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업성 (문단 편집) === 1차 몰락 === 북제를 멸망시킨 [[북주]]에 의해 화북이 통일되고, 이후 제위찬탈을 준비하던 [[양견]]에 대항하여 [[울지형]]이 업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고 이후 업도 파괴되어 사실상 몰락하게 되었다. 양견은 업을 수도로 삼을 것에 대해서도 고려하였는데 이 저항으로 인해서 더욱 철저하게 업을 파괴하였다. 수당 통일제국이 들어서자 관동의 중추지인 업보다 옛 전통 도읍지인 장안, 낙양으로 정도하면서 업은 지역도시로 전락했다. 당장 업의 위치가 평야인 데다가 바로 옆에 장하(장수)가 흐르니, [[홍수]]만 나면 업성 전체가 물바다인 등 수공에 취약해서였다. 실제로 삼국시대 때 이 점을 노리고 조조가 [[심배]]가 겪은 그 장하의 수공을 폈다. 따라서 도시를 지키려면 장하의 치수 활동 및 주기적인 도시보수작업이 필요했는데, [[서진]] 정권 몰락 후 [[오호십육국시대]]가 되자, 그럴 돈도 생각도 인원도 없어 점차 범람하여 유역을 바꾸는 장하가 도시를 파먹었다. 북방 유목민족들인 오호가 중심이 된 북조는 농경을 잘 모르고 수리사업은 더더욱 몰랐던 데다가 북조에서는 북위 전까지 기껏해야 수십 년 집권하고 왕조가 교체될 정도로 불안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규모 치수사업은 불가능했다. 또한 알았어도 [[황하]]의 치수사업은 통일왕조도 어려워할 정도로 엄청난 고난도였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앞서 있던 근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도 여러번 실패했을 정도였다.[* 마오쩌둥 정부는 치수사업을 위해 댐을 건설했는데, 토사에 댐이 모조리 막혀서 못쓰게 되자 어떤 댐은 지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철거해야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업의 성이 크게 중축되었지만 반란 몇 번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은데는 이런 탓도 있다. 다만 전술하듯이 업의 최전성기가 남북조시대였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인위적으로 계속 신경써줘야하는 자연적 취약성이 있다는 것이지 단순한 유역 변경과 침식만으로 몰락한 것은 아니다. [[대약진 운동/치수사업]]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황하]] 유역의 치수는 현대에 와서도 어려운 것이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미 전국시대에 일단락 된 장강 상류의 도강언보다도 난이도가 높았다.) 명나라 초기에 몰락했다는 것은 서진의 멸망 이후 최소 천년 뒤의 일이다. 업은 당나라 때까지 지역 거점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업이 장하 때문에 몰락했다는 건 위진남북조 시대를 기준으로는 틀린 서술이다. 저 시대 낙양은 수양제가 복구하기 전까지 아예 폐허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