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트레아 (문단 편집) == 인권 탄압 == >'''행복한 독립 축하 행사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에리트레아는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비밀스럽고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 중 하나입니다.''' >---- >[[국제앰네스티]] 에리트레아 조사관 클레어 베스턴(Claire Beston)이 2013년 5월 9일에 남긴 말 [[https://www.amnesty.org/en/latest/news/2013/05/eritrea-rampant-repression-years-after-independence/|#]][* 참고로 앰네스티는 에리트레아의 독립에 대해 "격동의 지역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이제 과거와 단절하고, '''인권 보호를 미래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많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휴식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왔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의 소망은 2023년 현재까지도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https://www.amnesty.org/en/documents/afr64/4089/2016/en/|#]]]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리트레아 사람들이 그들의 [[자유]]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기꺼이 죽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역사를 통틀어 전체주의 정권처럼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는 어둡고 억압적인 정권 아래서 계속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를 택할 것입니다.''' >---- >메브레(Mebre)라는 가명을 쓴 에리트레아인이 2017년 5월에 남긴 말 [* 그가 가명을 쓴 이유는 자신의 신원이 밝혀지면 에리트리아 정부가 가족을 처벌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https://www.tassc.org/human-rights-abuses-around-the-world/2018/9/20/underground-silent-torture-eritrea|#]] 에리트레아는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이후 인민해방전선 의장으로서 고국의 독립을 이끌던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가 에리트레아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30년이 지난 2023년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는데, 대통령이자 여당 대표, 국회의장직을 겸직해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는 권한을 가지게 된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아페웨르키'라는 표현은 옳지 않은 표현이다. 이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서는 별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본명과 부칭이 덧붙는 작명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는 자신이 해방시킨 동포들에게 북한에 준하는 수준의 잔혹한 학정을 저지르고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60608209151088|#]] 독립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에티오피아와의 분쟁으로 수만 명의 에리트레아인이 사망했고,[*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에리트레아는 북한과는 달리 에티오피아 외에는 다른 국가들과 분쟁을 겪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지도 않으며, 에티오피아와의 갈등도 에티오피아 전 독재자 [[멜레스 제나위]]가 압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은 독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에리트레아는 [[북한]], [[시리아]], [[투르크메니스탄]][* 그래도 투르크메니스탄은 여기 나열된 국가 중에선 '''그나마''' 가장 살 만한 곳이다. 넘쳐나는 자원을 이용해 걸프만 산유국에 준하는 수준의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치고 있으며,(다만 이조차 경제난으로 옛말이 되어가는 중이다) 1999년에 사형 제도를 폐지한 것은 물론이고 [[구색정당]]도 2개 만들며 [[다당제]]처럼 보이게 하는 등 어느 정도 해외 눈치는 보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피를 안 흘린다고 해도 정치범수용소의 실태가 북한에 준하는 수준이고, 무엇보다 사회적 억압이 국내 여행 허가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 빼고는 에리트레아와 동급이다.], [[적도 기니]]와 함께 현존하는 최악의 독재국가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를 넘어 [[엔베르 호자]] 치하의 [[알바니아]]와 함께 북한의 수준에 가장 근접한 독재국가로까지 꼽힐 정도이다. 오죽하면 에리트레아의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이 무려 아프리카의 북한. 즉, 에리트레아는 철권 억압 통치를 통해 에리트레아 국내의 내전 발발을 억누르는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억압적인 통치로 그 이상 발전을 할 수가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특히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생각도 없는 상황이며 [[알자지라]] 기자에게 "에리트레아에는 민주주의라 불리는 상품이 없다"라는 인터뷰를 했고[* 이와 비슷하게 북한의 [[김정일]]도 생전에 "부르주아 어용학자들은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을 분립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징표인 듯이 묘사하지만 사실상 3권분립은 봉건전제주의를 반대하여 부르주아가 들고 나온 주장의 하나입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3권분립]] 자체를 부인했다.] 심지어 자신은 언론 탄압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에리트레아는 세계 최악의 언론 탄압국으로 꼽힌다. 에리트레아는 2001년 9월 17일에 에티오피아와의 국경 전쟁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PFDJ에 공개 서한을 쓴 'G-15'[* 이들 중 절대다수가 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거나 독립전쟁 과정에서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에 가입하고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15명 중 11명[* 이들은 '국가 안보와 주권에 반하는 범죄' 누명을 쓰고 구금되었는데, 수감된 사람 중에는 한국으로 치면 [[신흥무관학교]] 교장 포지션인 EPLF 간부 학교 교장 출신의 하일레 볼덴세(Haile Woldense, 1946~), 에티오피아군과의 전투를 여러 번 주도하며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이끈 페트로스 솔로몬(Petros Solomon, 1951~), 전 외무부 장관의 부인 아스티에 페세하지온(Aster Fissehatsion, 1956~2003. 남편도 같이 구금되었다)도 있었다. 참고로 나머지 3명은 미국으로 망명하고 1명은 후에 복권되었으나, 2010년까지 수감된 11명 중 6명이 사망했고 나머지도 심각한 중병에 걸린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23년 현재에도 근황은 불명이라 생존한 5명은 사실상 생사불명 상태이다.], 언론인 10명, 수백 명의 민간인들(여성 포함)을 재판은 커녕 아무런 혐의도 적용하지 않고 구금한 후 바로 2일 뒤인 2001년 9월 19일에 '국가의 통합과 이익'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모든 민영 언론사를 폐쇄하고 다수의 언론인을 체포하며 정부 정책과 대통령을 찬양하며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영 언론만 남겨놨다. 2022년 기준으로도 16명의 언론인이 수감 중이라고 하고, 이에 수많은 언론인들이 외국으로 탈출했다. 현재 에리트레아에는 외국의 특파원들은 단 하나도 없으며,[* 북한도 [[평양]]에 해외 언론사 지국을 두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media_in_out/nkmediaanalysis-09282016101532.html|#]]] 그 대신 특파원들은 인근 국가인 에티오피아로 파견하여 취재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기사는 에리트레아의 유일한 국영 언론사이자 군부가 실권을 가진 Denden Media가 보도하는데, 내용은 주로 대통령의 행적을 찬양하는 것으로 구성되는데, 만약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려면 투옥과 고문을 각오해야 하며, 미디어 간행물을 공개하기 전에는 미리 정부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국으로부터 면허를 받지 않은 언론인은 활동할 수 없으며, 허락되지 않은 외국 간행물을 인쇄, 유포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그나마 2013년에 반체제 단체가 아스마라에서 지하 신문 인 Echoes of Forto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에리트레아는 북한,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언론자유지수]] 최하위권을 항상 놓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언론자유지수는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며 점수가 낮을수록 언론 통제가 극심하다는 의미인데, 2022년 기준으로 13.92점을 받으며 최하점을 기록한 [[북한]]을 간신히 제치고 19.62점(180개국 중 179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에리트레아가 언론자유지수 최하위를 기록한 횟수는 2023년 기준으로 '''총 10회로, 북한과 완전히 똑같다.'''[* 에리트레아는 그 이전에 2007~2016년까지 '''9회 연속'''으로(참고로 2012년 언론자유지수는 발표되지 않았다) 언론자유지수 최하위를 기록했다. 북한의 최다 연속 언론자유지수 최하위 기록이 2002~2006년까지 5회란 것을 감안하면 에리트레아의 언론 실태는 여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 셈. 물론 2002년에 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언론자유지수 최하위를 차지한 나라 중 북한/에리트레아가 아닌 나라는 2019년에 최하위를 차지한 [[투르크메니스탄]] 1개국밖에 없다.] 북한은 외지인들이 '북한은 지하에서도 반체제 인사가 없을 것이다'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반체제 인사가 있다는 소식을, 심지어 체포 소식까지 전혀 보도하지 않을 정도로 언론 통제가 극심한 나라인데 '''그런 북한과''' 언론 통제가 동급으로 간주될 정도면 에리트레아의 언론 통제가 얼마나 극악한지 알 수 있다. 다만 2023년에는 27.86점을 기록하여 180개국 중 174위로 순위가 약간 오르긴 했다.[* 그 뒤로는 [[시리아]](175위), [[투르크메니스탄]](176위), [[이란]](177위), [[베트남]](178위), [[중국]](179위), [[북한]]('''180위''')밖에 없다. 다만 이는 2022년에 언론자유지수 산정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 최대의 기자 감옥"이라고 불린다. 거기에 2022년 기준으로도 에리트레아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25만 명 미만이고, 인터넷 사용률은 고작 '''6.8%'''를 기록하면서 전세계 230여개국 중 뒤에서 3위를 기록했다.[* 에리트레아보다 인터넷 사용률이 낮은 나라는 4.6%를 기록한 미승인국 [[서사하라]]와 '''0.07%'''를 기록한 [[북한]] 2개국밖에 없다. 다만 북한이 이렇게 인터넷 사용률이 기형적인 수준인 이유는 북한 수뇌부가 주민들이 해외 정보를 접하면 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기에 일반적인 주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의 영향이 매우 크다.] [[https://www.internetworldstats.com/stats1.htm|참고자료]] 그렇게 국민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힘든데도 에리트레아는 반정부 의사 표현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SNS]] 접속을 차단하고 인터넷 카페를 폐쇄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도 없으며, 기독교를 탄압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증언에 의하면 한 여자가 복음설파를 했다고 수감자들과 함께 마이 세르와 군사 기지의 화물용 컨테이너에 구금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컨테이너에는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 낮에는 찌도록 덥고 밤에는 얼어붙을만큼 춥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곳에서는 종교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구타행위가 이뤄졌다고 한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458494|기사]] 에리트레아는 [[가톨릭]]·[[루터회]]·[[에리트레아 정교회]], [[이슬람교]] [[수니파]]만 믿는 것을 허용하며, 이외의 다른 [[기독교]] 교파나 교단[* 탄압 대상에는 성공회도 포함된다. 가장 많이 탄압당하는 교단은 오순절파와 감리교.]을 불법화했다. 같은 기독교이며 종파만 다른 것임에도 무조건 불법이며 에리트레아 [[정부]]는 한 남성이 허용되지 않은 종파에 전도했다면서 구금한 후 고문하고 굶겼을 뿐 아니라, 짐승처럼 묶어 쓰레기를 먹도록 강요하기까지 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나를 고문하기 위해 밖으로 끌고나가 벌거벗긴 채,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두었고 밤에는 추위에 떨게 내버려뒀다'고 한다. [[http://m.chtoday.co.kr/view.html?id=283999|출처]] 물론 에리트레아의 국영 언론은 이들을 'CIA로부터 돈을 받고 활동한다'고 모함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기독교인 청년 103명이 SNS에 올릴 찬양과 예배 영상을 녹화하기 위해 아스마라에 모였다가 모두 체포되어 마이 세르와 교도소에 구금되어 수십 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 처햏으며, 동시기 기준으로 에리트레아에서 구금된 기독교인은 500명[* 대다수가 기소, 재판도 없이 구금되었다.]에 달한다고 한다. [[https://www.newsjesus.net/news/articleView.html?idxno=4322|#]] || {{{#!folding [이미지 펼치기・접기] [[파일:/image/001/2015/06/11/AKR20150610182300009_02_i_99_20150611053105.jpg|width=100%]]}}} || || 에리트레아 고문 피해자들이 UN 인권위 조사관들에게 그려보인 고문 장면 1.[br](출처: UN 인권위 에리트레아 보고서.) || || {{{#!folding [이미지 펼치기・접기] [[파일:/image/001/2015/06/11/AKR20150610182300009_03_i_99_20150611053105.jpg|width=100%]]}}} || || 에리트레아 고문 피해자들이 UN 인권위 조사관들에게 그려보인 고문 장면 2.[br](출처: UN 인권위 에리트레아 보고서.) ||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국가가 허용하지 않은 종파를 믿는 기독교인 다수를 체포하고는 사막에 위치한 선박용 철제 컨테이너 감옥에 가두어 비인간적인 대우를 일삼고 있고, 심지어는 최소한 1만 명에서 2만 명에 달하는 정치범이 재판도 없이 약 200~300여 개에 달하는 구금시설에 무기한 구금되어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 정치범들은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독재에 반대하는 서한에 서명하거나 그의 사임을 촉구했던 관리들이나 장관들, 언론인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사막 지역에 밀집된 수용소에 감방된 정치범들은 감방도 화장실도 없어 불결한 것은 물론이고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차 움직이기는 커녕 잠도 옆으로만 잘 수 밖에 없으며,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방에 수감된 죄수들도 상당하다. 게다가 속옷만 입은 채 구금된 죄수들은 화장실도 하루에 한두번만 이용할 수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감옥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식사는 하루에 빵 2개가 전부에 물을 마시는 것조차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감옥에 수감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소와 재판 없이 갑자기 체포, 구금된 사람들인데, 이렇게 강제 구금된 사람들은 공식적으로는 '실종'된 것으로 처리된다. 또한 고문도 굉장히 잔혹하여 유엔 인권보고서, 앰네스티 등이 에리트레아 난민들의 증언들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몽둥이, 발길질, 채찍질, 쇠창살 등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것은 기본에 더러운 물에 머리를 담그거나 고통스러운 자세로 온몸을 묶기도 하고, 손과 발을 등 뒤로 묶고 섭씨 50도 무더위에 맨몸으로 노출시키거나[* 이 때문에 화상을 입어 한쪽 손을 절단한 사람까지 있다고 한다.] 철로 된 컨테이너 상자에 가두기도 하며, 이런 더위 속에서 2km 거리로 떨어진 수용소를 맨발로 걸어야 하는 죄수도 있고, 몸에 우유와 설탕을 발라 벌레의 공격을 받도록 하는 형벌도 있는 데다가 여죄수들은 성고문까지 당한다고 한다.[* 에리트레아가 반체제 인사들에게 가하는 고문법들은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정권이 반체제 인사(에리트레아인 독립운동가 포함)들에게 사용한 고문들을 '복제'한 것이고 한다.] [[https://www.amnesty.org/en/latest/news/2013/06/torture-eritrea-every-night-you-hear-shouts-and-cries-people-being-beaten/|#]] 에리트레아는 법으로 고문을 금지한 상태라고 한다. 결사의 자유도 미약하여 코로나 19 이전에는 정부 산하기관이나 정부로부터 활동 승인을 받은 4개 종교 단체의 종교 행사를 제외한 대규모 집회는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으며, 심지어 에리트레아의 국민들은 거주지 이전은 물론이고, 해외 여행도 아닌 '''국내 여행'''을 하려면 서면 허가와 [[려행증|허가증]]을 필요로 하며, 허가증 없이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고국을 탈출하려는 사람'으로 몰려 투옥과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거냐면, 전국민에 대한 국내 여행 통제 제도는 [[백두혈통]], [[마시아스 응게마]], [[이디 아민]], [[폴 포트]] 같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자들과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그나마 다행히도 이쪽은 일부 지역에 적용하는 것에 그쳤다)처럼 억압적인 통치를 좋아했던 독재자 정도만이 실시하던 제도였으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인 [[탈레반]]과 [[다에시]]조차 국내 여행을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게 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적어도 2009년까지는 에리트레아에서도 국내 여행이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2009년의 에리트레아의 실태를 다룬 [[https://www.refworld.org/docid/4b9e52f978.html|2010년 미국 국무부의 보고서]]에는 '법과 시행되지 않은 헌법은 이동, 해외 여행, 이민 및 본국 송환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실제로 '''이러한 권리 중 일부를 제한했습니다.''''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국가 내에서 자유롭게 여행하고 거주지를 변경할 수 있지만''' 정부는 특히 수단과 에티오피아 국경을 따라 국가 내 일부 지역으로의 여행을 제한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와 겪는 국경 분쟁을 생각하면 국경 인근 여행 통제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하다.], 2010년의 에리트레아의 실태를 다룬 [[https://www.refworld.org/docid/4da56dccc.html|2011년 미국 국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에리트레아에서의 국내 여행이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에는 '법과 시행되지 않은 헌법은 이동, 해외 여행, 이민 및 본국 송환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실제로 '''이러한 모든 권리를 제한했습니다.'''' '시민들은 '''국내 대부분의 여행과 거주지를 변경하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정부는 국경 지역으로의 여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국경 근처 마을로 가는 버스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에리트레아의 국내 여행 제한은 2023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병역 나이인 50세가 지날 때까지는 해외여행이 전혀 허가되지 않으며 출국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도 50세 이상이거나 고위층의 가족 정도에만 국한되어 있고, 출국비자 없이 해외여행을 하려는 사람은 징역형을 선고받는 데다가 다른 나라에서 송환된 에리트리아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은 일반인이면 3~5년, 군인이면 평생 동안 가혹한 환경 속에서 구금된다. 게다가 이렇게 수감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수감된 가족의 행방을 알지 못하며, 이들은 체포된 후 가족들이 생사 여부를 알려달라고 해도 보안군으로부터 "당신은 요청할 권리가 없다"는 말을 듣는 등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에리트레아에서 독립 직후인 [[1991년]] 7월 17일부터 에티오피아와의 관계로 추정되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구금된 케렌(Keren)시의 판사 모하메드 메라넷(Mohamed Meranet)은 1997년까지 아스마라의 카르켈레(Karchele) 교도소에 구금된 후 알 수 없는 장소로 옮겨지고는 2016년 기준으로도 생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2017년 5월에 익명의 에리트레아인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에리트레아 사람들의 삶은 '컴퓨터처럼' 프로그래밍되고 구성된다고 하는데, 에리트레아에서 태어난 모든 시민의 삶은 그들이 태어난 시점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에리트레아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느 정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모든 에리트레아 사람들은 성별 관계없이 1년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하고, 이후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하면 '상대적 자유'를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으나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후술할 '의무병역'으로 '인간에서 로봇으로 변신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거기에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의무병역'을 무기한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그 '의무병역'도 [[조선인민군]]에 준하는 수준으로 열악한 환경이라고 한다. 게다가 에리트레아가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외국 언론과 인권단체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등 지독한 [[쇄국]] 정책을 실시하여 북한 이상으로 내부 사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알려진 북한은 그래도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나라인 만큼 국제적으로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데다가 북한 내부에 [[소식통]]들도 많아 역설적으로 인권 실태가 어느 정도 소상히 알려진 편인데, 에리트레아는 세계적으로 인지도는 커녕 관심을 가진 사람도 북한과 비교하면 없다시피하고 해외 언론인들도 제대로 입국하지 못하니 인권 실태가 제대로 알려질 리가 만무하다.] 에리트레아가 어느 정도로 폐쇄적이냐고 하면 [[세계은행]]도 2012년 이후 에리트레아의 GDP를 집계하는 것을 아예 포기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세계은행이 이렇게 장기간 동안 국가 GDP 통계를 포기하는 경우는 나라가 혼란상에 빠져드는 경우인데, 대표적으로는 1975~1992년의 [[캄보디아]]와 1978~1979년의 [[적도 기니]], 1982~2001년의 [[아프가니스탄]], 1991~2012년의 [[소말리아]], 2015년 이후의 [[베네수엘라]]&[[남수단]]이 있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쇄국 정책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셈.] [[2006년]] 9월 초에 에리트리아 정부가 국경 지역에서 UN 평화 유지 임무를 감시하는 활동을 제한하고 UN 직원 5명을 추방한한 뒤 UN 자원봉사자를 체포한 것에 대해 UN이 항의한 일도 있던 데다가 [[https://www.amnesty.org/en/documents/afr64/009/2006/en/|#]] 에리트레아 정부는 모든 외교관, 인도주의 단체, UN 직원 및 외국인 관광객은 아스마라를 떠나려면 최소 10일 안에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게 하고, 심지어는 연료 공급을 차단하여 NGO가 수도 외부로 떠나는 것을 막기까지 한다. 물론 에리트레아에 한국 교민은 커녕 한국인 체류자조차 2021년 기준으로도 단 한 명도 없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한국인 체류자도 어느 정도 있었고 심지어 독립 초반에는 한국인 교민도 1명 있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이 악화되며 교민들 대다수가 철수하고 마지막 남은 에리트레아 교민도 [[개신교]] 전도를 하다가 2009년 8월에 추방되면서 2009년 이후로는 교민은 물론이고 체류자조차 2019년의 1명 빼고는 전무하다.] 이런 상황이기에 에리트레아의 [[세계의 자유]] 지수 총점은 2023년 기준으로 3점[* 정치적 권리(이하 PR) 1점, 시민적 자유(이하 CL) 2점. 다만 에리트레아보다 PR이 더 낮은 나라는 의외로 드물지는 않지만(특히 [[중국]]/[[남수단]]&[[시리아]]는 각각 -2점/-3점을 기록했다), 에리트레아보다 CL이 낮은 나라는 없고, 같은 나라도 [[투르크메니스탄]] 1개국밖에 없다. 하다못해 '''그 북한의''' CL이 3점이다.]을 기록하여 '''북한과 동점이다.'''[* 참고로 북한과 에리트레아보다 세계의 자유 지수가 낮은 나라는 [[투르크메니스탄]](2점), [[남수단]], [[시리아]](각각 1점) 3개국밖에 없다.] 다만 독립 직후 기준으로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독재 국가는 아니었던 모양인데, 1993~1994년에는 정치적 권리(이하 PR) 6등급, 시민적 자유(이하 CL) 5등급의 '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분류되었고, 1995~1998년까지는 PR 6등급, CL 4등급으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었지만 1999년~2000년에 PR 7등급, CL 5등급으로 '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변경되고는 2001~2008년에는 PR 7등급, CL 6등급을 기록하더니 2009년부터는 변함없이 PR 7등급, CL 7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folding [ 연도별 에리트레아의 세계의 자유 지수 ] 2003년: 15점(PR 3 + CL 12) 2004~2006년: 14점(PR 3 + CL 11) 2007~2009년: 13점(PR 3 + CL 10) 2010년: 8점(PR 3 + CL 5) 2011년: 7점(PR 2 + CL 5) 2012년: 6점(PR 2 + CL 4) 2013~2018년: 3점(PR 1 + CL 2) 2019~2021년: 2점(PR 1 + CL 1) 2022~2023년: 3점(PR 1 + CL 2) }}} 여기까지 보면 북한과 정말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독재는 '''진짜로 북한을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현숙 폴리 한국 순교자의소리(VOM) 대표의 말에 따르면 에리트레아의 독재 체제는 '에리트레아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를 숭배하는 북한 체제를 좋아하고 그것을 자국에서 실행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https://www.newsjesus.net/news/articleView.html?idxno=4322|출처]] 다만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없다는 것과[* 세계평화재단(WPF) 사무총장으로서 1980년대 중반부터 에티오피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일해 온 알렉스 드 발(Alex de Waal, 1963~)조차 '이 나라에는 '날카로운' 개인 숭배가 없다'고 인정할 정도이다. [[https://thebaffler.com/latest/the-despotism-of-isaias-afewerki-de-waal|#]] 사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입장에서는 자신이 나라의 독립을 전적으로 주도했던 만큼 실제 독립에 기여한 역할이 없었던 김일성처럼 과장된 우상화로 국민들의 복종을 강요할 이유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정치범의 가족에까지 법적인 [[연좌제]]를 적용해 수용소에 가두지 않는 것[* 오해하지 말자면 정치범을 가두면 이와 동시에 정치범의 가족까지 가둔다는 '원칙'이 없다는 거지, 이들의 가족과 함께 가두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그 예시로 16살 때 [[수단 공화국]]과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SAWA(에리트레아 군사 훈련 학교)가 너무 힘들어서 도망쳤다는 한 남성의 증언에 따르면 보안군들이 자신의 마을에 와서 자신을 데려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투옥했고, 본인은 어머니가 풀려나는 것을 원해서 어쩔 수 없이 투옥을 선택했다고 한다. [[https://www.aljazeera.com/features/2016/3/31/calais-eritrean-refugees-tell-of-torture-and-fear|#]] 그리고 한 여성이 체포되면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함께 구금되는 일도 가끔씩 있다고 한다.], 모든 어린이들부터 시작하여[* 아이들이 가입하는 단체는 [[조선소년단]]이라고 부르며, 심지어 여기에서조차 [[생활총화]]라며 당국에 충성하지 않은 것을 아이들을 스스로 '비판'하게 하여 서로 싸우게 한다. [[태양 아래]]라는 영화에도 묘사되어 있다. 이런 게 3개 더 있다.] 노인이 되기까지 강제로 '근로단체'에 가입시켜 단체생활과 비교육적인 세뇌교육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 수도에 특별히 선별된 인물만이 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 보여주기식이 아닌[* 북한은 [[1989년]]부터 [[평양]]에다가 교회, 성당, 모스크 등을 설치하며 북한이 실질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종교가 있기는 하다는 것만큼은 북한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다.[* 인권 탄압과는 관계가 없지만,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본인은 정황상 부정축재를 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사치 생활을 한다는 증거는 커녕 소문조차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에리트레아 정부도 해외에서 자국에서의 학정이 비판받고 있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한 모양인지 북한과 비슷하게 자국에서의 인권 탄압 폭로들을 전부 '망명자들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5년]] 6월 9일에 UN 조사위원회가 에리트레아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해 다룬 보고서를 작성하자 에리트레아 정부는 교육부와 외무부 명의로 성명을 발표해 에리트레아에서의 인권 탄압 사례들이 '평화롭고, 안정되고, 조화롭고, 인간 개발에 초점을 맞춘' 나라인 에리트레아에 대한 '악랄한 비방 및 무고' '완전히 근거가 없고 가치가 없는 거친 주장' '극단적인 비난과 외설적인 과장법' '인권을 훼손하는 냉소적인 정치적 비극'이라고 [[적반하장]]격으로 주장한 것도 모자라 '에리트레아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려는 이러한 비난과 비열한 시도는 에리트레아와의 점점 더 생산적인 국제 관계를 방해하기 위해 시간과 경쟁하려는 투명한 시도', 심지어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 뒤에 숨어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 구실을 찾는 데 사용할 세력이 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까지도 했다. [[https://web.archive.org/web/20150611062509/http://allafrica.com/stories/201506100911.html|#]] [[https://web.archive.org/web/20150612020534/http://www.shabait.com/news/local-news/19961-press-statement|원문]] 다만 이런 상황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에리트레아는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악명 높은 독재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도 1999년에 대통령령으로 사형을 '영원히' 폐지한 상태다.] 에리트레아에서는 [[1989년]]에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에리트레아가 1993년에 독립되었으니 사실상 독립 이후로 사형 집행을 한 적이 전혀 없던 셈이며, 형식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물론 수용소에서 고문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망한 사람은 상당히 많을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 2008년 기준으로 에리트레아의 비밀 수용소 중 한 곳인 에이라에이로(Eiraeiro) 형무소에 2001년 이래로 수감된 35명 중 무려 15명이 사망했다고 하며,[* 참고로 에이라에이로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은 3m*3m 정도의 좁고 창문도 없는 62개의 독방 중 하나에서 24시간 내내 족쇄를 차야 한다고 한다.] 사법 절차가 생략된 공권력의 초법적 살인도 만연한 상황이라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인 게 전혀 의미가 없다. 물론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학정에 대한 에리트레아인들의 저항 운동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 유럽에 정착한 에리트레아인들은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단파 라디오나 인터넷으로 모국에 반독재 방송을 보내거나 서방에 에리트레아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에리트레아 국내에는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독재정권에 대항해 사막과 오지 산간 지대에서 활동하는 소규모의 반정부 [[게릴라]] 세력들도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2013년]]에는 일부 군인이 '''[[쿠데타]]를 발생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정확히는 2013년 1월 21일에 아스마라에서 100~200명의 군인들이 정보부를 습격한 후 국영 TV 방송국 EriTV의 본부를 점거하며 1997년 헌법을 시행하고 정치범과 포로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메시지가 송출되는 도중에 독립전쟁의 영웅이던 살레 오스만 대령이 이끄는, 대통령궁과 공항을 수비하던 군인들이 쿠데타를 진압했다고 한다. 다만 영국 주재 에리트리아 대사인 테스파-마이클 게라투(Tesfa-Michael Gerahtu)는 쿠데타 시도가 조작된 것이며 어떠한 '불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2013_Eritrean_Army_mutiny|영어 위키피디아]] 또한 [[2017년]]에는 [[아스마라]]에서 문자 그대로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이로써 북한과는 달리 수도에서도 반체제 인사가 살 수 있다는 것은 확정되었다.] 아스마라의 학생들은 독재와 열악한 생활 조건, 가혹한 노동 생활에 반대하며 2017년 11월 1~7일까지 수백 명 규모의 시위를 열었는데, 시위대는 반정부 플래카드와 슬로건을 이용해 더 나은 생활 조건과 독재자의 퇴진을 요구했고, 대학에 시위대가 집결하며 도시 전역에서 소규모나마 시민들의 집회가 일어났다. 물론 에리트레아 경찰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는데, 학생들을 곤봉으로 구타하거나 최루탄을 투척한 것을 넘어 실탄을 발포하며 시위 첫 날에만 28명의 시위대를 살해했고, 시위가 끝날 때까지 경찰은 매일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포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Eritrean_uprising|영어 위키피디아의 문서]]의 제목이 연도 표기 없이 그냥 '에리트레아 봉기(Eritrean uprising)'인 것을 보면 이 시위가 에리트레아 역사상 최초의 반정부 시위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도 1991년, 1993년에 [[신의주]]에서 김일성 부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는 주장이 있으나, 정황상 식량난으로 인한 시위가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북한에서 식량난과 체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상당히 자주 벌어져 북한의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남한에도 보도되었을 정도였다.] 2020년 1월 31일에 에리트레아 남서부의 금광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최소 16명이 사망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3&aid=000967975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