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불위 (문단 편집) == 그 외 == [[장양왕]] 원년(기원전 249년), 여불위는 장양왕의 명으로 군대를 이끌고 [[동주#s-2]]를 멸하여 중화의 천자국 [[주나라]]를 완전히 끝장냈다.[* 그러나 주나라는 사실상 망했었다. 당시 [[주나라]]는 [[서주#s-1.2]]와 [[동주#s-2]]로 분리되어 있었고, 주 왕실은 서주에 빌붙어 명맥만 이어가고 있었다. 명맥을 이어가려 했으나 결국 서주는 진나라의 [[소양왕]]에게 망했고, 이때 [[구정]]을 빼앗김과 함께 주 왕실과 서주 공실은 소멸하였다. 보기에 따라선 주나라는 소양왕 때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주 공실은 존속하였으나 더 이상 '''[[주나라]]의 [[천자]]'''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현재로 비유하자면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유서#s-2]] 《[[여씨춘추]]》라는 책을 편찬했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수많은 석학들을 동원하여 지었는데, '''무려 20여 만 개의 단어를 수록했다'''고 한다. 여불위는 이 《여씨춘추》에 큰 자부심을 가졌는지 책이 완성된 후 "그 책에서 한 자라도 더하거나 빼면 1,000금을 주겠다고 했다."고 전한다. 오늘날 '''일자천금(一字千金)'''이란 [[사자성어]]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조나라의 한단에서 이인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인 '''[[기화가거]](奇貨可居)'''라는 [[사자성어]]도 유명하다. "진귀한 보물은 제 때 잡아야 한다."는 뜻. 성산, 함양, 성주 여씨 족보에서는 여불위를 자신들의 선조로 취급한다. 자세한 것은 [[여(성씨)]] 항목 참조. 그리고 그가 자살을 위해 먹은 독이 [[짐새]]의 짐독이란 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