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불위 (문단 편집) == 여불위는 진시황의 아버지인가? ==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에 의하면 여불위는 애첩을 자초에게 주었는데, 그녀는 훗날 [[진시황]]의 생모가 된 [[조희(전국시대)|조희]]였다. 이 때문에 진시황의 친아버지가 여불위라는 설이 있다.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여성을 남에게 주는 일이 전국시대에 종종 있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춘신군]]의 몰락. 춘신군은 [[이원(전국시대)|이원]]의 여동생을 임신시킨 후 그녀를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고열왕]]에게 바쳤다. 후사가 없던 고열왕은 이원의 여동생을 왕후로 세웠는데, 그녀가 쌍둥이 형제를 낳자 매우 기뻐했다. 이 형제는 초나라 고열왕이 죽자 [[초유왕|유왕]]과 [[초애왕|애왕]]으로 각각 즉위했는데, 유왕은 요절했고 그의 동생 애왕은 그의 이복형인 [[웅부추|부추]](초나라 마지막 왕)에게 피살되었다. 근데 갑자기 이복형이 등장하는 걸 보면 고열왕에게 다른 친자식이 있었던 듯하다.][* 당연하지만 왕의 아들이라도 어미의 출신이 미천하면 왕이 되는 데는 애로사항이 꽃피는 경우가 많고 당연히 적통과 서얼이 있으면 적통을 우선 순위로 두게 마련이다. 이원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들은 혈통 문제는 있지만 그걸 아는 놈은 없고 엄연히 왕후에게서 나온 아들이므로 부추보다 적통으로서는 훨씬 낫다.] 사마천 시기까지만 해도 정설로 받아들여진 듯 하지만, 카더라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십중팔구 이 가설을 채용하고있다. <진시황 본기>에는 시황제가 장양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만약 그가 혈통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호적 상 장양왕의 아들임은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다. <진시황 본기>에서 나온 이 첫 문장은 글의 문맥상으로 볼 때 시황제의 생부에 대한 논란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황실의 정통성에 대한 의미로 해석한다.] 시황제의 본명이 영정(嬴政)이냐 여정(呂政)의 논란이라면 '''영정(嬴政)'''이 맞다. 만에 하나 그가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가설이 맞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을 지어준것은 영자초(장양왕)이며, 여불위생부설이 맞다 해도 사실 상 영자초의 양자로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과거든 미래든 시황제의 혈통에 시비를 논해봐야 해도 대외적으로 시황제는 장양왕의 아들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