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요전쟁 (문단 편집) === 이후 === 이 세 번의 전쟁을 여요전쟁으로 보고, 이후에 발생한 거란의 침입은 국지전 수준으로 본다. 1029년, [[요나라]]의 동경요양부에 [[발해부흥운동]]의 하나로 [[대연림]]이 난을 일으키고 고려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호응해 [[곽원]]이 거란으로 출정하였으나 두세달 만에 실패했다. 1033년, [[덕종(고려)|덕종]]이 [[천리장성]] 구축의 일환으로, 압록강 하류의 인주(麟州)와 위원진(威遠鎭) 사이에 새로 정주(靜州)성을 쌓자, 이를 명분으로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으나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1037년 10월, [[정종(고려 10대)|정종]] 대에 거란이 해군으로 압록강을 침입했으나 별 성과 없이 돌아갔다. 1125년 [[요나라]]가 [[금나라]]에 의해 진작 망했으나, 한참 뒤 1216년에 그 유민들이 터전을 갖고자 절박한 발악으로 압록강 일대에 영토를 가지려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이 발생했다. 쉽게 격퇴되지 않자 몽골이 군사개입을 했고, 고려와 몽골의 우호적이지 않은 첫 접촉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