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관 (문단 편집) == 역사 == [[조선]]시대에는 [[주막]]과 '[[여각]]'이라고 해서 조선 후기의 [[항구]]에 들어선 상인들의 숙박 시설이 있었다. 그 외에도 여각이 항구에 들어선 숙박 시설이라면 '[[객주]]'라고 해서 [[한양]]과 지방 도시들에 들어선 숙박 시설도 엄연히 존재했다. 여각과 객주의 더 구체적인 차이는, 여각이 항구들에 들어선 대규모 숙박 시설인 반면 객주는 [[한양]]을 비롯한 내륙 지방에 설치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숙박 시설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에도 여관([[료칸]])이라는 이름의 숙박업소가 있지만, 매우 노후화된 구식 숙박시설 취급인 [[한국]]의 여관과는 달리 일본의 상당수 료칸은 [[호텔]] 이상 가는 고급 [[숙박시설]]이다. 그 중에서도 [[고라카단]] 같은 고급 료칸들은 하룻밤 숙박비가 최저 10만 엔 이상이다. 위치도 대부분 [[에도 막부]] 시절부터 계승되는 곳이 많고, 대를 이어 가면서 당시의 서비스를 그대로 재현하는 점을 내세운다. [[한국인]]이나 서구권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 오지만, 일반 호텔에 비해서 워낙 비싼 데다가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편[* 대도시에 있는 경우는 손에 꼽고, 대부분의 료칸들은 주로 [[하코네]], [[유후인]] 등 온천지구 쪽에 있다.]이 대부분이라 돈 많은 [[일본인]]들이 역시 중심 고객이 된다. 지역 토속색을 잘 살린 [[가이세키]] 요리가 나오므로 고객에 따라서는 숙박 편의성보다 식사를 더 중요시하기도 한다. 물론 일본에서도 한국의 여관과 비슷한 개념의 숙박시설이 있기는 하나, 료칸이라고 부르지 않고 [[비즈니스 호텔]] 등으로 불린다. [[중세]] 풍의 판타지 게임 등에서 Inn 이 자주 여관의 역할로 나오지만 실제 중세시대에는 전문숙박업소인 Inn은 드물었는데 이는 중세에는 일반인이 여행하는 것 자체가 적어서 숙박업소의 필요가 적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행객이나 순례객은 일반 가정집이나 교회에 약간의 댓가를 지불하고 하루밤을 재워달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교회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도시에서나 호스피탈레(Hospitale)라고 하는 순례자 숙소가 있었다.[* 사실 유럽에는 지금도 남아 있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성지 순례를 간다면 이런 숙소를 중심으로 찾는다면 같은 목적의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싼 값에 묵을 수 있다. 스페인어로는 Ospitalia 라고 써 있으니 알아둘 것.] 단어를 보면 알겠지만 병원(Hospital), 호텔(Hotel) 모두 호스피탈레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또한 Inn 역시 여행객이 많은 큰 도시나 주요 순례지 길목에나 있는 것으로 마을마다 있는 숙박업소가 아니었다. 현재로 치면 호텔 급의 위상이었다. 마을마다 모험자가 잘 수있는 편리한 숙박업소가 있는 건 소설이나 게임의 장치일 뿐이다. 한편 중세가 워낙 긴 시대이다보니 시대마다 다른데, 중세 성기가 되면 tavern 이라고 해서 1층에는 술집 2층에는 숙박업소인 가게가 영업하기 시작한다. 이 가게는 조선의 주막과 유사하게 상거래의 중개장이 되기도 했으며 신용거래를 매개하는 상업적 기능도 도맡았던 곳이다. 또 Inn 이나 호스피탈레와 다르게 정말로 마을마다 하나 씩은 으레 있었던 가게다. 후술하지만 사실 판타지에서 흔히 여관이라고 언급되는 전형적인 모습은 이것을 묘사한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본으로도 Inn 이라는 단어로 서술되는 것이 보통. 이는 동양도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도 농경사회로 여행객 자체가 적었고 여각이나 객주집이나 [[주막]]이 있는 것은 상업이 번성한 큰 도읍이나 교통의 요충지에나 있을 뿐이고 그나마도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야 활발해졌으며 그 이전이나 대부분의 촌락에는 전문적 접객시설이나 숙박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객은 여염집에 숙박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문화로 부자집은 그런 여행객 손님을 거절하지 않고 재워주고 잘 대접해 주는 것이 [[양반]]의 미덕이나 자선으로 여겼고, 아예 사랑방이라는 손님을 위한 방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손님 대접으로 유명한 [[양반]] 고택의 예시로 [[강릉선교장]]이 있는데,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유람객들이 머물고 가던곳으로 유명했다.] 한국설화에도 한양에 과거보러가는 선비가 상경중에 하룻밤을 청하는 것은 동네 부잣집이고, 한양에 도착해서야 주막이나 여각에 행장을 푸는 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