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포 (문단 편집) === 정치 === 여포는 무엇보다 용인력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사람을 다루는 데는 영 빵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면 사람을 잘 다뤄야 하기에 군주로서의 그릇은 영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충성스럽고 훌륭한 장수인 [[고순]]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병사를 빼앗아 자신의 친척이기만 할 뿐 능력이라곤 조금도 검증되지 않은 [[위속]]에게 주는 등 함부로 대한 것. 하지만 그렇다고 위속을 확실히 신뢰한 것도 아니어서 싸움이 있자 다시 위속의 군사를 고순이 이끌게 하는 등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면모만 보였을 뿐이다. [[조조]]도 [[하후돈]]과 같은 과도한 친인척 편애가 존재하지만, 조조가 하후돈을 비롯한 친족들을 편애한 것은 확실하게 병권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확고한 목적이 있던 군부 장악책이었다.[* 게다가 조조의 친인척들은 실제로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하후돈은 연의에서 이미지와 달리 이렇다할 무공은 없지만 항목에서 나와있듯이 인품이 훌륭하고 통솔력이 뛰어나 후방지원 면에선 더할 나위없는 인재였으며, 연의에서 다소 너프된 조인이나 하후연은 손꼽히는 맹장들이었다. 원래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요직에 쓴 것이니 이를 친인척 편애라고 보기도 힘들다. 마찬가지로 의형제(혹은 형제처럼 친밀한)인 관우와 장비를 요직에 쓴 유비의 용인술도 문제되지 않는다.] 또한 조조는 그렇게 직책을 맡긴 부하들을 확실하게 신뢰했다. 반면에 여포는 너무 변덕스러웠고, 그렇다고 해서 유비처럼 뛰어난 장수를 기용해 충심을 얻고 능력을 이용하는 용인술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을 보였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순은 아무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고 뒷날 여포가 조조와 싸울 때도 끝까지 함께 했으며 결국 항복하지도 않고 죽었지만, 위속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송헌]], [[후성 #s-2]]과 함께 [[진궁]]을 잡아 조조에게 항복했던 것을 보면 여포의 사람 보는 눈이 정말 한심한 수준이었다. 외교 정책도 정말 한심한 수준이었는데, 대국적인 판단 능력 자체가 없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좌충우돌하며 기반이 달랐던 진궁을 비롯한 연대 세력들과 부하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모반이 일어나며 부하들 사이에 내분이 생기기도 한다. 고순과 진궁이 패망 직전까지 둘이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은 여포에게 둘도없는 충신이였던 고순입장에선 여포를 배신하려 한 진궁이 미덥지 못하게 보이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여포가 군주로서의 자질 부족이 주요 요인이다. 그나마 장굉을 무재로 추천하여 자신의 수하로 삼으려고 한 노력은 있지만, 장굉 본인이 여포를 싫어했고 그 장굉의 상관인 손책이 거절해서 실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