼국지에서는 여포가 초췌해졌음을 깨닫는 장면이 [[진궁]]이 직접 들이민 거울에 자신의 망가진 몰골을 보고 경악하는 걸로 바뀌었으며, 이후 초기와 달리 광대뼈가 두드러져 핼쑥해진 모습으로 계속 그려진다. 최후도 모든 병사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목이 매달리기 직전까지 '승상께 잘 말씀드려 보겠다'라며 헛된 희망을 품었으나, 결국 '승상께서는 이미 승상부로 들어가셨소'라는 처형관의 싸늘한 대꾸와 함께 받침으로 쓰던 나무토막이 빠지면서 허공에 뜬 여포의 발만 나오는 허망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교대하듯 끌려온 [[장료]]의 경우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여포에게 죽는 것이 두렵냐, 추하지도 않냐며 일갈하고선 조조의 질문에도 기백있게 답하여 목이 달아날 뻔했으나, [[관우]]와 [[유비]]가 말려 목숨을 건지면서 조조의 부하가 된다. 정사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 여포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연의에서는 [[엄씨(삼국지)|엄씨]], [[초선]], [[여씨]] 등 여포의 가족들은 허도로 이송되었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여포의 가족들은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