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의도연구원 (문단 편집) === 전성기 === 여의도연구원의 압도적 비교 우위는 선거 [[여론조사]] 기능이었다. 그러나 엄밀히는 처음부터 선거 여론조사가 여의도연구원 고유의 기능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한국당]] 부설 기관인 사회개발 연구소라는 곳에서 여론조사를 전담하고, 이 결과를 당 수뇌부에 직보하거나 본인들에게 유리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선별하여 언론에 흘리는 형식이었는데, 나중에 이 기관이 여의도연구소에 통합되면서 여론조사 기능이 확충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여의도연구원은 [[문민정부]] 때인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시절부터 시중의 일반적인 선거 여론조사에서 주로 쓰이던 전화 면접 방식에서[* 현재는 전화 면접 조사나 [[ARS]] 조사가 혼용되어서 쓰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거 여론조사의 원칙은 전화면접 조사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과감하게 탈피한 [[ARS]] 위주의 여론조사를 도입하여 대단히 높은 선거 적중률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의도연구원은 지역별로 양질의 [[전화번호]] 표본을 대량으로[* 다만 이 대량의 전화번호 표본을 100% 합법적인 방법으로만 확보했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당정청의 분리가 안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보유하고 있던 [[지역구]] 유권자들의 [[개인정보]]가 불법적으로 당으로 유출되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 당정청의 분리는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일이다. 또한 여론조사로는 오랜 노하우를 지닌 안기부나 민정당 인력들을 다수 수혈한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확보하고 있었고, 여론조사 결과에 '''가중치를 다각도로 부여하는 노하우'''가 남달랐으므로, 여론조사 결과의 품질 또한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계, 언론계 등에서도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ARS 여론조사는 뭔가 다르다''''는 인식이 한때 널리 퍼져있었다. [[2016년]]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 당시 시중에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보수 여당의 압승으로 나왔을 때도, '''여의도연구원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여당의 패배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 때도 여의도연구소 내에선 [[새누리당]]의 패배라는 비슷한 여론조사가 나왔지만, 당시에는 반대로 새누리당이 승리한 바 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ARS 안심번호 자동응답 방식을 여론조사 기법으로 채택한 점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식은 [[스마트폰]] 버튼과 집 전화 버튼만 누르면 되기 때문에 샤이 지지층이 잘 잡히고 무당층이 비교적 적게 잡힌다. 실제로 여의도연구원과 함께 20대 총선 결과를 정확하게 맞힌 리서치뷰의 경우, ARS 안심번호 기법을 채택해 정확성과 신빙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해당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가 직접 밝혔다.] 심지어는 총 의석 수가 125~127석 정도라는 예상을 했는데[*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사실 이마저도 당 지도부에서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왜 언론에서는 200석 운운하는데 이것밖에 안 되느냐. 다시 해와라.]]"라고 해서 4차 조사까지 진행해 160석 예상으로 최종 보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122석을 받았다.[* 그러나 이 결과는 휴대전화 안심번호 여론조사의 도입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총선 직전에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도 실제 선거 결과와 매우 비슷한 여론조사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야당에서조차 과반, 심지어 타 언론에서는 180석 운운하던 혼란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에서 사실상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에서 35석 확보도 장담하기 힘들다고 예측하기도 했는데, [[서울]] 12, [[인천]] 4, [[경기]] 19석으로 정확히 35석을 얻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578842|#]] 또한 정당 최초의 정책연구소(싱크탱크)답게 조직 규모가 크고 정책 자료의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당 산하라고 하여 모(母) 정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 보고서가 아닌, 냉철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를 생산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보수의 정책통 혹은 선거 전략가들이 여의도연구소를 거쳐갔다. 예를 들어 4대와 6대 여의도연구원장을 역임한 [[윤여준]], 5대 연구소장이었던 [[유승민]] 등. [[http://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1301221423141&dept=113|#]] 5대 유승민 연구원장(당시 연구소장)의 재임 기간은 [[2000년]] [[2월 14일]]부터 [[2003년]] [[9월 2일]]이었고, 최장수 원장이었다. 유승민에 따르면, 그가 취임할 때 즈음의 여의도연구소는 [[한나라당]] 당사 건물 한 개 층을 쓰며, 상근 직원이 10명 정도 되는 초라한 곳이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