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든버러 (문단 편집) == 역사 == 이곳은 일찍이 [[브리튼인]]들이 살던 곳이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인과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 섬에 오기 전까지 [[잉글랜드]] 전역과 [[웨일즈]], 현 [[스코틀랜드]]의 로우랜드에 퍼져 살던 [[켈트족]]의 일파이다. 또 다른 켈트족 일파인 [[픽트족]]은 현 에든버러 북부의 포스(Forth)만 건너편과 현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 살았다. 이 지역에 살던 브리튼인의 왕국인 고드딘(Gododdin)은 600년 즈음에 현 에든버러 성이 있는 언덕 위에 요새를 짓고 Din Eidyn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에딘버러의 시작이다. 7세기에 이곳을 지배했던 데이라 왕국의 왕 에드윈이 여기에 성을 지어 에드윈의 성이란 뜻의 에든버러가 됐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이 요새와 그 주변에 형성된 마을 이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변화했지만, 'Eidyn'은 끝까지 남아 후일 [[중세 영어]]로 요새를 뜻하는 -burgh와 합쳐서 지금의 에든버러가 된다. 7세기 잉글랜드 북부에 앵글인들이 세운 [[노섬브리아]] 왕국은 이쪽 지역으로의 영토 확장을 꾀했고 결국 7세기 중반 고드딘 왕국은 멸망한다. 이후 300년간 에든버러는 앵글로색슨족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사이 [[브리튼섬]] 북부에 살던 픽트족과 브리튼족, 게일족, 바이킹 일부가 스코트족에 흡수되면서 스코틀랜드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10세기가 되어 [[스코틀랜드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14-15세기 이래 스코틀랜드의 수도였으며, 1999년 이후부터 스코틀랜드 자치의회(Scottish Parliament)가 위치한다. 원래 스코틀랜드 왕실은 고대 켈트계 왕국이었던 Dál Riata의 신화적 인물인 퍼거스 왕이 초대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전승에 따라 즉위식을 치르는 장소였던 스콘(Scone) 말고는 딱히 수도라 할 고정된 행정 중심지가 없었다.[* 사실 1400년대 이전 스코틀랜드의 절반인 서부 해안 지방은 영어로는 Lordship of the Isles, [[게일어]]로 Triath nan Eilean라는 작위를 가진 맥도널드 [[클랜]]이 실질적인 독립 왕국 수준의 권력으로 다스리는 등 중앙 권력의 영향력 자체가 잉글랜드에 비해 많이 약했고, 이에 따라 집중된 행정 중심지 또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채 왕실도 [[로버트 1세]]가 거처했던 던퍼름린 Dunfermline, 린리스고 Linlithgow, 스털링 Stirling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이후 14~15세기 잉글랜드와의 국경 전쟁을 통해 현대 베릭어폰트위드 일대를 기점으로 하는 양국간 국경 확립 과정에서 남부 영지의 통치권을 확실하게 박기 위해 [[스튜어트]] 왕조 시절 에든버러로 수도를 정하게 된 것이다. 14세기 저지대 출신 연대기 작가인 장 프루아사르(1337-1405)는 에든버러를 '스코틀랜드의 [[파리(프랑스)|파리]]이자 왕의 거주지. 스코틀랜드의 수도'라고 표현했고, 제임스 3세(1451–88)는 '우리 왕국의 주요 [[도시]]'라고 지칭했다. 이 이후 인근의 [[항구 도시]] 라잇(Lieth) 등을 통한 [[프랑스]],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간의 무역, 교역의 중심지이자 영국 6대 고대 대학 중 하나인 [[에든버러 대학교]], 200년 전통의 헤리엇 와트 대학교, 1992년 영국 모든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대학으로 승격된 에든버러 네이피어 대학교를 필두로한 [[대학도시]]로서 성장해 왔다. 16세기의 [[종교개혁]] 와중 스코틀랜드 [[장로회]]의 중심지 중 하나로서 장로회 창립자인 [[존 녹스]]가 설교했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 존 녹스(John Knox)가 이 교회에서 목회했고 장로교회의 종교개혁이 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세계 장로회의 어머니 교회(The mother church of the world presbyterianism)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현대 스코틀랜드 국민교회(The Church of Scotland)인 [[장로회]]는 [[가톨릭]], [[성공회]] 같은 주교좌 중심 [[교구]]제가 아닌 노회 중심의 [[교구]]제이다. 다만 [[종교개혁]] 이전 스코틀랜드의 기독교와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글래스고, 에딘버러, [[애버딘]]을 비롯한 몇몇 도시의 종교개혁 이전 주교좌 성당이었던 곳들을 High Kirk라 부르며 명예 대우하기는 한다], 종교개혁 이후 처음 지어진 스코틀랜드 교회 건물 중 하나이며 1638년 언약도 선언이 있었던 그레이프라이어 교회[* 영어권에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을 회색 [[수단(의복)|수단]]에 빗대어 부르던 이름이 [[종교개혁]] 이후로 그 자리에 있었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싹 한 번 때려 부스고 그 위에 새로 교회를 지으면서(...) 그냥 도시 내 고유 명사로 남은 경우이다] 및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공동묘지]] 등 장로교인이라면 [[성지순례]]할 만한 역사적 유산이 많이 있다. 18세기가 되면서 에든버러 구시가지(올드타운)의 위생 문제와 지나친 인구로 인해 상류층을 중심으로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영국]]은 하노버 왕가에 의해 통치받고 있었고 일명 조지아 스타일이라 불리는 건축양식이 유행이었는데,[* 이 스타일은 잉글랜드의 바스(Bath)에 가도 볼 수 있다.] 이 분위기에 맞춰 에든버러 구시가지의 북부에 뉴타운(New Town)을 조성하게 된다. 당시에도 매우 파격적인 도시 계획이었고 미학적으로도 뛰어났던 지라 매우 인기가 많았다.[* 뉴타운은 이후 올드타운과 함께 199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 이 시기에 중세 시대부터 유지되던 에든버러 성벽은 해체되고 도시가 확장하게 된다. 또한 뉴타운과 올드타운 사이에 있던 호수(Nor Loch)도 메워지고 철도역과 공원, 미술관이 들어서게 된다.[* 참고로 이 호수는 그전까지 에든버러 시민들의 상수원이자 오물투기장이었다. 얼마나 비위생적이고 악취가 풍겼을 진... 게다가 영국에서 유일하게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곳이 스코틀랜드였는데, 또 그 방법도 독특하게도 여기선 일반적인 [[화형]]이 아니라 중세 때 물의 재판 그대로 따와 이 호수에 떨어뜨리는 게 사형법이었다! --차라리 불태워 죽여라--] 주요 건물로는 에든버러 성,[* 해리 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의 모티브 중 하나로 [[http://members.madasafish.com/~cj_whitehound/Fanfic/map_of_Hogwarts/castle.htm|추정]]된다.] [[홀리루드 궁전]],[* [[엘리자베스 2세]] 여름마다 머물던 곳.] 에든버러 동물원, 왕립식물원, 그리고 에든버러 대학교의 올드 칼리지와 뉴 칼리지 건물 등이 있다. 공동묘지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 에든버러 구시가와 신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또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자주 갔다는 카페인 디 엘리펀트 하우스(The Elephant House)가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